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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기획] 탈핵 한국, 삼척이 길을 열다(성원기)

탈핵 한국, 삼척이 길을 열다.

삼척핵발전소반대투쟁위원회 공동대표
강원대학교 교수 성원기

인구 7만의 동해안 아름다운 해변 도시 삼척, 6월 초순의 비갠 햇살아래 겹겹이 걸린 삼척핵발전소 예정구역 고시해제 현수막이 바람에 일렁인다.
삼척시민은 37년 동안 핵발전소, 핵폐기장을 세 번 막아내고 청정삼척을 지켰다.
세 번을 나아간다는 삼척의 이름에 값하여 세계에 그 유래를 찾을 수 없는 탈핵 역사를 새로 쓰며 삼척은 세 번째 핵을 막아낸 것이다.

삼척은 1982년 당시 정부에 의해 삼척핵발전소예정구역으로 일방적으로 지정되면서 핵과의 악연이 시작되었다.
그로부터 10년 후 1992년부터 1998년까지 6년간의 항쟁을 통하여 1998년 12월 30일 삼척핵발전소예정구역을 고시해제 시키면서 첫 번째 핵을 막아냈고, 이듬해 1999년 이를 기념하기 위해 세계 유일한 원전백지화기념탑을 세우면서 반핵의 성지가 되었다.
그리고, 두 번째로 2005년 핵폐기장도 막아냈다.
이렇게 삼척은 핵발전소와 핵폐기장을 분명하게 거부하였다. 더 이상 핵발전소든 핵폐기장이든 삼척에 유치하는 것은 주권자인 삼척 시민의 뜻에 반하는 것이다.

그러나, 2010년 12월 당시 삼척시장이 삼척핵발전소 유치 신청을 시의회 동의만을 받아 신청함으로써 세 번째 삼척 반핵투쟁이 시작되었다. 주권자인 주민은 이미 핵발전소를 6년간 항쟁을 통하여 백지화시키고 핵발전소를 분명하게 거부하였음에도 주민의 의사를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신청함으로서 시민들은 투쟁의 길로 나설 수밖에 없었다.
당시 삼척시장이 주민투표로 삼척핵발전소 유치에 대한 삼척 시민들의 의사를 물어 찬성이 많아 유치신청을 하였으면 반대 투쟁은 처음부터 없었을 것이며, 반대가 많아 유치 신청을 하지 못하였으면 그것으로 삼척핵발전소 유치 문제는 종결됨으로써 9년간의 피 말리는 세 번째 삼척반핵투쟁은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삼척시장이 유치신청을 하더라도 당시 이명박 정부가 삼척은 이미 정부가 1998년 핵발전소 예정구역을 고시해제한 지역이므로 주권자인 주민의 의사를 존중하여 유치신청을 받지 않았더라면 세 번째 삼척반핵투쟁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반대 투쟁을 이끈 주민들이 그대로 살아있는 삼척에 정부가 고시해제하고 12년 만에 주민의 의사를 묻는 주민투표 없이 삼척시장이 핵발전소 유치신청을 함으로써 주권자인 삼척 시민들이 전면적인 반핵투쟁의 길로 나서게 된 것이다. 반핵투쟁은 주민투표 요구 투쟁 이었으며 주민투표가 반핵투쟁의 시작이며 끝이 되었다. 삼척시장은 2011년 2월 반핵단체의 주민투표 요구를 96.7%가 찬성하였다고 주장하는 삼척핵발전소 유치신청 찬성서명부로 덮으려 하였으나 허위 논란을 증폭시키며 투쟁의 열기만 더욱 높였다. 결국 96.7%의 찬성 서명부는 2014년 10월 9일 주민투표를 앞두고 김기남의원에 의하여 허위서명부임이 밝혀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2011년 3월 11일 일본 후쿠시마 핵사고가 발생하였다. 후쿠시마 핵사고는 세계를 경악시켰으며 단 한번의 사고로 한 지역이 아니라 한 국가가 돌이킬 수 없는 위험에 처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핵발전소 안전신화는 깨졌다. 핵발전소는 더 이상 안전하지 않으며 핵발전소 위험에 대하여 전 국민이 명백하게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때라도 정부가 후쿠시마 핵사고로부터 교훈을 얻어 대만, 독일 등의 국가들처럼 탈핵으로 국가에너지정책을 전환하여 더 이상의 신규핵발전소 건설을 포기하였다면 삼척반핵투쟁은 종료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후쿠시마 핵사고에도 불구하고 핵발전소확대정책을 계속 밀고 나갔으며 이에 삼척의 반핵투쟁은 계속 될 수 밖에 없었다.

삼척반투위에 이어 두 번째로 2011년 3월 8일 근덕.노곡원전반대투쟁위원회가 발족되고 삼척반핵단체들은 본격적으로 삼척시장에게 핵발전소유치신청 철회여부를 묻는 주민투표를 요구하였다. 주민투표요구가 계속 묵살 당하자 2012년 삼척시장을 소환하고 새로 선출된 시장이 주민투표를 실시하도록 하기 위하여 삼척반핵단체는 삼척시장주민소환운동에 돌입하였다. 2012년 8월 1일 전격적으로 주민소환청구 서명부를 삼척시선관위에 접수 할 때 까지가 반핵투쟁의 절정이었다. 청구서명을 받는 반핵단체나 이를 저지하고 철회시키려는 삼척시장이나 사활을 건 진검승부가 펼쳐진 것이다. 그리고 이 시기의 투쟁이 삼척반핵을 결정지었다. 7월 30일에 강원대학교 삼척캠퍼스 전체교수 204명중 107명의 서명교수일동 명의로 삼척핵발전소 반대입장을 담은 교수성명서가 발표되었으며, 주민소환투표의 관건은 전체 유권자 15%이상 주민소환투표청구 서명자 확보였다. 9월 13일 삼척선관위에서 청구서명자 수가 전제 유전자의 15%이상 되었다고 공고하고 10월 31일 주민소환투표를 실시하였다. 투표결과 투표율이 개표할 수 있는 33%에 미달하는 25.9%에 머물러 시장주민소환은 실패로 끝났다. 그러나 이때의 소환투표 실패는 2014년 시장선거의 밑거름이 되었다.

또한, 2013년 6월 삼척반핵단체가 주관한 탈핵희망국토도보순례가 시작되었으며, 삼척반핵역사에서 활동범위를 삼척에서 전국으로 확대하는 계기가 되었다. 부산 고리핵발전소에서 시작하여 동해안을 따라 삼척을 거쳐 속초, 춘천, 광화문까지, 다시 광화문에서 서해안을 따라 영광핵발전소까지 다시 영광핵발전소에서 2014년 2월 남해안을 따라 3월 1일 출발지였던 고리핵발전소에 도착하여 탈핵독립선언을 하였다.

2014년 삼척반핵단체는 핵발전소를 유치신청한 당시 삼척시장과 반핵후보가 맞붙은 6.4 지방선거에 전력을 다하였다.
3월 초순부터 6.4 지방선거일 전날까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삼척우체국 앞 1인 시위, 우리나라를 한 바퀴 도보순례한 탈핵희망깃발을 들고 매주 토요일, 일요일 3시간씩 주말을 반납한 채 전단지를 배포하면서 시내를 골목 골목 순례하며 시민들에게 삼척핵발전소를 막아달라고 호소하였다. 3개월 동안 계속된 반핵단체의 지극한 정성에 감동되어 시민들은 호응을 하였다. 이러한 노력이 더해져 선거초반 3대 7의 열세이던 선거에서 전국 최고투표율인 68%투표율에 62.4%의 압도적인 승리로 김양호반핵후보가 삼척시장으로 당선되었다. 반핵시장 당선이라는 선거혁명이 일어난 것이다. 그리고, 김양호시장은 주민투표 공약을 지켜 불과 3개월만인 10월 9일 삼척핵발전소유치신청 철회 찬반을 묻는 주민투표를 실시하여 시장선거 투표율과 같은 68% 투표율에 85%의 핵발전소 반대를 세상에 알렸다. 이로서 삼척시민들은 주권자로서 핵발전소 유치를 철회하고 시민의 힘으로 백지화 시키게 된 것이다. 이것이 삼척의 세번째 반핵의 역사이다.
그러나, 세 번째 반핵역사를 완성시키기 위하여 더 큰 도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삼척시장은 정부에 주민투표결과에 따라 삼척핵발전소유치신청 철회를 공문으로 요구하였으나 박근혜정부는 핵발전소 백지화를 거부하였다.
이는 주권자인 삼척시민의 요구가 무시된 것이다.
핵발전소확대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는 박근혜정부에서 삼척핵발전소 백지화는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이제 위험한 핵발전소를 벗어나기 위해 탈핵하겠다는 대통령을 선출하여 국가에너지정책이 탈핵으로 전환될 때 비로소 삼척핵발전소도 백지화될 수 있는 것이다.
삼척의 반핵시장 당선과 주민 투표의 승리의 역사는 전국의 탈핵진영에 용기를 심어주었으며 탈핵희망국토도보순례를 통하여 2014년 여름부터 2017년 2월까지 매 해 여름 겨울 전국에 전파되었다.
한 도시가 반핵시장을 뽑으면 반핵도시가 되는 것처럼 탈핵 대통령을 뽑으면 우리나라가 탈핵 국가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가 전달된 것이다. 이러한 노력이 더해지고 후쿠시마 핵사고로 인하여 더 이상 핵발전소는 안된다는 국민의 공감대가 형성되어 2017년 대선에서 탈핵 진영에서 대선후보에게 탈핵을 공약으로 요구하였으며 대부분의 대선 후보가 탈핵을 공약하였다.
탈핵을 공약으로 내건 문재인대통령은 2017년 6월 19일 고리1호기 영구정지선포식에서 탈핵으로 국가의 에너지정책전환을 선언하면서 계획 중인 신규 핵발전소인 삼척, 영덕, 신울진3.4호기 6기를 백지화하겠다고 선언하였다.
그로부터 2년 후인 2019년 6월 5일 산업통산자원부는 삼척 핵발전소예정구역 지정고시를 철회 고시함으로서 삼척핵발전소는 백지화 되었다.
이렇게 2010년 삼척에서 시작된 삼척핵발전소 반대투쟁은 후쿠시마 핵사고를 거치면서 우리나라가 탈핵으로 가는 불쏘시개 역할을 한 것이다.
이제 영덕, 신울진3.4호기 신규핵발전소도 조속히 고시해제하여 신규 핵발전소 건설을 백지화하는 것이 한국탈핵의 시작이다.
삼척반핵단체는 2010년부터 9년을 하루같이 삼척시민과 하나 되어 집회, 시위, 기자회견, 성명서발표, 서명활동, 가두방송, 가두행진, 전단지배포, 1인 시위, 도보순례, 오체투지, 상여운구, 삭발, 혈서, 미사, 촛불집회 등 필요할 때 마다 온 몸으로 투쟁하였다. 매주 수요일 오후7시 탈핵미사를 봉헌하고, 7시 40분 삼척우체국 앞에서 촛불집회를 하였다.
2019년 6월 5일 수요일, 352번째 촛불을 들었을 때 그 날 비로소 핵발전소가 고시해제되고 백지화되었다. 그리고 그 촛불이 마지막 촛불이 되었다.
삼척시민은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를 지낸다는 인디언처럼 그렇게 핵발전소가 백지화되는 그날까지 끈질지게 싸웠다.
그리고, 시민 모두가 삼척핵발전소 백지화의 주인공이 되었다.
탈핵한국의 길을 여는 불쏘시개 역할을 한 삼척핵발전소 반대투쟁의 역사는 한국 탈핵역사에 길이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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