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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고준위 핵폐기물, 이것이 딜레마다(시대 제70호)

고준위 핵폐기물, 이것이 딜레마다

박혜령 반핵지구인행동 회원

이해관계가 다양하고 복잡해질수록 선명하고 정확한 상황 판단과 운동은 어려워진다. 피아의 명확한 구분이 애매해지고 무엇이 다른지 판단하기도 어렵다. 고준위高準位 핵폐기물 문제도 마찬가지다. 문재인 정부가 탈핵 정부인지에 대해 판단이 다르거나, 탈핵에 대한 입장의 차이가 정확하게 드러나지 않거나 표현되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는 사실 탈핵의 정의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이명박 정부나 박근혜 정부 때는 정부의 성격이 ‘찬핵’이라는 명확한 선이 존재했고, 그 반면 정권을 잡고자 하는 야권 정치인 문재인은 ‘탈핵’을 구현할 의지가 있는 인물로 간주됐다. 사실 이때부터 혼란은 시작되었다.

과연 얼마만큼 해야 탈핵인 건가? 오늘 당장 모든 핵발전소 가동을 중단하고 영구 정지를 선언하면 탈핵인가? 핵 마피아들이 득실대는 체제에서 완전한 탈핵이 쉽지 않으니 신규 핵발전소를 중단하겠다고 결정한 문재인 정부 정도면 그나마 상대적으로 탈핵인가?

이런 문제들에 대해 확실한 생각이 없으면, 고준위 핵폐기물을 어떻게 해야 한다는 정확한 메시지를 마련할 수 없다. 신고리5, 6호기 공론화 때와 마찬가지의 우를 범하고 있다. 정확한 자기 메시지를 만들지 못하고 있고, 초기 대응의 첫 단추는 여지없이 잘못 끼웠다. 하다보니 그리된 것이 아니다.

핵폐기물 이제 그만? 언제까지 그만?
임시 저장고는 절대로 안 된다는 이제 그만?

그렇다면 이야기해 보자. 2017년 당시 고준위 핵폐기물을 위한 공론화가 시작될 것이라는 산업부의 발표에 8월경부터 시작된 각 현안 지역과 시민단체와의 논의가 그토록 어려웠던 이유를. 임시 저장은 애초에 시작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선명했다면, 고준위재검토준비단에 들어갔다 하더라도 논의에 임하거나 합의하는 내용과 과정이 그렇게 될 수는 없었다.

기존의 환경 단체를 비롯한 일부 현안 지역에서도 탈핵의 내용이 구체적이지 않았고, 그 내용의 구체화를 위한 논의가 적극적이지 않았다. 몰라서 못한 것이 아니다. 필자는 이런 논의를 적극적으로 조직하지 않도록 주도적 역할을 자임해 온 단체들의 의도가 다분히 있었다고 본다.

고준위 핵폐기물의 딜레마는 10만 년 이상 보관해야 하는 해법 없는 문제가 아니라, 고준위 핵폐기물을 더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큰 줄기의 내용은 있으나 세부적인 내용의 자기 메시지를 만들지 못하는 문제다. 무엇이 탈핵인가라는 질문에 선명한 답을 우리 안에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이 딜레마다. 이제라도 그 답을 찾아야 한다. 반핵운동이 더 길을 잃기 전에.

딜레마 1. 뾰족한 수 없는 고준위 핵폐기물

고준위 핵폐기물을 10만 년 이상 보관하여 안전하게 자연 상태로 되돌릴 기술은 확보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핵발전을 선택한 나라들은 고준위 핵폐기물 처리의 문제를 어떻게든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각자의 방식으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고준위 핵폐기물 처분장을 운영하는 곳은 아직 전 세계적으로 없다. 현재 유일하게 핀란드가 고준위 핵폐기물 심지층 처분장을 건설중이다. 부지를 선정하고 심지층 방식이 거론되던 스웨덴에서는 고준위 핵폐기물 심지층 처분 방식은 구리 원통이 부식될 수 있으며 방사선 누출 대책이 없다는 점이 지적되면서 적절성 논란이 일고 있다. 핀란드와 스웨덴은 부지 선정 과정에 주민들의 참여가 적극적이었고 이를 충분히 보장하는 공론화 과정이 있었다. 그러나 두 나라 모두 기술적 안전성이 아니라 주민 수용성 확보를 위한 공론화였다는 비판을 면하지 못했다.

현재 월성핵발전소에서 추가 증설하려는 맥스터가 사실상 핵발전소 부지의 지상 중간 저장 시설로 분류될 수 있다. 단기적인 조치이며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하고, 테러나 지진 같은 자연재해의 위험 등을 생각하면 근본적인 대책일 수 없다. 발전소 내의 수조에 저장하는 그야말로 임시 저장을 비롯해 제3의 부지나 발전소 부지 내의 중간 저장, 아니면 영구 봉인하는 최종 처분까지 기술적으로 많은 논란이 있고 안전성 확보에 근본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사실 이것은 핵발전소 가동을 시작할 때부터 예상한 문제였으나 우선 가동하고 보자는 무책임한 결정이 낳은 참사다.

딜레마 2. 이해 당사자의 문제

우리는 스웨덴과 핀란드의 사례에서 배워야 한다. 수십 년간 공론화를 진행해 모범적인 사례로 알려진 이 나라들에서도 내막을 알고 보면 근본적인 안전성은 확보되지 않았다. 기술적으로 이 지구상에 10만 년 이상 안전하게 보관하는 기술이 없다. 아무리 잘난 스웨덴이라도, 아무리 잘난 핀란드라도 방법이 없는 것이다. 수십 년 동안 이해 당사자가 아무리 참여한들 없는 기술이 생기지는 않는다. 그리하여 완전한 안전성 담보보다 정치적, 지역적 이해관계에 따라 가장 수용성 높은 지역이 선정되는 문제가 발생한다. 이해 당사자 참여는 오히려 공론화의 정당성을 부여해 주는 도구로 전락할 것이 너무도 빤하다. 그러니 지역의 이해 당사자나 환경 단체가 참여하면 무언가 달라질 수 있다는 생각은 애초에 고준위 핵폐기물 처리 문제를 해결할 때 고려할 바가 아니었다.

딜레마 3. 신고리5, 6호기 공론화의 뼈아픈 경험에도 변하지 않는 단체들

또 한 가지. 이해 당사자 문제의 딜레마는 이해 당사자 문제를 산업부나 정부가 운동 진영과는 달리 해석하고 접근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마도 주민들의 참여와 설득력을 확보하면서 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해 당사자로는 우선 선거로 대표성이 확보된 지자체 행정부와 의회가 있다. 지역의 시민사회단체도 몇 갈래로 입장과 의견이 나뉜다. 무엇보다 핵발전소 인근 지역의 주민들도 하나의 입장은 아니다. 그러나 근본적인 핵의 문제를 거론하고 핵폐기물 문제의 본질을 공론화하자는 주민들의 의견은 시스템 안에 흡수되고 무력화될 가능성이 매우 많다. 합리성을 가장한 의견의 무력화를 우리는 수없이 보아 왔다. 10만 년 이상을 보아야 하는 이 문제가 어떻게 갈음되고 대체되었는가? 재검토준비단에 들어가 공론의 틀을 마련하고 의견을 개진하겠다던 시민사회단체의 오만을 다시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중립 인사 15인으로 재검토위원회를 졸속으로 구성하는 명분을 주었고, 이 재검토 준비단에 들어가야 한다는 집념과 열정으로 똑같은 우를 범하게 되었다. 이들은 반성과 평가는커녕 산업부 탓만 하며 규탄 집회를 재검토위원회 출범 당일에 했다. 참으로 슬픈 일이다. 정부는 이런 이들을 협상의 대상으로 인정했다. 그렇기에 이들은 협상의 대상이 되는 거겠지만.

딜레마 4. 산업으로서 핵, 생존을 위협하는 핵

최근 창원 시민들은 핵발전소 부품 회사가 많은 지역에 대해 문재인 정부가 탈핵을 결정하여 지역 경제가 위축되어 타격을 받고 있다며 다시 핵발전소를 지어야 한다는 여론을 앞세우고 있다. 한편 경주 나아리 이주대책위는 4년 동안 핵발전소 인근에 살면서 피폭된 상황을 증언하고 있고, 상대적으로 방사능으로부터 안전한 지역으로의 이주를 요구하고 있다. 상반된 이유로 생존권 확보를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는 어떤 생존권을 선택하고, 그 생존권을 지키기 위한 어떤 공동체성을 발휘해야 할 것인가. 정치력을 발휘해야 할 문제다. 과연 이 정부가 이러한 문제에 정확한 노선을 공표할 만큼 명확한 입장과 실력을 갖추고 있을까.

딜레마 5. 처분 장소 문제로 협소화될 가능성이 큰, 시작부터 어긋난 공론화

한국은 사실 1983년부터 고준위 핵폐기장 부지 선정을 위해 정책을 마련해 오고 있다. 하지만 매번 지역 주민들의 거센 저항과 반대로무산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발전소와는 달리 쓰레기장이라는 심리적인 거부감이 작용했을 것이다.

탈핵을 선언한 문재인 정부는 지난 박근혜 정부의 고준위 핵폐기물 처리를 위한 법안을 보류하고 재검토한다는 계획이고, 최근 ‘사용후핵연료관리계획재검토위원회’가 출범했다. 그러나 시작부터 심상치 않다. 원점에서 다시 논의한다는 산업부의 말과는 달리 6개월이냐 12개월이냐의 턱없이 짧은 재검토 기간이 우선 그 진정성을 의심하게 한다. 난무하는 임시 저장 시설 포화에 대한 우려와 우선 임시 저장 시설의 추가 건설을 시급히 추진해야 한다는 내용을 국민들에게 주입하고 있다. 전력 대란의 우려와 안정적인 전력 공급에 지장이 생긴다는 이데올로기의 집중포화가 벌어지고 있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를 산업부와 정부는 짐짓 싫지 않은 듯 방치하고 있다. 신고리5, 6기 공론화와 마찬가지로 민주주의를 가장한 여론의 존중은 임시 저장 시설을 먼저 추가로 건설하는 방향으로 이어질 것이 불 보듯 빤하다. 결국 재검토는 더 정교하고 치밀하게 국민적 반감 없이 저장 시설을 증설하고 핵발전을 확대한다는 문재인 정부의 계획이고 결과다.

딜레마 6. 운동의 목표와 현실화 과정을 혼동하는 착각

시민단체나 정당이 작동하는 원리가 매우 정치적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순식간에 변하는 입장과 방식의 변화를 목격하고 있다. 서두에서 언급한 탈핵의 정의가 가장 첨예하게 드러나는 문제다. ‘지금 당장 탈핵하자’라는 구호를 서슴없이 외치지만, 즉각적이고 전면적인 탈핵을 생각한다면 재검토준비단에 들어가거나 신고리 5, 6호기 공론화 논의에 참여하여 대응하겠다는 결정에 신중해야 했을 것이다.

신고리5, 6호기 공론화가 거론되는 즉시 정부 비판이 거세게 일어났을 것이다. 당장에 공약 파기라고 언급하는 것이 부담스러워 에둘러 표현하는 언어를 찾자고 입장문을 내는 것 자체가 무산될 정도로 힘들어하는 어이없는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재검토준비단을 마치고도 발표를 미루고 있는 산업부를 두고 고준위핵폐기물전국회의가 기자회견 한 번 없이 재검토위원회에 위원으로 들어가는 문제를 마지막까지 ‘밀당’하는 어이없는 모습을 보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핵을 반대하는 운동은 구호가 시작이자 마지막이다. 이것이 정책을 결정하는 현실의 문제로 다가오는 순간, 운동은 변질될 수밖에 없다. 영광에서 핵발전소와 핵폐기장을 반대하면서 “반전 반핵 양키 고 홈”으로 집중했던 그 운동으로 가야 한다. 그것이 우리의 몫이고 변화의 본질적인 원천이고 힘임을 잊지 말자.

딜레마 7. 그래서 시민단체와 녹색당은 운동의 원칙을 견지할 수 있는 집단인가

반자본주의에 기반하지 않은 녹색당이나 소위 전문가 그룹으로 활동하는 시민단체들은 그래서 지금과 같이 수구 보수 세력에 비해 상대적으로 진일보한 정권이 들어서면 포지션이 순식간에 달라진다. 어제의 동지가 정부의 인사로 들어가 활동하고 있고, 그리하여 그들은 이들을 격려하고 함께 도모하는 파트너로 인정하는 집단으로 기능한다.

핵발전을 반대한다는 캠페인과 핵발전의 위험성을 알리는 캠페인이나 규탄이 있지만, 끊임없이 협력과 협상의 가능성을 도모한다. 구호에 그치지 않고 정책을 만드는 역할을 도모한다. 당연히 현실적인 단계를 만들어 가는 역할의 유의미성을 인정하고 스스로를 그 역할로 규정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대체할 다른 산업을 고민하고 마련하는 주체로 자신들을 규정하고 있고, 또 정부도 이들의 협력을 요구하여 협력 관계로 일정하게 기능할 수밖에 없다. 이것은 운동이 아니다. 이것은 운동의 변질을 필연적으로 가져온다. 이것은 운동의 힘을 약화시키고 대중에게 혼란을 준다. 무언가 성과를 내고 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켜, 운동이 아니라 정치적 역할로 변화와 전환이 가능할 것 같은 이데올로기를 만드는 데 일조한다. 단적인 사례가 신고리5, 6호기 공론화였다. 후퇴한 운동의 복원이 얼마나 힘든지는 중저준위 핵폐기장 선정 과정에서 뼈저리게 깨닫지 않았는가. 절차적 명분을 내준 결과는 지역운동과 대중운동의 약화였고, 후쿠시마 핵사고가 없었다면 한국의 핵 르네상스는 계속되었을 것이다. 언제까지 우매한 역사를 반복할 것인가

딜레마 중의 딜레마, 반핵운동의 구호와 내용은 무엇인가

기술도 없고 해법도 없고 대책도 없이 양산된 고준위 핵폐기물은 죄 없는 미래의 후대들이 짊어질 짐이고 책임이 되었다. 현재 우리에게 이 문제를 책임 있게 결정할 자격이 있는가. 최소 10만 년의 시간을 책임지고 결정할 자격이 있는지 깊이 회의해야 할 일이다.

먼저, 근본적인 운동을 이어갈 주체의 재정비가 시급하다. 정부와 협상할 단체나 정당과 분리된 운동 주체가 다시 서야 한다. 그리고 우리의 운동이 어떤 메시지로 대중과 만나고 그들이 변화의 주역이 되도록 도모해야 하는지 계획을 내놓아야 한다. 지향, 이것은 그저 바람에 휘날릴 깃발일 수만은 없다. 우리의 심장에서, 우리의 발끝에서, 우리의 어깨에서 발현되고 깊어져야 한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최악의 딜레마. 그래서 우리는 ‘지금 당장’ 모든 것을 멈추자고 말해야 한다. 즉각적이고 전면적인 핵 폐기라고 말해야 한다. 한반도 비핵화의 대상이 북한의 핵무기만이 아님을, 남한의 핵발전이 평화의 탈을 쓴 더 위협적인 존재임을 지속적으로 설파하고 조직해야 한다.

무엇보다 대체에너지와 연결된 운동으로 전락해서는 안 된다. 핵은 에너지 문제가 아니며, 전쟁 무기와 제국주의의 산물이고 상징이며, 이것이 에너지의 탈을 쓰고 존속하려는 것이다. 우리의 반핵운동은 반제국주의 운동이며 반전평화운동이어야 한다. 핵발전은 핵의 평화적 이용이라는 미명하에 존속된 핵무기와 동전의 양면이라는 사실을 운동의 가장 중요한 내용으로 삼아야 한다. 그래서 핵무기의 즉각적인 폐기와 함께 핵발전의 즉각적인 폐기와 폐쇄를 위해 투쟁해야 한다.

진실은 대중을 설득하는 가장 효과적이고 유일한 도구다. 가장 대중적인 운동은 가감 없는 진실로 얻어지며 강해진다. 고준위 핵폐기물 문제의 해법은 핵의 진실을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당연히 경제성, 전력 수급 안정화 등을 핑계로 강행된 신규 핵발전소 건설을 중단해야 하며, 조속한 폐쇄를 법제화하고 제도화해야 한다. 핵의 평화적 이용을 용인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헌법에 명시하고, 핵발전과 핵무기의 전면적인 파기를 위한 특별 기구를 상설화해야 한다. 핵 수출을 중단하고, 전 지구의 비핵화에 기여해야 한다. 미제국주의의 핵 무력을 반대하고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해 남북한의 자립과 공존을 위해 주체적인 국가의 비전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강정이, 소성리가, 핵 현안 지역의 미래를 말할 수 있다.

다 함께 외치자. 조건 없이. ‘지금 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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