국토위험시설 핵발전소에 대한 헌법의 관점(이원영)

<논설> 국토위험시설 핵발전소에 대한 헌법의 관점

이원영 수원대학교 건축도시공학부 부교수(주저자 leewysu@gmail.com)

Lee, Won-Young


키워드: 핵발전소, 헌법, 후손들의 권리, 국민동의
Keywords: Nuclear power plants, Constitution, The rights of Descendants, National concent


  1. 들어가는 말- 국가존망을 위협하는 전기생산시설

핵발전소는 국토공간에 실재하는 ‘전기생산’시설이다. 그 치명적 위험은 널리 알려져 있다. 핵발전소 사고가 자연환경과 인류에 미치는 시공간적 악영향은 아직 인류의 지혜로는 전모를 계측할 수 없다.
남한 전역이 25개 핵발전소로부터 300km~ 500km범위이므로 후쿠시마와 같은 사고가 나면 전국토가 방사능으로 오염된다. 대기상의 방사능이 현저히 감소한 후에도 토양오염의 위험을 벗어나려면 계측할 수 없는 기간과 노력이 소요된다. 이는 초시대적 초국경적 위해(危害)다. 게다가 핵폐기물의 위험은 이론적인 해법을 입증할 수 없는 상태다.
국내 전기의 20%~35%를 공급한다고 주장되어온 핵발전소들이 금후 계속 가동될 것인지 아니면 독일처럼 폐쇄될 것인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폐쇄가 결정될 경우에도 상당한 기간을 거쳐야 가동이 완전히 중지되고, 그후 안전한 상태에 이르기까지 오랜 기간이 걸려야 한다는 점(20년~50년)을 감안하면, 위험에 대한 대처는 어떤 경우에도 중요하다.
이러한 위험에 대해 헌법은 어떻게 보고 있을까? 헌법조문 자체에는 원자력발전소나 핵발전소가 언급되고 있는 바가 없지만 조문을 하나하나 놓고 보면 많은 부분이 떼어 놓을 수 없는 깊은 관계 속에 있음을 포착하게 된다. 사회규범의 가장 큰 기준이 되는 헌법의 가치로 핵발전소라는 존재를 가늠하는 접근은 당연하면서도 중요하다. 하지만 아직 국내 학계에는 이에 대한 깊은 논구가 없는 편이다.
본고는 이에 대해 논설을 전개하고자 한다. 논리전개의 객관성을 담보해야 하는 논문이 아닌, 필자의 주관적 관심이 내재된 시각으로 고찰한 글이다. 이러한 논설적 접근은 차후 본격적인 연구의 전개와 논문의 작성에 임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할 수도 있을 것이다.

  1. 헌법 전문(前文)의 ‘우리들 그리고 우리들의 자손’

현행헌법은 1987년 개정된 헌법이다. 서두에는 전문(前文)이 나온다. 헌법의 전체개요를 설명하는 글이다. 헌법 각 조문을 열거하기 앞서 헌법이 추구해야할 가치를 담은 글이다. 거기에 이런 문장이 있다.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다짐하면서~’
핵발전소의 존재는 바로 이 문장에서 배치된다. 이 문장은 1)현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과 2)앞으로 이 땅에서 살아갈 ‘우리들의 자손’, 두 가지로 주체를 규정하고 있다. 핵발전소는 ‘우리들’의 문명이기는 될 수 있을지 몰라도 ‘우리들의 자손’의 문명이기가 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오히려 흉기로 남는 것은 거의 확실해 보인다. 왜냐하면 물리학의 원리상 방사능의 반감기는 절대적인 것이고, 방사능의 위해를 차단하는 이론상의 수단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세대적 집단학살(generational genocide)이라는 용어로까지 표현될 수도 있다.
이론물리학자 장회익은 “핵폐기물의 완벽한 안전에 접근한다는 것은 무한대의 비용과 노력을 요하는 것이고, 따라서 현실적으로 어느 선에선가 이 위험에 대한 절충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이러한 원전의 관리는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일이다. 인간에게는 지적 한계와 함께 심적 한계도 있다. 인간은 무제한의 시간동안 무제한의 경계를 지속시킬 심적 능력이 없다. 그런데 원전의 사용은 바로 이것을 요구한다. 이것은 방사능 효력이 끝날 때까지 수천 혹은 수만년간 관리를 지속해야 한다. 설혹 용케도 앞으로 백년이 아니라, 만년 간 사고를 일으키지 않고 관리를 했다고 해도, 그 오랫동안 우리의 후손들이 이 긴장상태를 유지하며 불침번을 서야 했던 수난의 대가를 어떻게 계산할 수 있을까?” 라고 지적한다.
헌법전문의 ‘우리들’에 한정한다 하더라도 핵발전소에 의해 야기 되는 위험은 국경을 초월하는 것이므로 한 나라의 헌법상의 규정과 통제의 범위를 벗어난 위험을 초래하는 존재이다.
그러므로 이를 전면적으로 통솔하고 관리하는 힘은 개별국가에 있지 않다. 지구촌 전체의 문제다. 그 시설로 인한 악영향이 한 국가의 헌법에서 통제될 수 없다면 지구촌 차원에서 규정되는 것이 마땅하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하지 않고 있다. 그런 한계가 있음을 감안하고 헌법의 문제를 논할 수밖에 없다.
이 대목은 1948년 최초로 제정된 제헌헌법의 전문에서부터 등장한다.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결의하고~’
1970년대 핵발전소를 도입할 때만 하더라도 헌법상의 이러한 가치를 부정하는 존재가 되리라고 상상하지 못했을 터이다. 1979년 미국에서 스리마일 원전사고가 터졌을 때만 하더라도 국가적으로 문제시한 기록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던 것이 1986년 체르노빌 원전사고로 인한 방사능 오염이 지구촌전체를 뒤덮으면서 문제의 인지가 시작되었다고 할만하다. 기실 이때부터 시설의 위험이 헌법적 가치를 훼손하는 것임을 국가적으로 인식할 의무가 있음에도 이를 방치해온 것이다. 흔히 보수정권이나 진보정권이나 이 근본문제에 대해서는 눈을 감아온 것이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국가적인 대책의 방향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이러한 헌법적 가치의 존중과 그를 기반으로 하는 모색이 절실했음에도 방치되어 왔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한계 속에서 더욱 중요해지는 것은 ‘우리들의 후손’에 대한 영향이다. 독일이 2011년 탈원전을 선언하여 가는 과정에서 결정적인 가치관으로 형성된 것은 부모세대 때문에 자식세대가 희생되는 것은 윤리적으로 정당하지 않다는 출발점이었다. 그리하여 ‘17인의 윤리위원회’가 공개토론을 하도록 하고 그 과정과 내용을 본 의회구성원들이 표결을 하여 절대 다수가 탈원전을 채택하였던 것이다.
오늘날 만들어낸 위험은 현재 세대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먼 장래에 살게 될 세대의 기본권을 침해할 수도 있다. 그 피해의 공간적 범위는 전국토에 걸쳐서 확산되고 그 피해의 시간범위는 상상할 수 없는 역사적 시간대까지 미친다.
국가가 위험한 기술 등을 허용함으로써 발생한 위험으로 생명과 신체 등에 해를 받는 당사자의 범위가 구체적으로 확정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기본권으로부터 추론되는 국가의 보호 의무는 성립한다. 핵에너지의 이용에 따른 위험한 결과가 발생할 확률을 이미 예견할 수 있으므로, 국가가 현재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하여서는 안 되는 것은 또한 먼 미래의 후세대에게도 행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박태현, 2012). 즉, 시대를 초월하는 위험에 대해 결정함에 있어서는, ‘당대국민만’의 동의를 구하는 것조차 ‘월권적’ 행위일 수도 있다.
우리는 아직 이에 대한 원칙을 정립시키지 못하고 있다. 헌법 속에 내재된 가치를 기준으로 핵발전소 시설의 원론적 정체성에 대한 논구가 요구되는 것이다.

  1. 국민동의를 구하는 절차의 결락

우리는 핵발전소의 설치와 관련하여 핵폐기장을 제외하고는 국민의 동의를 구하는 절차가 이행된 적이 없다. 또 행정부를 제외한 다른 헌법기관이 그 설치와 운영에 직접적으로 관여하는 일이 있어 온 적이 없다. 오로지 임기제 대통령과 그 산하의 행정부만이, 그러한 ‘위험’을 다루고 있다. 이 상황이 올바른 것일까?
헌법 제1조에도 규정하고 있듯이, 국민의 주권은 모든 위협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할 수 있는 권력이다.
“헌법 제1조 제2항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핵발전소의 위험은 이 조항이 무색할 정도로 국가의 안위를 위협하고 국민주권을 침해한다. 하지만 핵발전소의 입지 및 건설과 관련하여 국민의 주권이 제대로 발휘된 역사는 없다. 국민이 동의하지 않은 채 행정권력의 일방적인 전개에 의해 시설이 국토 위에 자리 잡고 시설운영의 결과로부터 나온 방사능과 폐기물이 국민과 차세대의 국민을 위협하는 존재가 되어 버린 것이다.
헌법에서 규정되는 기본적 인권은 일차적으로는 개인에 대한 국가적 침해를 방어할 권리이다. 인권은 정치경제적 편익보다 우월하다. 원전 정책 유지확대 축소폐지는 권력을 잡은 정부의 정책재량권이 인정되는 영역이 아니다.
이러한 문제와 관련하여 독일은 칼카르 판결에서 ‘학문과 기술의 수준’에 따라 ‘동적인 기본권 보호’를 할 사전배려의무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사전배려의무란 미래예측적이고 형성적인 계획적 조치들을 통하여 모든 사회적 국가적 행위주체들이 환경보호적으로 행동하고 또 결정을 내림에 있어서 가능한 환경영향을 고려하도록 함으로써 생태계의 기초를 보호해야 한다는 원칙을 말한다. 즉 손해가 이미 발생하였다면 위험이 존재할 것은 명백할 것이나, 손해가 증명되지 않은 경우에도 국가의 보호조치가 가능하도록 하는 노력이 사전배려의 원칙이라는 것.
곧 환경을 위험에 빠뜨리는 시설은 그러한 손해가 발생할 것이 실제로 배제되는 경우에만 핵시설에 대한 인가가 주어질 수 있다는 척도를 ‘독일 원자력법’에 세워 놓았다는 것이다(홍성방, 2012). 우리는 원자력진흥법이나 원자력안전법 등에 주민의견수렴제도에 대한 규정이 있다. 하지만 동의를 받은 과정이 형식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고, 사전배려의무가 이행될 수 있는 실질적 장치는 보이지 않는다.
국민주권은 헌법을 제정하는 권력이자, 3권분립구조와 기본권에 관한 결정뿐 아니라 통일, 안보(전쟁)와 같은 핵심정책들을 결정하는 근본권력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핵발전과 같이 국민과 영토의 안위에 관한 초장기적 핵심정책이 결정되면서 국민주권이 존중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우리의 헌법에는 ‘기본적 인권’을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헌법 제10조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인권은 정치경제적 편익보다 우월하다. 원전 정책 유지확대 축소폐지는 권력을 잡은 정부의 정책재량권이 인정되는 영역이 아니다. 국민의 일상생활을 지배 또는 규정하는 어떤 힘이 크면 클수록 그 본질적 부분(핵심)에 대한 의사결정은 국민이 직접 하여야 한다. 국민의 자유권이나 최소한의 생존권을 실제로 제대로 향유할 수 없게 하는 사회경제적 구조를 방치하는 것은 인권침해다. 더욱이 이로부터 발생하는 심각한 불평등을 의도적으로 방치하는 것은 더 큰 인권침해에 해당된다. 핵발전소가 그에 해당한다. 핵발전소는 현세대뿐 아니라 헌법전문이 규정하는 ‘우리들의 자손’의 인권도 침해한다. 현세대가 이에 대한 책임을 스스로 지도록 해야 한다. 대의제의 의사결정자에게 맡겨서 될 문제가 아니다.
박태현 교수(강원대, 환경법)에 의하면 “헌법재판소는 우리 헌법은 ‘선거권’과 ‘공무담임권’ 및 국가안위에 관한 중요정책과 헌법개정에 대한 ‘국민투표권’ 만을 헌법상의 참정권으로 보장하고 있고, 주민투표권은 이중 그 어느 것에도 해당하지 않으므로 헌법이 보장하는 참정권이라고 할 수는 없다고 한다. 그러나 국민투표 및 주민투표는 국가 단위 혹은 지역 단위 차원에서 행해지는 자기결정권의 행사로(헌재도 주민투표를 통한 주민결정권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국민투표제나 주민투표제는 자기결정권의 제도적 보장이라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같다. 따라서 주민투표권은 헌법이 명시하는 참정권에는 속하지 않을지 모르나 정치적 기본권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주민투표권을 정치적 기본권으로 보아 중요한 사안이 있을 때마다 스위스는 국민투표로 결정한다. 즉, 위키피디아 백과에 소개되어 있듯이 “언제나 시민에 의한 통제가 이루어질 수는 없지만 가장 중요한 사안은 시민이 직접 결정을 내려야 하며 비교적 덜 중요한 규제나 규칙 등의 결정은 정부나 의회가 내리도록 하는 준직접민주주의”를 실행한다는 것.
후쿠시마 사고 후 이탈리아도 핵발전소의 정책에 국민투표를 감행했다. 독일은 아시다시피 원전폐기에 의회의 결정을 앞두고 모든 국민이 참여하는 공개토론을 거쳐서 충분한 의사가 표시되는 과정을 거쳤다.
국민이 어떤 에너지를 사용할 것인가? 스스로 판단할 기회가 있는 게 자연스럽다. 상품의 선택의 권한이 소비자에게 있듯이. 이것은 기본권이다. 유독 에너지만 그런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 이상하다.

  1. 핵발전소가 침해하는 헌법의 가치들

모르는 채 침해당하는 신체와 보건의 권리
시공을 초월하는 이 거대위험에 대해 우리의 제도는 어떠한 가치체계로 대응하고 있는가? 헌법은 다음과 같이 국가가 국민을 보호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헌법 제34조 ⑥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하지만 체르노빌과 후쿠시마에서 보듯 원전의 위험과 방사능의 위험은 국민 모두에게 위협이 되고 있다. 이는 헌법 제12조에 규정된 제3자의 신체적 완전성에 대한 기본권, 그리고 제36조의 보건에 관한 국가보호의무 침해와 관련된다.
“헌법 제12조 ① 모든 국민은 신체의 자유를 가진다.”
“헌법 제36조 ③ 모든 국민은 보건에 관하여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
이 가운데 핵발전소 문제의 본질은, 희생자가 동의하지 않았고 의식조차 하지 못한 채 생명과 건강에 대한 침해를 감수하여야만 하는 데 있다. 결정의 위험을 감수하는 의사결정자와 그 결정을 위협으로 받아들이는 당사자 간의 갈등은 어쩌면 현대사회의 속성이다.

재산권/사회적 비용
핵발전소는 혜택과 손실 간에 심각한 불균형이 있다. 핵발전은 공급자가 획득한 이익 및 낮은 가격 덕에 소비자가 얻는 이익과 사회전체가 감당해야할 비용 사이의 관계가 지나치게 비합리적인 에너지다. 피해확률은 낮지만 사고가 났다하면 대규모 재난으로 이어진다. 이때 통계적인 위험산정은 신뢰를 잃는다. 헌법은 제23조 제1항에서 재산권을 보장하고 있다. 그러나 핵발전소로 인한 사업자의 배상금액의 책임은 유한할 수밖에 없고 국가가 초과분을 배상해야하는 것이 국제적인 관행으로 굳어져 있는 현실(차성민, 2013)을 감안하면 이 위해에 대한 실질적 배상능력은 의문시 될 수밖에 없다.

환경권
헌법은 제35조에서 환경권을 규정하고 있다. 소음, 열오염, 방사능의 형태로 나타나는 에너지통제가 환경정책의 일부라는 점은 일반적으로 인정되고 있다. 따라서 핵에너지를 사용하는 과정에서 환경권이 침해될 수 있는 소지는 얼마든지 있다.
에너지사용의 권리도 무시되고 있는 점이 크다. 인간존엄성과 안녕에 심각한 위협이 되는 에너지원에서 공급되는 전력을 거부할 수도 있다.
“헌법 제37조 ①국민의 자유와 권리는 헌법에 열거되지 아니한 이유로 경시되지 아니한다.”
에너지 수급의 수동적 대상이 아니라 소비자로서의 그 주체적 권리를 인정해야 한다. 그래야 합헌이다.

주권기관의 직무유기- 위험에 대한 교차감시를
대의민주주의 아래에서는 핵발전소의 감시에 있어서도 국회가 권한과 책임을 가짐이 마땅하다. 유럽국가들처럼 의회도 ‘교차감시’를 함이 당연하다. 대통령제의 미국도 의회가 ‘원자력규제위원회(NRC)’에 대한 실질적인 감시권한을 갖고 있다.
현재의 한국 원자력안전위원회 체제는 결함이 있다. 핵발전소 재난시, 책임감을 갖고 신속한 의사결정과 조직적 통제에 있어서 행정라인 통솔이 일상적이지 않은 원안위 위원장이 임무를 수행하는 것도 물리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평상시의 감시를 포함하여 광역단체장이 직접 조직을 인솔하고 대처할 수 있도록 장치가 마련되어야 마땅하다. 광역단체장에 이미 주어진 국민주권이 충분이 작동되어야 한다.

국제적 문제
원전의 수출도 수출대상국 국민의 인간존엄성에 커다란 위협을 제기한다. 수입하겠다는 의사결정과정에 국민의사가 배제되어 있다면, 법률적으로 문제가 없는 절차를 거쳐 수출했다할지라도 그 나라의 헌법적 가치를 훼손한 것이 된다. 정권을 잡은 어느 정부의 정책만으로 추진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행위 자체가 양국의 헌법가치를 파괴할 가능성이 큰 것이다.
또, 감시에 있어서도 원자력진흥기구의 성격을 갖는 IAEA에게 핵발전소의 위협으로부터의 지구촌을 지키고자 하는 역할을 기대할 수는 없다. 이렇듯 오랜 기간 지구촌에 위해를 가할 가능성이 큰 위험을 예방하자면 그리고 만일의 재난에 대비하자면, 국경을 넘어 책임과 권한을 긴밀하게 연대하는 적극성이 필요하다. 핵발전소 밀집지대인 동북아시아에도 유럽연합의 ENSREG와 유사하거나 그 이상의 감시기능을 갖는 새로운 국제협력체계가 헌법의 이름으로도 요구된다.

  1. 맺음말- 국민동의는 최소한의 절차

위험을 인지하지 못했을 때와 인지했을 때의 의사결정은 근거에 차이가 있다. 인권의 규범적 가치 및 민주주의 자기결정 이념에 비추어 핵에너지의 이용 자체에 관한 결정권은 국민에게 있다. 민주주의는 국가적 결정에 국민의 참여를 보장하고 요구한다. 국민은 권력에 대해 그 책임을 다할 것을 요구하여야 한다. 이것이 대의민주주의가 그 근본에서 일탈하지 않고 ‘국민주권’을 실현하는 방법적 원리다.
핵발전소는 헌법전문에서처럼 ‘우리들’뿐 아니라 ‘우리들의 자손’의 안위와 직결되는 시설이므로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그 자신과 후손의 운명을 선택해야 마땅하다. 시설의 본질로 보면 이 조차도 최소한의 절차다.



카테고리:04월-전력수급기본계획과 원전문제, 202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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