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림] 한국탈핵에너지학회(준) 창립준비 제7차 학술회의

한국탈핵에너지학회(준) 창립준비 제7차 학술회의

  • 일시: 2020년 5월 22일(금) 오후1시반~5시반
  • 장소: 서울 프란치스코 교육회관 7층 체칠리아홀

<초청강연회> 오후1시반~2시45분
원전이 기후위기의 대안이 될 수 없는 이유
강연: 윤순진(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환경에너지정책)
공동주최: 대한국토도시계획학회 기후위기및지구촌연구위원회, 한국탈핵에너지학회(준)

<제7차 학술회의> 오후3시~5시반
제1부. 원전 추종자들의 ‘확증편향’ 심리
발제: 한규석(전남대 명예교수, 사회심리학)
제2부. 학회의 역할과 다루어야 할 연구의제
발제: 이원영(수원대 교수, 국토계획)
자유토론
창립준비위원들과 참석자가 함께

[논문] 체르노빌 원전 사고-20세기가 보내온 생명 파괴의 경고(한정숙)

환경과 역사

체르노빌 원전 사고

―20세기가 보내온 생명 파괴의 경고

한정숙

체르노빌(Chernobyl). ‘체르노브일’이라 쓰고 ‘체르노’ 다음에 ‘브일’을 함께 빨리 읽은 뒤 혀를 경구개에 살짝 대었다가 떼어내면 원음에 가까워진다. 아, 이곳은 우크라이나 땅에 있으니까 우크라이나 식으로 읽으면 ‘초르노브일’에 가깝다. 러시아어 체르노브일, 우크라이나어 초르노브일은 봄이 오면 들판에 지천으로 자라나는 풀인 쑥의 한 종류를 뜻한다. 쑥은 강인한 생명력을 지닌 식물이다. 그만큼 이 도시 이름은 자연친화적이고 소박한 뜻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체르노(러시아어), 초르노(우크라이나어)는 ‘검은’이라는 뜻을 가진다. 브일은 ‘이다’ 혹은 ‘있다’를 뜻하는 말의 과거형과 거의 같다. 그러니 그곳은 ‘검은 곳이었다’라고 해야 할까? ‘불에 타버림’이 그곳의 원래의 숙명이었을까?

그런데 나는 왜 이 지명을 두고 발음이니, 글자를 쪼갰을 때의 의미니 하는 사소한 것을 꺼내들며 미적거릴까? 한가해서일까? 아니다. 이곳 이야기를 하기가 그만큼 힘들고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이곳에 대해 무언가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마음을 다잡아먹고 크게 숨을 들이쉬어야 한다. 체르노빌은 아우슈비츠, 히로시마와 마찬가지로 단순한 지명이 아니다. 그것은 대명사이고 상징이다. 아우슈비츠가 인종학살의 대명사이고, 히로시마가 전쟁과 핵무기로 인해 인류가 맞은 참사의 대명사이듯, 체르노빌은 소위 핵에너지의 평상시(이른바 평화적) 이용에서 빚어진 비극을 대표하는 대명사이다. 1986년 4월 26일 새벽,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제4호 원자로가 폭발함으로써 빚어진 인명 손실, 자연 파괴, 건강과 생명에 가해진 끔찍한 손상과 계속되고 있는 위협은 이곳의 이름을 시간 속에 정지시켰고, 영원히 전율스러운 것으로 만들었다.

사람들은 지금 체르노빌이라는 말에서 괴물, 기형, 유령도시 등의 단어를 우선 떠올린다. 그러나 이곳은 동슬라브 역사에서 오래 전부터 기록에 등장하는 고도이자 벨라루스(Belarus)에 가까운 국경지대, 울창한 숲에 둘러싸인 평화스럽고 고즈넉한 거주지였다. 2차 대전 중에는 독일군의 침공으로 피해를 겪기도 했지만, 그 후에는 특별한 일만 없었다면 평화와 고즈넉함이 계속되었을 것이다. 원자로의 폭발이라는, 특별한 일 가운데서도 특별한 일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20세기 후반 소련의 핵에너지 정책

2차 대전 이후 체르노빌 참사 이전까지 소련은 원자력 찬가가 울려 퍼지던 나라였다. 많은 원자력발전소가 지어졌고, 소련 지도부는 원자력의 안전성, 청정성, 효율성을 선전했다.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론, 소련 에너지산업의 전환 필요성 등이 여기에 고루 영향을 미쳤다.

미국에 이어 소련도 1949년에 원자폭탄 제조에 성공했다. 냉전시대 소련이 양대 초강대국의 하나로 미국과 자웅을 겨룰 수 있었던 데는 사회주의적 산업화와 분배체제가 궤도에 올라선 뒤 체제경쟁이 전 세계적 관심을 모았던 점도 작용했지만, 무엇보다 이 나라가 막강한 군사력을 보유한 핵 강국이라는 사실이 바탕에 깔려 있었다. 물론 핵무기 경쟁을 공공연히 강화시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아 보였다. 1950년대 이후 동서 양 진영 사이에서는 냉전의 일시적 강화와 긴장 완화가 교대로 나타났지만 전체적으로 핵전쟁을 피해야 한다는 당위론이 국제사회에서 공유되었다. 그렇지만 핵보유국 정부들과 핵에너지 관련자들은 핵무기도, 핵무기 생산과 관련된 기술도 결코 포기하려 하지 않았다.

여기서 핵보유 열망을 충족시키면서도 이를 좀 덜 폭력적이고 좀 더 윤리적으로 보일 수 있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한 것이 이른바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이라는 개념이었고, 이에 바탕을 두고 ‘평화를 위한 원자력(Atoms for Peace)’ 프로그램이 진행되었다.1 이들 개념은 미국의 드와이트 아이젠하워(Dwight Eisenhower) 대통령이 1953년 12월 8일 유엔 총회에서 행한 연설 이후 일반화되었다. 육군 장성 출신 정치인인 아이젠하워는 강대국들의 핵무기 개발 경쟁으로 미국의 핵 독점이 깨졌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있었다. 그의 이 연설을 촉발한 계기가 된 것도 몇 달 전인 8월 12일 소련에서 수소폭탄 제조를 위한 열핵 폭발이 성공했다는 사실이었다.2 아이젠하워는 평화를 위해 사용할 줄 아는 사람의 손에 핵을 줘야 한다고 주장했고, 소련을 향해서도 핵을 평화적으로 이용하는 데 동참하자고 요청했다.3 1954년의 유엔 9차 총회는 12월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에 대한 결의문을 채택했다. 이 결의문은 “원자력 에너지의 발견에서 비롯된 여러 이득은 인류를 위해 봉사하는 데 사용되어야 한다”고 천명했으며, 평화적 목적을 추구하고 생활조건을 향상시키기 위한 원자력 에너지의 사용을 “적극적으로 장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4

그런데 사실 소련은 아이젠하워의 연설 이전부터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론을 내놓은 바 있었다. 소련의 유엔 대표였던 안드레이 비신스키(Andrey Vyshinsky)는 1949년 11월 유엔 총회에서 자국의 핵무기 개발을 옹호하며 이렇게 말했다. “소련이 원자력 에너지를 사용한 목적은 핵폭탄 저장량을 축적하고자 함이 아니었다. (…) 소련은 산을 폭파하고 강줄기를 바꾸며 사막에 물을 대고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은 지역에 생명의 새 길을 내는 것과 같은 국내 경제적 목적을 위해 원자력 에너지를 사용하고 있었다.”5 소련은 1950년대 초에 경제적 목적으로 원자력을 이용하기 위한 자체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개발 중이었다. 따라서 국제사회에서 핵에너지의 평화적 이용 담론이 호응을 얻자 소련도 반대하지 않고6 오히려 이를 활용했다. 소련 수소폭탄의 아버지 사하로프도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열렬히 옹호한 사람 중 한 명이었다.7

핵에너지의 평화적 이용 개념은 토목 건설, 석유 및 가스 채취, 농업, 의료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여러 용법과 관련해 사용되었지만,8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 것이 곧 핵에너지를 전기에너지로 바꾸는 작업인 원자력발전이었다. 미국과 소련이 원자력발전에서도 최강국이 된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사실 ‘핵에너지의 평화적 이용’은 핵무기 생산기술을 유지한 채 이 기술을 활용함으로써 필요한 경우에는 핵무기 생산으로 전환할 수 있게 해주는 안성맞춤의 도구였다. 핵에너지의 평화적 이용을 위해 사용되는 기술은 핵무기 제조에 사용되는 기술과 기본적으로 동일하기 때문이다.9 원자로 노심에 사용되는 우라늄, 원자로에서 사용하고 남은 연료봉을 재처리해서 만드는 플루토늄 239가 핵무기의 원료가 되는 것에서도 이를 알 수 있다.10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한편 20세기 후반 소련에서 전통적 에너지산업은 저효율 산업이 되어가고 있었다. 번성하던 가스 석유산업은 1970년대 중반부터 일시적인 쇠퇴 국면에 들어섰다. 오일쇼크 이후 국제시장에서 석유 가격이 하락했고, 석탄 매장량이 줄어들면서 전통적인 기술로 석탄을 캐내기도 어려워졌다. 석탄산업 중심지가 시베리아 극동 지역으로 이동하자 에너지 산지와 공업 지역이 너무 멀어졌다.11 이 때문에 1970년대 소련 정부는 공업지역 가까운 곳에 발전소를 짓기로 결정했다. 원자력발전소는 이를 위한 좋은 해결책이 될 것으로 보였다.

러시아연방에는 1950년대에 건설된 첼랴빈스크 원전을 비롯해 레닌그라드, 쿠르스크, 스몰렌스크, 코스트로마, 노보보로네슈 등 여러 곳에 원자력발전소가 건설되었지만 특히 우크라이나공화국은 원자력발전소가 밀집한 곳이었다. 우크라이나는 고도로 공업화된 지역이어서 전력 수요도 컸지만, 소련 정부는 원전 생산 전력을 수출하려는 의도도 가지고 있었다. 체르노빌 발전소에서 가동된 원자로는 소련에서만 사용된 RBMK형이었지만, VVER형 원자로는 체코슬로바키아에서도 제작되었고 수출되기도 했다.12

체르노빌 발전소는 소련 정부에 의해 1960년대에 건설 결정이 내려진 뒤 1970년대 초반부터 지어졌다. 1978년에 1호기가, 1979년에 2호기가 각기 1,000메가와트의 전력을 생산하기 시작했으며 4호기는 1983년에 건설되었다.13

체르노빌 이전 소련의 원자력발전소 사고

소련 정부는 원자력이 청정한 에너지이며 특히 소련의 원자력은 안전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 자신이 한때 체르노빌 발전소에서 일했고 방사능 질병에 걸려 치료를 받은 적이 있는 핵 기술 전문가 그리고리 메드베데프의 증언에 따르면, “35년 동안 학술원 회원들은 핵 발전소는 심지어 가장 간단한 러시아식 대형 물주전자(사모바르)보다 더 안전하다고 누구에게나 보증했다.”14 소련의 원자력발전소에서 크고 작은 사고가 끊이지 않았음에도 그러했다. 예를 들어 1958년에는 우랄산맥 부근의 첼랴빈스크 원전에서 사고가 일어나 여러 마을을 파괴했다. 이 사건은 발생 당시 진상이 드러나지 않았고, 그래서 소련 출신으로 영국으로 망명하여 1970년대에 이 사건에 대한 책을 집필한 조레스 메드베데프만 하더라도 정확한 연도를 몰라 이 사건이 1957년 아니면 1958년에 일어났다고 썼다.15 현지 주민들은 사고가 일어난 것은 알았지만 원자력발전과 관련된 것이 아니라 핵폭탄이 폭발한 것이라고 믿었다고 한다.16 조레스 메드베데프 자신은 이 사고가 지하에 묻어놓았던 핵폐기물이 대기 중에 유출됨으로써 빚어진 것이라고 보았다.17 그의 주장은 이후 사실로 받아들여졌다.18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논쟁의 구도이다. 이 사건의 원인에 대한 논쟁에서 ‘핵폐기물 관리 소홀로 인한 사고는 반핵 투쟁의 근거가 될 수 없다’는 주장이 등장했다. 예를 들어, 1972년 소련에서 이스라엘로 망명한 학자로서 이스라엘의 원자력발전 강화 필요성을 역설했던 레프 투메르만은 이 사고가 원자로 사고였다는 미국 정보원들의 주장을 일축하고 핵폐기물 관리 소홀로 인한 사고임을 강조하면서, 이것이 핵 발전 반대 투쟁의 무기로 이용되어서는 안 된다고 썼다.19 원자로 사고이건 핵폐기물 사고이건 모두 핵 발전과 관련된 재앙임을 지적하는 오늘날의 원전반대운동의 논리에서는 수용하기 어려운 입장이다.

소련에서는 이후에도 크고 작은 원전 사고들이 일어났다. 1974년 2월 레닌그라드 원자력발전소 제1호 원자로에서 사고가 났을 때는 세 명이 사망했고, 체르노빌에서도 이미 1982년 9월에 1호기 원자로 작동 오류로 방사성물질이 프리퍄트시市로 퍼져 나가는 일이 있었으며, 1985년에는 발라코보 원자력발전소의 사고로 14명이 사망했다.20 그러나 이런 사고들은 일반 주민들에게 보도되지 않았고, 소련인들은 원자력발전의 안전성을 계속 신뢰했다. 이 믿음에 근본적으로 도전한 것이 1986년의 체르노빌 사고였다.

체르노빌 사건의 경과

1986년 4월 26일,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에서 새벽 1시 23분 48초 무렵부터 2~3초 간격을 두고 엄청나게 큰 두 번의 폭발음이 울렸다. 4호 원자로의 폭발음이었다. 당시 체르노빌 발전소에는 4기의 원자로가 가동되고 있었고 5, 6호기의 건설이 막 시작된 상황이었다.

체르노빌 발전소의 원자로는 1954년 소련 오브닌스크에서 개발된 흑연감속 비등경수 압력관(RBMK)형으로 1기당 1,000메가와트의 전력을 생산하는 고성능 기구였다. 그래서 체르노빌 원전 4호기는 RBMK 1000형이라 불렸다. 이 유형의 원자로는 1973년부터 가동되기 시작해 1986년에는 소련 내에 모두 14기가 가동되고 있었으며 1980년에는 소련 전체 원자력발전량의 64.5%를 차지했다.21 RBMK형 원자로는 압력관이라 불리는 금속관 속에 핵연료를 넣고 이 압력관을 흑연감속제 파일 속에 관통시켜 노심을 이루게 한 것이 특징이다. 정상가동될 때는 아주 안전하지만 출력을 낮추었을 때 통제가 어렵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었다. 이는 원자로 밖으로 모두 빠져나왔다 속으로 내려갔다 하면서 작용하는 제어봉의 특이한 작용과 관련되어 있었다. 제어봉이 모두 빠져나왔을 때 갑자기 핵분열이 가속화할 수 있었다.22 사후에 지적된 이 원자로의 또 다른 단점은 격납용기 안에 들어 있지 않다는 점이었다.23

사고는 4월 25일 밤부터 26일 새벽 사이에 원자로 4호를 대상으로 비상시에 냉각수를 공급할 전력 확보를 위한 실험을 하던 중에 일어났다. 원자로를 식히는 냉각수 공급을 위해서는 통상적인 전력 공급이 중단되더라도 자가발전용인 디젤발전기가 가동하여 전력을 제공하게 되어 있었는데, 디젤발전기의 작동에는 40~50초의 사간이 필요했다. 이날의 실험은 증기터빈발전기의 관성력을 이용해 이 짧은 공백을 메울 소량의 전기를 생산할 수 있는지 알아보려는 것이었다.24 다시 말해 이는 사고를 막기 위한 실험이었다.

이날의 실험 담당자들은 실험이 기기 조작 매뉴얼을 따라 착오 없이 진행되고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실험을 위해 원자로 출력을 낮추는 과정에서 제어봉 사용에 무리가 있었고, 그로 인해 원자로의 온도가 불안정해졌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일련의 연쇄 과정으로 원자로 노심 온도가 수직 상승했고, 새벽 1시 22분 30초에 원자로를 끄라는 비상 경고 신호가 있었으나 기기 조작자는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운명의 사고는 순식간에 일어났다. 두 차례 폭발로 높이 64미터에 무게 천 톤에 달하는 원자로 덮개가 날아갔고 원자로가 파괴되었으며 붉고 푸른색을 띤 불길이 치솟았다.25

파괴된 원자로 사고 이후 붕괴된 원자력발전소의 참상. 굴뚝 앞부분이 파괴된 4호 원자로이다.

사고가 나자 목격자들과 관련자들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화재가 난 것’으로 인식했다. 발전소의 차석 엔지니어 댜틀로프는 ‘가스 폭발이 일어났다’고 생각했다.26 불길이 치솟자마자 담당 소방관들이 달려와 진화 작업을 시작했다. 백 명도 넘는 소방관이 워낙 치열하게 작업했기에, 새벽 5시에는 일단 진화가 된 듯했다. 그러나 낮부터 또다시 불길이 타오르기 시작했다.27 모스크바에서 내각 부총리 시체르비나를 비롯한 고위 인사들이 체르노빌로 모여들어 대책위원회를 구성했다. 곧 위원회의 명에 따라 화재를 진압하고 방사성물질의 유출을 막기 위한 특수작전이 전개되었다. 군 헬리콥터가 동원되어 납, 모래, 자갈 등 무거운 물질을 자루에 넣어 공중에서 원자로 안으로 투하했다.28 이렇게 던져넣은 물질이 5,000톤에 이르렀는데, 원자로가 그 무게를 이기지 못해 와해될 위험이 있었다.29 결국 모래 투하는 중단되고, 그 대신 콘크리트 덮개로 원자로를 덮어 싸게 되었다. 이미 방사성 재와 가스가 온 사방으로 퍼진 다음이었다. 이때 방출된 방사성물질 가운데 반감기가 긴 원소들은 여전히 대기와 토양, 물, 동식물, 건물, 그리고 인간의 몸속에 들어 있거나 붙어 있다. 사고는 이렇게 잠깐 사이에 일어났고 영원으로 이어지고 있다. 최근 우크라이나 정부는 사고 원자로 둘레에 새로운 콘크리트 엄폐물을 마련하기로 했다.

희생자들과 피해자들

체르노빌 사건의 희생자 수는 논자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사고 뒤 며칠 만에 발간된 『뉴욕 포스트』 1986년 5월호는 15,000명의 사망자가 집단 매장지에 묻혔다고 보도한 반면,30 같은 해 11월 15일 소련 공산당 기관지 『프라브다』는 4호 원자로가 확실하게 매장되었다고 알려진 시점까지 31명이 사망했다고 공식 발표했다.31 이 수치는 발전소 직원들과 소방관들의 죽음을 말하는 것이고, 수많은 해체 작업자와 일반 주민, 특히 어린이들의 죽음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이었다. 당시 소련공산당 서기장으로 국정 최고 책임자였던 미하일 고르바초프(Mikhail Gorbachyov)는, 2011년 3월에 체르노빌 사고 25주년을 맞아 기고한 글에서 희생자 수에 대해 다음과 같은 수치를 제시했다. “약 50명 정도의 근로자가 불길과 원자로 노심 용해에 맞서 싸우다가 사망했으며, 그 외에 4천 명 혹은 그 이상의 사람이 결국 방사능물질 누출로 인해 사망했을 것으로 볼 수 있다. 사고 당시 발전소 안 방사선 수치는 시간당 2만 뢴트겐이 넘었던 것으로 측정되었는데, 이는 치사량의 40배가 넘는다. 그리고 세계보건기구(WHO)는 237명의 근로자가 급성 방사성병에32 걸린 것으로 판정했다.”33 2006년 그린피스는 체르노빌 사건으로 인한 사망자는 93,000명이고 질병으로 고통 받는 피해자는 220,000명이라고 보고했다.

발전소 직원들

원자로 폭발의 첫 희생자는 발전소 근무자들이었다. 발레리 호뎀축은 무너지고 있던 건물 더미에 깔려 압사했고, 그의 시신은 끝내 찾지 못했다. 블라디미르 샤셰녹도 중화상과 골절상을 입고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새벽 여섯 시에 사망했다.34 25~26일의 당직 기술자로 실험을 위한 버튼을 눌렀던 레오니드 톱투노프는 5월 14일에 사망했다. 그는 스물여섯 살 난 젊은이였는데, 사고 원자로의 기술적 결함을 무시하고 실험 강행 결정을 내린 발전소 지도부의 명령을 따랐다고 지목되기도 했다.35 소련이라는 거대한 구조물의 붕괴를 가져오기 시작한 그 치명적 폭발이 앳된 용모를 가지고 있던 이 젊은이의 기기 조작 잘못 때문인지, 그 진실은 누구도 알 수 없다. 어쨌든 그는 사고의 확산을 막으려 현장에서 노력하다 목숨을 잃었다.

작업반장 알렉산드르 아키모프도 가장 먼저 사망한 사람들 중 한 명이었다. 그의 부인은 5월 11일 모스크바 원자력병원의 특별병실에서 죽음을 맞았던 남편의 마지막 순간을 이렇게 회상했다. “온몸이 그야말로 숯덩이가 되었어요. 남편은 눈을 뜬 채 죽었습니다. 남편도, 남편의 동료 직원들도 모두 같은 생각으로 괴로워했어요. ‘무엇 때문인가?’라는 물음말입니다.”36 차석 엔지니어 아나톨리 시트니코프는 원자로를 직접 들여다보면서 점검하고 이것이 파괴되었음을 확인하여 알린 뒤37 역시 방사선 피폭을 이기지 못하고 사망했다. 대부분의 당직 근무자들은 사고를 국지화시키기 위해 몸을 돌보지 않은 채 사투를 벌였고, 상당수가 오래지 않아 세상을 떴다.

진화 작업자들, 해체 작업자들

발전소 담당 소방관들은 사고의 확산을 막은 으뜸가는 공로자였다. 사건의 진상을 알지 못한 채 일반적 화재가 일어났다고만 여겼던 이들은 방호복도 없이 진화 작업에 임했고, 그 과정에서 엄청난 양의 방사선에 노출되었다 5월 19일 소련 정부 기관지 『이즈베스치야』는 여섯 명의 소방관이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첫 출동 팀의 지휘관이었던 프라빅 중위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그의 온몸은 화상을 입어 부풀어 올랐고 피부조직은 와해되었다. 그와 동료들은 혈액 형성을 위해 골수이식 수술을 받고 태반 추출물까지 제공받았지만 죽음을 이기지 못했다.38

모래나 납, 자갈이 든 가방을 원자로에 투하하기 위해 헬리콥터를 몰았던 조종사들도 방사선에 노출되었다. 헬리콥터 문을 열고 원자로에 모래주머니를 던져넣으면, 원자로에서는 방사성 재가 일면서 우라늄, 플루토늄 입자들이 날아올라 헬리콥터에 탄 사람들의 몸속으로 들어갔다. 조종사 중 한 사람으로 120회 비행하고 200~300톤의 냉각재를 투하했던 보돌라즈스키 대령의 죽음 역시 영웅적인 것이라 할 만했다.39

사고 이후 심하게 방사선에 노출된 또 한 그룹이 있었으니, 그들은 ‘해체 작업자(ликвидаторы, liquidators)’들이다. 발전소에 인접한 프리퍄트의 주민이 소개된 직후 원자로를 중심으로 반경 30킬로미터 범위 내의 지역이 접근금지 구역으로 선포되었다. 지금은 그냥 ‘구역’이라고도 불리는 이 금지 구역에서는 방사선 오염 건물의 해체 및 토양의 오염 제거 작업이 진행되었다. 파괴된 4호 원자로를 파묻는 작업 같은 것은 독일에서 도입한 로봇이 수행했다. 그러나 일반 건물, 도로, 숲, 농토, 강과 호수 등의 방사성물질 오염은 사람의 손을 빌려 제거했다. 해체 작업자들은 ‘구역’ 안에서 일했는데, 15일 밤낮을 일한 뒤 15일 동안은 대기소에서 휴식했다. 그들은 원자로 지붕을 걷어내고 들판의 흙을 교체하고 도로와 건물을 일일이 씻어냈으며 강과 지하수의 오염 방지를 위해 차단벽을 설치했다.40

수십만 명의 군인과41 각지에서 몰려든 자원자들이 이 작업을 수행했다. 그들은 방사선 피폭 위험성에 대한 경고도 제대로 듣지 못한 채 중노동에 투입되었다. 그들의 열성적인 작업 덕에 방사성물질 전파를 최소화시킬 수 있었지만, 이는 수많은 작업 종사자들이 방사성물질 오염으로 고통 받다 사망하고 자녀들까지 방사선에 피폭되는 결과를 낳았다. 체르노빌 사건으로 고통 받은 사람들의 목소리를 담은 알렉시에비치의 인터뷰 모음집에는 해체 작업자들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등장한다. 벨라루스에서 ‘체르노빌 지킴이(Щит Чернобылю)’라는 단체의 부대표로 있는 소볼례프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지금 야로슈크 대령이 죽어가고 있소. 화학자이자 방사선 산량 기사였소. 건장한 남자였는데 전신이 마비됐소. (…) 그는 구역을 걸어서 돌아다니며 방사선량 경계를 표시했소. 그러니까 사람을 완전히 생체 로봇 취급한 것이오.”42

프리퍄트 사람들, 고멜 사람들,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
발전소가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라는 이름을 가지기는 했지만, 체르노빌시市는 발전소와는 거리상으로나 기능상으로나 좀 떨어져 있었다. 사실 4호 원자로와 운명을 함께한 도시는 프리퍄트였다. 이곳은 발전소 직원과 가족들을 위한 거주지로 1972년 4월에 세워진 아담한 계획도시였다. 발전소에 아주 인접한 곳(2킬로미터 떨어짐)에 위치했으며, 사고 당시 인구는 약 4만 9천 명이었다. 각종 지원시설을 갖춘 깨끗한 도시여서 교육받은 젊은 전문직 종사자들이 이곳을 선호했다. 주민의 평균 연령은 26세였고 해마다 천 명 이상의 아기가 태어났다. 한마디로 활기 넘치고 생활수준도 높은 편이며 주민들의 만족도가 높은 도시였다.43

그러나 체르노빌 발전소의 사고가 모든 것을 바꾸어놓았다. 프리퍄트시와 인근 마을들에서는 4월 27일 오후 2시부터 주민들의 전면 소개疏開가 실시되었다.44 주민들은 사흘 뒤에는 돌아온다는 당국의 말에 따라 신분증과 약간의 돈 같은 물품만을 챙겨 대형버스에 올랐으나, 이 길은 곧 그들의 고향, 집, 정든 마을과의 영원한 이별이 되었다.45

프리퍄트 주민 소개 이후 ‘구역’에서는 해체 작업이 진행되었고 일반인의 접근이 금지되었다. 그러나 옛 고향을 잊지 못하는 노인들, 세상을 등진 은자들은 언제부터인가 하나둘씩 다시 금지 구역에 들어와 살기 시작했다.46

핵연료 입자, 연무질, 가스 형태를 띤 방사능 핵종들이 바람을 타고 퍼져 나감에 따라 주변 지역 주민들도 곧 피해를 입기 시작했다. 사고 이후 얼마 안 되어 소련과 다른 여러 나라의 토양 오염도 조사가 실시되었다. 방사선 오염을 측정하는 기준 물질로는 세슘-137이 선택되었고, 토양 중 세슘-137 농도가 1Ci/㎢(1제곱미터당 37킬로베크럴) 이상인 곳이 방사선 오염 지역으로 규정되었는데,47 방사선 오염 지역으로 인정되는 지역은 거의 13만 제곱킬로미터라는 엄청난 면적에 이르렀다.48 그런데 소련의 공화국들 중 방사성물질에 가장 심하게 오염된49 지역의 면적이 가장 넓은 곳은 벨라루스였다.50 체르노빌 발전소는 행정적으로 우크라이나에 속하되 벨라루스와의 접경지대에 위치해 있는데, 참사가 났을 때 바람이 사흘 동안 계속 북서쪽으로 불어 벨라루스에 방사성물질을 실어 나른 것이다. 4월 30일부터는 바람이 반대쪽으로 불기 시작했기 때문에 러시아연방 동부 도시들과 우크라이나 도시들도 방사선의 영향을 받게 되었다. 발전소와 가까운 벨라루스의 고멜 지역과 모길료프 지역에는 방사성물질이 공기를 통해 빠른 속도로 퍼졌지만,51 당국이 사고의 진상을 은폐했기 때문에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요드 섭취, 토양의 제염 작업, 소개를 비롯한 대책을 마련하기도 어려웠다.52 벨라루스는 원자력발전소가 전혀 없는 곳이었음에도 이 같은 변을 당했다는 점에서 모두에게 생각할 문제를 던져준다.

1995년에도 소련의 세 공화국, 벨라루스, 러시아연방, 우크라이나에서 사회적 보호에 관한 법에 따라 방사선 오염 지역으로 선포된 지역에 거주하는 주민은 모두 515만 9천 명이었고,53 여러 해에 걸쳐 이주된 주민은 모두 35만 명이었다.54

체르노빌 사고로 인해 방사선에 피폭된 주민, 암, 백혈병, 기형아 탄생 등의 피해를 본 주민의 수는 정확하게 파악하기 불가능하다. 방사선 피폭은 감마선을 직접 쐼으로써 이루어지기도 하고(외폭), 오염된 식품을 섭취하거나 방사성물질을 흡입함으로써 이루어지기도 하는데(내폭),55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른 다음 행해진 조사에서는 질병의 원인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체르노빌 발전소와 가까운 지역 주민들 사이에서 체르노빌 참사 이후 갑상선 질환, 유산, 기형아 발생이 많아지고 각종 암 발생률이 급증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특히 갑상선은 방사선을 집중적으로 흡수하는기관이기에 체르노빌 사건 이후 프리퍄트 주민들을 비롯해 소련 세 공화국의 방사선 오염 지역 주민들에 대한 갑상선의 방사선 수치 측정은 대규모로 자주 실시되었고, 심각한 문제가 드러났다. 또한 21세기 초 현재 벨라루스인 10만 명 가운데 6천 명이 암 환자라는 보고도 있다(체르노빌 이전에는 10만 명당 82명).56

그중에서도 어린이의 고통은 더욱 크고 심하다. 특히 어린이 갑상선암이 급증했다. 1987년부터 1995년까지 갑상선암 진단을 받은 벨라루스 어린이는 확인된 것만으로도 424명인데, 체르노빌 사건 이전에 10만 명당 0.2명이던 수치가 10만 명당 4명으로 증가한 것이다. 갓난아기부터 네 살까지의 어린이가 가장 발병율이 높았다.57 다른 암까지 합치면 어린이 암 환자 수는 훨씬 더 많아진다. 암 이외에도 방사선 오염 지역 어린이들은 전국 평균보다 훨씬 높은 비율로 스트레스, 위장병, 내분비선 질환, 빈혈, 신경계 질환, 호흡기 질환과 같은 각종 질환에 시달렸다.58 유니세프는 1990년에서 1994년 사이 벨라루스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건강검진을 실시하여 다음과 같은 질병의 증가율을 확인했다. 신경체계 교란 43%, 심장 혈관 질환 43%, 소화기 질환 28%, 뼈, 근육, 연골 이상 62%, 당뇨 28% 등.59 어린이 피부병, 정신질환도 심각한 문제로 부각되었다 어린이의 고통은 단순한 수치 이상의 차원과 의미를 가진다. 어린이의 고통은 인류의 미래가 고통스럽다는 것을 말하기 때문이다.

벨라루스에서는 출산율이 낮아지고(1988년에 천 명당 16.1명에서 1996년에는 천 명당 9.3명), 유아사망률이 높아졌으며(1991년에 천 명당 12.05명, 1995년에 천 명당 13.3명), 1993년부터는 인구 감소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환경과 자연의 파괴

체르노빌 사고로 인한 방사성물질의 직접적 누출은 열흘 동안 계속되었다.61 이는 소련과 유럽 지역 일대에 광범한 환경 손상을 가져왔다. 대기와 토양, 식수가 방사선에 오염되었고, 동식물이 방사능 물질에 피폭되었으며, 이 때문에 인간은 식수와 식품 오염이라는 면에서도 심각한 불안감을 안게 되었다.

사고 이후 소련의 광범한 지역에서 쇠고기를 비롯한 육류, 곡류, 감자 등 주요 식품의 방사성물질 오염이 확인되었는데,62 유럽 국가들에서까지 특히 큰 우려를 불러일으킨 것은 우유의 오염이었다. 우유의 오염은 방사성 요드-131의 작용으로 일어났다. 원자로에서 누출된 방사성 요드는 식물 표면에 들러붙었다가 이를 뜯어먹은 소의 내부로 들어가 전량이 소의 창자에 흡수된 뒤 하루가 안 되어 소의 갑상선과 우유 속으로 퍼졌다. 소련 남부, 독일, 프랑스, 남부 유럽에서는 젖소들이 이른 봄부터 방목되고 있었기에 체르노빌 사건 이후 방사선에 오염된 풀을 뜯어먹게 되었다. 1986년 4월 말과 5월에 소련과 다른 유럽 국가들에서는 우유 속 방사성 요드 함량이 엄청나게 치솟았다.63

체르노빌 사고는 또 숲의 방사선 오염을 초래했다. 바람과 비가 전파한 방사성물질로 소련의 여러 지역뿐 아니라 오스트리아, 스웨덴의 숲도 오염되었다.64 방사선에 특히 민감한 소나무의 피해가 아주 커서, 나무들이 기형적 형상을 띠거나 집단 고사했고, 체르노빌 발전소에서 7킬로미터에 이르기까지 소나무가 붉은 색으로 변하며 말라죽어 이 지대 숲에는 ‘붉은 숲’이라는 별명이 붙었다.65 숲의 식물 중에서 특히 버섯과 딸기가 방사성물질을 받아들여 쌓아두는 경향이 강한데, 이 식물들이 방사성 세슘으로 오염되자 이를 먹고 사는 사슴 같은 동물들도 심각하게 피폭되었다. 스웨덴의 숲에 사는 엘크를 비롯한 사슴들에게서도 허용치를 크게 넘는 방사성물질 수치가 측정되었다. 사고 1년 뒤에는 숲의 흙이 방사성 세슘의 주된 저장고 역할

을 하게 되었다.66 알렉시예비치의 인터뷰집 󰡔체르노빌의 목소리󰡕에는 이런 대화가 나온다. “설탕 사려 줄서 있다가 들은 이야기에요. ‘아이고 세상에, 올해는 버섯이 얼마나 많은지. 버섯도 딸기도 마치 누가 심은 것처럼 많이 났더라고.’ ‘오염된 거라 먹으면 안 돼.’ ‘이 뚱딴지야. 누가 너보고 먹으래? 따와서 말린 다음, 민스크 시장에 갖다 팔면 되지. 백만장자가 될 걸.”67

사고 이후 강과 호수가 오염되자 물고기와 다양한 수중생물들도 오염되었고,68 지하수가 오염되었으며,69 흑해를 비롯한 해양도 높은 방사선 수치를 드러냈다.70 3천 2백만 인구의 식수원인 드니프로(드네프르)강으로 흘러드는 지류들이 방사성물질에 오염되었으니 심각한 문제였다.

역설적인 면도 없지 않다. 처음에는 반경 30킬로미터 금지 구역 안에 주인 잃은 애완동물과 가축들이 떠돌아다녔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늑대, 멧돼지, 독수리, 사슴, 토끼, 해리 등 야생동물 개체수가 크게 늘어났다. 현재 이곳에는 동물들이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은 채 돌아다닌다. 국제원자력기구 보고서도 이를 두고 “인간이 사라진 곳에서 자연이 번성한다”고 했다.71 그러나 이러한 야생의 귀환은 이에 선행한 뭇 생명의 죽음과 질병, 기형화 위에서 이루어진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대응과 논쟁

소련 정부는 체르노빌 사건 직후 일반 국민과 전 세계를 향해 사고의 진상을 정직하게 밝히지 않으려 했다. 그래서 체르노빌 사건에서는 투명성과 정보가 가장 중요한 쟁점으로 등장하게 된다.72

사고가 처음 외부 세계에 알려진 것은 4월 28일 아침 스웨덴에서였다. 체르노빌에서 북서쪽으로 1,000킬로미터 떨어진 포르스마르크 원자력발전소 근무자들의 출근 복장 검사에서 허용 한도 이상의 방사성물질이 검출되어 비상이 걸렸다. 곧 핀란드, 노르웨이, 덴마크에서도 같은 현상이 나타났다. 자국 원자력발전소의 안전검사에서 이상이 없음을 확인한 북유럽 국가의 원전 관계자들은 소련에 사고 여부를 문의했다. 모스크바의 당국자들은 완강하게 부정하다가 4월 28일 밤 9시에야 방송을 통해 체르노빌 원자로가 손상되었으며 정부의 대책위원회가 구성되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 짤막한 발표로는 사고 규모와 진상을 파악할 수 없었다.73

심지어 핵에너지 정책 최고 담당자들은 사고를 정당화하는 태도까지 보였다. 소련 핵에너지 사용 국가위원회 의장이었던 페트로샨츠가 과학은 희생자를 요구한다고 말하여74 공분을 산 것이 그 대표적인 예였다. 소련 당국은 피해 규모와 방사선 오염 정도를 축소 발표했다. 또한 사소한 물질적 보상을 내걸고 애국심과 희생정신에 호소하여 수많은 해체 작업자들을 동원하고, 그들을 극도로 위험한 작업에 무방비로 종사케 한 뒤 방치했다. 정부는 이들과 자녀들을 비롯해서 방사성 질환에 걸린 수많은 사람들의 질병 원인이 체르노빌 사건에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 소련 정부의 경직된 태도가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에 불을 붙였으니,75 체르노빌 사태야말로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들이 독립을 요구하고 나서는 데 하나의 원인이 되었다.

하지만 사실 체르노빌 문제에 관한 대책, 보상, 대안적 에너지 정책 등과 관련해서는 소련 해체 이후 독립한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정부의 태도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소련과 구소련권 국가들은 체르노빌 이후에도 원전 정책을 재검토하지 않았고, 전력 생산을 원자력발전에 의존하기를 그치지 않았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체르노빌 사고 10주년을 맞아 벌어진 탈핵운동가들의 시위를 봉쇄하고 활동가들을 투옥하는가 하면,76 심지어 4호 원자로의 사고 이후에도 체르노빌 발전소를 폐쇄하지 않고 다른 원자로를 계속 작동시켰다. 이 발전소는 1990년대에도 몇 차례 사고를 기록했으며 2000년에 들어서야 가동을 완전히 중단했다.77

다른 한편, 유럽 국가들은 물론 미국과 일본에까지 방사성물질이 날아가면서 체르노빌 사고는 각국 정부와 일반인을 가리지 않고 세계적인 관심을 집중시켰다. 미국의 일부 언론은 소련에서 이런 일이 터진 것을 두고, “러시아인들이 자기 파괴를 시작했다. 이는 좋은 소식이다”라며 고소해 하는 시각을 드러내기도 했지만,78 체르노빌 발전소와 지리적으로 가까운 유럽 사회는 공포 분위기에 빠졌다. 고르바초프 공산당 서기장의 새로운 정책 노선 아래서 정보공개를 지향하기 시작한 소련 사회는 외부 조사단의 현장시찰과 조사도 조금씩 허용하기 시작했고, 사고의 진상과 원인에 대한 논의도 차츰 활발해졌다.

사고 원인에 대한 논의는 초기에는 이것이 부주의에서 비롯된 실수인가, 원자로 설계 오류인가에 대한 논쟁으로 집약되었다. 담당자의 실책을 비판할 때는 핵에너지 정책 최고 결정권자들, 발전소 최고 관리자들, 4월 25~ 26일 당일 실험의 직접적 담당자 등 각 층위 인물들의 책임에 대한 개별적 논의로 나아갈 수 있다. 그리고리 메드베데프는 소련 핵에너지 정책 담당자들과 발전소 지도부의 무책임성을 중시하면서79 이 같은 사태에 이르게 한 관련자들의 안전 불감증은 “침묵의 공모”였다고 강조한 반면,80 다른 논자들은 실험의 직접 담당자들이 안전 지침과 위험 경고 신호를 무시하고 실험을 무리하게 진행한 것이 화근이었음을 지적했다.81 1986년에 국제원자력기구 국제핵안전그룹의 전문가들이 펴낸 초기 보고서도 기기 조작자가 실험을 빨리 끝내야 한다는 강박감, 원자로에 대한 지식 부족, 위험감각 상실로 인해 일련의 기술적 안전조치를 무시한 것이 사고 원인이라고 지적했다.82 첫 보고서를 수정한 1992년의 보고서 서문에서 당시 국제원자력기구 사무총장 한스 블릭스도 기본적으로는 기기 조작자의 연수 부족, 원자로 설계자, 기술 전문가, 제조자, 건설자, 조작자, 조정자 사이의 소통 부족이 원인이라는 견해를 견지했다.83

이에 반해 발전소 간부였던 댜틀로프는 설계 오류로 인한 원자로 구조상의 결함을 강조하면서, 결코 작동자의 실수가 아니라고 주장했다.84 서방의 핵에너지 전문가들은 체르노빌형 원자로의 작동 방식상 결함이 이미 오래전부터 알려져왔다고 지적했다. 쓰리마일섬 발전소의 원자로는 격납용기 안에 들어 있었던 반면 체르노빌 원자로에는 이 같은 용기가 없었기에 사고의 규모가 큰 차를 보이게 되었다는 주장도 있는데, 이 또한 원자로 자체의 디자인 혹은 외적 결함을 부각시키는 논의와 일정하게 관련되어 있다.85 러시아 방사능 의학계를 대표하는 인물의 한 사람인 레오니드 일리인도 결국 노심을 통과하는 물의 양에 대한 반응성이 여타 원자로와 다르게 되어 있는 RBMK형 원자로의 결함이 사고를 초래했다는 분석 결과를 내놓았다.86 그리고리 메드베데프도 VVER와 같은 경수로輕水爐형보다 RBMK형 우라늄 흑연 원자로가 더 위험하다는 점을 지적했다.87

그러나 조작상의 사소한 실수나 설계상의 이러저러한 결함이 인간과 자연에 그토록 광범하고도 치명적인 피해를 입히는 어떤 도구가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이 도구의 존재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와 의문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다. 핵 관련 사고는 피해의 규모와 지속성, 자연과 뭇 생명에 미치는 악영향, 유전자 변형으로 미래 세대에게까지 끼치는 고통의 차원이 다른 사고와 비교되지 않는다.

체르노빌 사고의 원인에 대한 명확하고 단일한 대답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국제사회에서는 사고 원인에 대한 논쟁이 기술적인 문제에 대한 토론을 넘어서서 원자력발전 자체의 존재 합리성에 대한 성찰로 이어졌고, 이를 계기로 원자력발전의 존폐 문제에 대한 치열한 논란이 일어났다. 독일을 비롯한 서유럽 국가들에서는 핵 없는 사회를 지향하는 녹색당운동이 더욱 큰 힘을 받게 되었고, 원자력발전의 대안으로 대안-재생에너지를 활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2012년 한국을 방문한 독일 녹색당 소속 국회의원 질비아 코팅-울은 자신이 전업주부로 지내다가 체르노빌 사건을 계기로 녹색당에 가입하여 정치인의 길을 걷기 시작했고, 그 후 당의 원자력위원회 대변인으로 활동하면서 재생에너지 개발의 필요성을 역설하게 되었다고 설명했다.88

이처럼 체르노빌 사건은 시민들의 자발적 반反원전운동과 녹색당운동이 서로 자극을 주고 상승작용을 일으키는 전환점이 되었다. 당사자인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같은 구소련권 국가들에서도 생태주의적 담론이 일어나고 탈핵운동이 전개되기 시작했다.89

고르바초프는 체르노빌 25주년을 맞아 특별기고한 글에서 핵 없는 세계를 향한 그의 바람을 강조했다. “체르노빌 사고가 되풀이될 그 어떤 가능성도 반드시 막아야 한다. 체르노빌 사건은 그 직접적인 인간적 희생, 오염된 광대한 토양, 이주당한 주민의 수, 가축의 막대한 손실, 정든 집과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재산을 강제로 빼앗겨버린 개개인들이 겪은 장기적 트라우마를 생각해볼 때 어마어마한 재앙이었다. 이 비극의 희생자들은 그들이 제대로 이해할 수 없고 맞서 싸울 수도 없는 그러한 위기에 부딪쳤던 것이다. 체르노빌로 인해 초래된 물질적 손해가 아무리 막대하다 해도, 아직도 치러지고 있는 인간적 대가에 비하면 의미가 희석될 정도다. 이 비극의 진정한 범위는 아직 다 파악되지 못하고 있으며 핵 위협의 현실을 여전히 충격적으로 상기시켜준다. 이는 또한 현대 기술의 위험을 보여주는 두드러진 상징이기도 하다.”90

무엇을 배울 것인가

체르노빌 사고는 후쿠시마 이전 최대의 원자력발전 사고였다.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투하되었을 때보다 열 배 더 많은 방사성물질이 퍼졌고, 여기에 플루토늄 0.5톤까지 누출되었다.91 그런데 이런 재앙이 있은 뒤에도 사람들이 원전 사고로부터 배우는 속도는 결코 빠르지 않았다. 원전 찬성론자들은 원전 사고에 대해 항상 디자인상의 결함 같은 해당 원자로의 특수성 때문이었다고 여기거나, 막을 수 있는 인재였다고 주장했다.

체르노빌식의 사고와 진상 은폐는 소련 같은 경직된 체제 아래서나 일어난다는 주장도 있었다. 그러나 소위 민주적인 체제와 잘 기능하는 정부를 가진 듯 보이던 일본에서는 달랐던가?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 후 대처는 더 기민했고 진상은 더 잘 밝혀졌던가? 그렇지 않다. 체르노빌 사고 당시 진상규명과 관련하여 혼선이 빚어졌고, 진상 은폐 시도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어쨌건 소련 정부는 사고 직후인 26일 아침에 중앙정부 책임자들을 모스크바에서 체르노빌로 파견했고, 이들은 현지에서 방사성물질을 마셔가면서 진상 파악과 대책 마련을 위해 전력투구했다. 또한 소련은 전체를 위해 개인은 스스로를 희생할 줄 알아야 한다고 가르치던 사회였다. 이러한 가르침을 체화하고 있던 발전소 직원들, 소방관들, 군인들, 해체 작업자들은 위험의 확산을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일례로 고도로 오염된 물속에 잠수하여 배수 밸브를 열어 물을 빼낸 잠수 작업자들은 온 유럽을 지하수의 방사성물질 오염으로부터 구해냈다고 평가받는다.92 물론 이들에 대한 국가적 보상은 어이없도록 알량했다. 참으로 기막힌 일이지만, 어떤 사람들의 “영웅적 죽음”이 사고의 전 유럽화를 막아냈다.

그런데 대지진 이후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원자로들이 연쇄 고장을 일으킨 일본에서야말로 도쿄전력 직원들의 고독한 사후 처리 작업을 제외하고는 진상규명 노력이나 대처가 더 미진했다. 일본도 소련 못지않게 원자력 안전신화가 만연해 있던 사회였고, 특히 지진에 대비해서 만전을 기했다고 자부하던 사회였다. 그러나 사건 이후 대응은 과연 이에 부합했다고 할 수 있을까?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는 원자로 네 기(1~4호기)가 노심 용해, 수소폭발 등의 사고를 일으켰으며, 이들 원자로는 격납용기에 싸여 있었지만 격벽까지 뚫는 폭발이 일어나 사고 후 2년이 지난 지금도 현장에서 방사성물질이 뿜어져 나오고 있다. 방사성 물질을 포함한 오염수는 계속 늘어나고 있지만 저장할 공간이 없어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93 그렇다면 문제는 체제의 민주성이나 효율성에 있었던 것이 아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원전 사고는 체제를 가리지 않는 것이고, 원전은 인간에게 어울리지 않는 기술인 것이다.

체르노빌 사고는 근대 기술문명 자체에 대한 근본적 성찰을 낳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1984년 인도 보팔에서 일어난 유독가스 폭발 사고로 수천 명이 사망한 사건이 있은 지 2년 만에 체르노빌 사고가 일어나는 것을 보고 근대문명을 ‘위험사회’로 특징지었다. 이 사회는 유독가스, 방사성물질 등이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수준으로 전파되어 불특정 다수의 인간을 무차별적으로 죽음과 불치병으로 몰아넣고, 자연과 환경을 파괴하는 사회이다. 벡은 이 현상 속에서 근대문명 자체의 위험을 보았다. 그는 문명발전이 초래한 위험의 불특정성, 무차별성에 대해 이렇게 썼다. “인간이 인간에게 가한 모든 고통, 곤궁, 폭력은 지금까지 ‘타자’라는 범주를 전제로 하는 것이었다. 유대인, 흑인, 여성, 난민, 반체제 인사, 공산주의자 등이 이 같은 타자였다. 한쪽에는 울타리, 수용소, 도시 구역, 군사 구역이 있었고 다른 쪽에는 자신들의 네모난 벽이 있었다. 이 벽은 실제적 혹은 상징적 경계로서 겉으로 보아 ‘해당 없는 사람들’은 이 뒤로 물러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이제 체르노빌 사태 이후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타자’의 종말이요, 우리가 애지중지해왔던 일체의 ‘거리두기 가능성’의 종말을 의미한다. 이는 핵 오염을 통해 실제로 겪을 수 있는 일이 되었다. 곤궁에는 경계를 지을 수 있으나 핵 시대의 위험에는 경계를 지을 수가 없다.”94 위험사회론은 그것이 등장한 이후 적어도 동아시아에서는 교양계층 사이에서 멋있는 최신 담론의 하나로 소비되는 경향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원전 사고의 무차별성은 멋진 담론의 수준을 넘어 인류의 생존을 위협한다.

인간의 역사를 아우슈비츠 이전과 아우슈비츠 이후로 나누어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인류 역사를 체르노빌 이전과 체르노빌 이후로 나누어 생각하는 것도 가능하다. 제노사이드는 인간이 의도적·체계적으로 행하는 반인륜 범죄이다. 체르노빌 사고와 같은 원전 사고는 물론 이 같은 의도적 범죄와는 다르다. 그러나 이런 사고를 두고 고의인가 아닌가를 따지는 것은 의미가 없다. 체르노빌 사건을 직접 목격하거나 이로 인해 고통 받고 죽어간 이들을 가까이서 지켜본 사람들은 하나같이 말했다. 이것은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 진짜 전쟁, “핵전쟁이었다”고.95 소련 국방부 화학부대 사령관이었던 블라디미르 피칼로프 장군 또한 체르노빌 사건에서 “핵 발전소를 타격한 핵무기의 폭발”과 핵전쟁을 상기시키면서 체르노빌 재앙은 “다소 완화된 형태의 저강도 핵폭발”에 해당한다고 평가했다.96

체르노빌의 인질, 숨겨진 유산 키예프에 위치한 우크라이나 국립 체르노빌박물관에 전시된 사진이다.
1987~1988년 사이에 태어난 이 아이들은 해체 작업자들 혹은 프리퍄트 인근 지역에서 대피한 이들의
아들딸이다. 그들 중 일부는 죽고, 일부는 건강의 문제를 겪고 있으며, 그 자녀들에게도 문제가 이어지고
있다.

이 같은 핵전쟁이 초래한 재앙을 온몸으로 막아낸 사람들 덕분에 그 피해가 다소 국지화될 수 있었다고 해서, 그리고 이제 시간이 삼십 년 가까이 흘렀다고 해서, 이 사건을 가벼이 여길 수는 없다. 체르노빌 사고의 희생자들은 어마어마한 고통 속에서 죽어갔거나 아직도 고통을 겪고 있다. 알렉시예비치가 인터뷰한 체르노빌 희생자의 가족들은 고통 속에서도 유난히 자주 ‘이 고통의 의미’에 대해 말했다. “의미 없이 이러한 고통을 받을 수는 없다”, “이 고통의 의미가 무엇인가”라고.97 사고 후에 태어난 기형아들, 방사선 노출로 고통 받는 어린이 환자들의 고통에 대해서도 무엇 때문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리 메드베데프는 사건 초기의 희생자들이 비록 수는 많지 않을지라도 한 사람 한 사람이 수백만 명의 고통에 해당하는 고통을 겪다 갔다고 묘사했다. 그리고 그들은 순교자라고 했다.98 다른 무수한 사람들이 겪어야 할 고통을 그들이 대신 겪었으니, 이제 다시는 원전 사고로 인한 피해자는 없어야 한다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는 말이다. 그것이 바로 그들 고통의 의미였을 것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핵에너지의 평화적 이용론이 등장하고 확산되기 시작하던 시절, 그 지지자들은 “핵에너지는 새롭고 엄청난 전력원이며 더 나은 삶을 위한 도구”라고 찬양했다.99 인류의 일부 구성원들은 체르노빌을 겪고도 핵에너지에 대해 낙관적 태도를 버리지 못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체르노빌 사고 이후 원자력발전소를 추가 건설했다. 서방 국가들은 돈을 제공할 테니 원전을 더 지으라고 우크라이나 정부에 요구했고, 러시아도 이를 부추겼다. 소련 시대처럼 우크라이나 정부는 원자력발전으로 생산된 전력의 수출에 계속 집착해왔다.100 후쿠시마를 겪고 나서야 겨우 핵 발전의 치명적 위험에 대한 세계인들의 일반적 경각심이 조금쯤 더 강화된 것 같다. 눈에 드러난 사고가 없어 보이는 원자력발전소도 인간과 뭇 생명의 삶을 위협하고 환경을 파괴한다. 원자로를 식힌 냉각수는 방사선에 오염된 물인데, 이것이 강과 바다로 흘러든다. 핵 재처리 공장이 있는 영국 셀라필드(Sellafield)에서는 이 공장의 노동자들뿐 아니라 인근 주민 사이에서도 높은 암 발병률이 확인되고 있으며, 영국 정부는 이 현상을 핵 재처리 시설과 결부시키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101 체르노빌 같은 사고만 핵 재앙이 아니다. 『체르노빌의 목소리』라는 제목으로 번역된102 알렉시예비치의 책은 원래 『체르노빌의 기도』라는 제목을 가지고 있는데, 여기에는 ‘미래의 연대기’라는 부제가 달려 있다. 체르노빌이 인류의 미래가 되어서는 안 된다.

한정숙

현재 서울대학교 서양사학과에 재직 중이다. 러시아 역사를 전공했고 최근의 관심 주제는 시베리아, 여성, 우크라이나이다. 최근의 주요 저작으로는 저서인 『여성은 이렇게 말했다―서양 고전과 역사 속의 여성 주체들』, 『우크라이나의 이해』(공저), 『독일 통일과 여성―젠더 관점에서 조망한 독일의 분단과 재통일』(공저), 『여성주의 고전을 읽는다―계몽주의에서 포스트모더니즘까지, 두 세기의 사상적 여정』(편저) 등이 있다.

주—————

1 “Forward”, Peaceful Uses of Atomic Energy. Development of International cooperation, Department of State, 1955.

2 Milo D. Nordyke, The Soviet Program for Peaceful Uses of Nuclear Explosion(U.S. Department of Energy: Lawrence Livermore National Library, September 1, 2000), 인터넷 PDF 자료, p. 2. 수소폭탄은 1952년에 미국에서 처음으로 개발되었고, 소련에서는 안드레이 사하로프의 독자적 방식에 따라 1953년 개발에 성공했으며 소련형 수소폭탄의 정식 실험은 1955년에 이루어졌다.

3 Dwight Eisenhower, “Atoms for Peace”, Address to the 470th Plenary Meeting of the United Nations General Assembly, http://www.iaea.org/About/history_speech.html (검색일: 2013. 3. 14).

4 UN General Assembly Resolution 810(IX), “International co-operation in developing the peaceful uses of atomic energy”(503rd plenary meeting 4 December 1954).

5 Nordyke, The Soviet Program for Peaceful Uses of Nuclear Explosion, p. 1.

6 소련 또한 유엔 결의안에 찬성표를 던졌으며 덕분에 이 결의문은 만장일치로 채택되었다. Peaceful Uses of Atomic Energy. Development of International cooperation, p. 8.

7 사하로프는 수소폭탄 개발에 성공한 뒤 군사적 목적이 아닌 ‘평화적 목적’을 위해 핵융합을 이용하는 데 몰두했다. 그가 스승 이고리 탐과 함께 개발한 토카막(Tokamak)이라는 기구는 이를 위한 것이었다. Andrey Sakharov May 21, 1921~December 14, 1989, http://russiapedia. rt.com/prominent-russians/politics-and-society/andrey-sakharov/ (검색일: 2013. 3. 16).

8 핵폭발을 이용해 토목 건설 공사를 위한 발파작업을 하거나 석유·가스 채취를 촉진하는 사업은 20세기 후반에 미·소 양국에서 여러 차례 실시되었는데, 이는 방사선 누출에 따른 환경오염을 야기했다. Nordyke, The Soviet Program for Peaceful Uses of Nuclear Explosion, pp. 4~8, 70~74.

9 실제로 미·소 양국은 서로 이런 비난을 가했다. 미국에서 핵폭발을 이용한 건설용 발파작업이 진행되던 시절인 1958년, 소련의 관계자는 이것이 실제로는 은폐된 핵무기 실험이라고 강력하게 비난했다. Nordyke, The Soviet Program for Peaceful Uses of Nuclear Explosion, p. 4.

10 서의동, 플루토늄 제조에 집착하는 일본 ‘핵무기 야망’, 󰡔경향신문󰡕 2013. 3. 5. 이 기사도 원자력발전과 핵무기 제조의 관련을 보여준다.

11 Marples, “Introduction”, Grigory Medvedev, No Breaking Room, New York: Basic Books, 1993, pp. 8~9.

12 Ibid, pp. 11~12.

13 이 부분은 체르노빌 사건을 시간순으로 정리한 인터넷 자료를 참조했다. “chronology”, http://pripyat.com/en/chronology.html (검색일: 2012. 9. 29).

14 Grigory Medvedev, The Truth About Chernobyl, Translated from the Russian by E. Rossiter, Basic Books, 1991, p. 207.

15 Zhores Medvedev, Nucleat Disaster in the Urals, Translated by George Suanders, New York: W.W. Norton & Company, 1979, p. 4.

16 Ibid, p. 16.

17 Ibid, p. 4.

18 Grigory Medvedev, The Truth About Chernobyl, p. 18.

19 Zhores Medvedev, Nucleat Disaster in the Urals, pp. 10~13.

20 Grigory Medvedev, The Truth About Chernobyl, pp. 18~19.

21 Richard F. Mould, Chernobyl. The Real Story, Oxford: Pergamon Press, 1988, pp. 1~2.

22 Franz-Josef Bruggemeier, ¨ Tschernobyl, 26. April 1986. Die ¨okologische Herausforderung, Deutscher Taschenbuch Verlag, 1998, p. 12.

23 Mikhail Gorbachev, “Chernobyl 25 years later: Many lessons learned”, Bulletin of the Atomic Scientists, 67, 2011, pp. 77~78, http://bos.sagepub.com/content/67/2/77 (검색일: 2011. 3. 14).

24 Bruggemeier, ¨ Tschernobyl, 26. April 1986, p. 11.

25 Jim T. Smith, Nicholas A. Beresford, Chernobyl―Catastrophe and Consequences, Springer Praxis Books, 2005, p. 2; Bruggemeier, ¨ Tschernobyl, 26. April 1986, p. 13; Mould, Chernobyl. The Real Story, pp. 10~11.

26 Grigory Medvedev, The Truth About Chernobyl, p. 93.

27 Mould, Chernobyl. The Real Story, pp. 16~17; Brüggemeier, Tschernobyl, 26. April 1986, pp. 14~15.

28 Grigory Medvedev, The Truth About Chernobyl, pp. 174~178.

29 Ibid, p. 195.

30 Mould, Chernobyl. The Real Story, p. 14.

31 Ibid, p. 63.

32 환경용어연구회 편, 『환경공학용어사전』, 성안당, 1996은 이 병을 이렇게 설명한다. “인체가 방사선을 전신에 받아 급성 증상을 일으킨 상태로, 일반적으로 받은 선량에 따라 다음과 같은 증상이 나타난다. ① 50R(뢴트겐): 임파구 수의 일시적 감소. ② 150R: 약 반수의 사람이 두통, 구토, 설사 등의 증상을 일으킨다. ③ 200~600R: LD50은 약 400R, 따라서 200R 이상에서 100%의 사람이 증상을 일으키고, 250R 에서 5% 사망, 400R에서 50% 사망, 600R에서 100% 사망한다. 최초의 증상으로 구역질, 무력감이 있고 2~3주간 후에 발열, 탈모, 출혈 증상이 일어나며 혈액 중에 백혈구가 감소하여 약 반수의 사람이 사망한다. 급성기를 지나면 해열해서 회복기에 들어간다. ④ 1,000~수천R: 몇 시간 후 전신 무력감, 고온과 함께 구토, 설사, 출혈이 나타나고 수일부터 2주일 내에 쇠약해져 사망한다. ⑤ 10,000R 이상: 전신경련 등 중추신경 증상을 일으켜 하루 이내에 사망한다. ”http://terms. naver.com/entry.nhn?cid=648&docId=624399&mobile&categoryId=648 (검색일: 2013. 3. 20).

33 Mikhail Gorbachev, “Chernobyl 25 years later: Many lessons learned”.

34 Grigory Medvedev, The Truth About Chernobyl, p. 111, pp. 171~172.

35 Ibid, p. 50; 한 연구자는 이날 실험의 기기 작동자가 안전 절차를 무시한 것은 실험을 완수하고 싶은 욕심과 원자로의 안전에 대한 지나친 낙관 때문이었다고 평한다. Angela Liberatore, The Management of Uncertainty. Learning from Chernobyl, Gordon and Breach Publishers, 1999, p. 66.

36 Grigory Medvedev, The Truth About Chernobyl, p. 254.

37 Ibid, pp. 121~122.

38 Ibid, p. 251.

39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김은혜 옮김, 󰡔체르노빌의 목소리―미래의 연대기󰡕, 새잎, 2011, 241쪽. 벨라루스의 체르노빌 피해자, 유족, 목격자, 관련자들과의 인터뷰를 담은 이 책은 국제적으로 큰 호평을 받았다. 비극의 실상을 알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필독서이다. 원제는 󰡔체르노빌의 기도. 미래의 연대기󰡕이다. 이 글에서는 한국어 번역본을 인용하되 원문을 참고하여 필요한 경우에는 번역문을 약간 수정했다. Светлана Алексивич, Чернобыльская молитва(хроника будущего) http://www.lib.ru/NEWPROZA/ ALEKSIEVICH/chernbyl.txt (검색일: 2013. 3. 25).

40 Mould, Chernobyl. The Real Story, pp. 113~114.

41 알렉시예비치의 인터뷰집에는 해체 작업자들의 수에 대해 80만 명, 34만 명 등 상이한 수치들이 제시되어 있다. 『체르노빌의 목소리―미래의 연대기』, 27쪽, 238쪽.

42 같은 책, 237쪽.

43 체르노빌시는 발전소에서 14킬로미터 떨어져 있었고 사고 당시 인구는 약 14,000명이었다. 프리퍄트시와 체르노빌시는 모두 체르노빌 광역군에 속해 있었는데, 사고 이후 이 광역군은 이반코프 광역군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http://pripyat.com/en/pripyat-and-chernobyl.html (검색일: 2012. 9. 29).

44 Mould, Chernobyl. The Real Story, p. 19.

45 Grigory Medvedev, The Truth About Chernobyl, pp. 185~186.

46 유재현, 누구도 편안하게 죽지 못할 것이다 , 󰡔시사IN󰡕 제279호, 2013. 1. 19, 62쪽.

47 Environmental Consequences of the Chernobyl Accident and their Remediation: Twenty Years of Experience. Report of the Chernobyl Forum Expert Group ‘Environment’, IAEA Vienna, 2006, p. 23. 이는 국제원자력기구의 체르노빌 포럼에 참가한 전문가들이 체르노빌 사건 후 20년 되던 해에 내놓은 보고서이다. 필자는 이 글에서 이 보고서의 수치를 자주 인용했지만, 이 보고서가 체르노빌 사건으로 인한 피해, 특히 인간의 고통을 축소시켜 보여주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48 В. В. Ломакин, Т. Г. Самхарадзе, “Предисловие”, А. С. Дятлов, Чернобыль. Как это было(체르노빌. 실상은 어떠했던가), p. 4. http://rrc2.narod.ru/book/ (검색일: 2013. 2. 8). 이 책은 체르노빌 사고 당시 발전소 차석 엔지니어였던 댜틀로프가 쓴 것이다.

49 여기서는 제곱미터 당 185킬로베크럴 이상인 곳을 의미한다. 어떤 지역은 제곱미터당 1,480킬로베크럴이라는 엄청난 방사성 세슘 농도를 보이기도 했다.

50 Environmental Consequences of the Chernobyl Accident and their Remediation, p. 23.

51 바람은 4월 27일부터 29일까지 체르노빌에서 고멜 지역과 러시아연방의 브랸스크 지역으로 계속 불었다. Ibid, p. 21.

52 알렉시예비치, 『체르노빌의 목소리―미래의 연대기』, 357~367쪽, 네스테렌코 인터뷰 참조.

53 Environmental Consequences of the Chernobyl Accident and their Remediation, p. 24, 25.

54 Jim T. Smith, Nicholas A. Beresford, Chernobyl―Catastrophe and Consequences, Springer Praxis Books, 2005, p. 6.

55 Environmental Consequences of the Chernobyl Accident and their Remediation, p. 27.

56 알렉시예비치, 『체르노빌의 목소리―미래의 연대기』, 26쪽. 이 주장은 벨라루스의 인터넷 신문에서 따온 것이라고 하는데 정확한 출처는 기재되어 있지 않다.

57 Leonid Lomat, Galina Galburt, Michael R. Quastel, Semion Polyakov, Alexey Okeanov, Semion Rozin, “Incidence of Childhood in Belarus Associated with the Chernobyl Accident”, Environmental Health Perspectives, Vol. 105, Supplement 6: Radiation and Human Health, Dec. 1997, p. 1529, 1531.

58 Ibid, p. 1531.

59 “The Effects of the Accident on Human Health: The full extent of the effects of the Chernobyl accident on human health is difficult to assess and remains controversial”, http://www.chernobyl-children.org.uk/information/the-chernobyl-disaster/the-effects-of-the-accident-on-human-health (검색일: 2013. 3. 20).

60 Lomat, Galburt, Quastel, Polyakov, Okeanov, Semion Rozin, “Incidence of Childhood in Belarus Associated with the Chernobyl Accident”, p. 1529.

61 Environmental Consequences of the Chernobyl Accident and their Remediation, p. 18.

62 Ibid, pp. 34~39쪽. 세슘-137로 인해 시금치를 비롯한 잎채소와 과일도 오염되었다. 오스트리아 정부는 야외에서 재배한 일체의 잎채소를 먹지 못하게 했고, 이탈리아 정부도 한동안 잎채소의 판매를 금지했다. Mould, Chernobyl. The Real Story, p. 129.

63 Environmental Consequences of the Chernobyl Accident and their Remediation, p. 30.

64 Ibid, p. 42.

65 Ibid, p. 129.

66 Ibid, p. 43.

67 알렉시예비치, 『체르노빌의 목소리―미래의 연대기』, 195쪽.

68 Environmental Consequences of the Chernobyl Accident and their Remediation, pp. 48~55.

69 Ibid, pp. 56~60.

70 Ibid, pp. 55~56.

71 Ibid, p. 136.

72 Liberatore, The Management of Uncertainty. Learning from Chernobyl, p. 63.

73 Bruggemeier, ¨ Tschernobyl, 26. April 1986, pp. 16~17.

74 Grigory Medvedev, The Truth About Chernobyl, p. 5, 205.

75 제인 도슨은 체르노빌 사건 이후 1980년대 후반에 구소련권 공화국들에서 일어난 원전 반대 움직임을 ‘생태민족주의’라 이름 짓고, 이것은 생태주의적 반핵운동 자체였다기보다 반소, 반모스크바 성격의 운동이었으며, 민족주의의 대체물 역할을 하기도 했다고 평가했다. Jane I. Dawson, “Anti nuclear activism in the USSR and its successor states: A surrogate for nationalism?”, Environmental Politics, 4:3, 1995, 443쪽.

76 Renfrey Clarke, “Ukrainian authorities jail anti-nuclear protesters”, Green Left, May 15, 1996, http://www.greenleft.org.au/node/11857 (검색일 2013. 3. 12).

77 유재현, 체르노빌 재앙 후에도 원자로는 계속 돈다 , 『시사IN』 제278호, 2013. 1. 12, 60~62쪽.

78 Detroit Medical News 1986년 5월 12일자 사설이 이렇게 시작했다. Mould, Chernobyl: The Real Story, p. 14.

79 Grigory Medvedev, The Truth About Chernobyl, pp. 36~49.

80 Ibid, p. 39.

81 Smith, Beresford, Chernobyl―Catastrophe and Consequences, p. 2; Liberatore, The Management of Uncertainty. Learning from Chernobyl, p. 66; Bruggemeier, ¨ Tschernobyl, 26. April 1986. Die ökologische Herausforderung, pp. 26~27.

82 “Информация об аварии на Чернобыльской АЭС и ее последствиях подготовленная для МАГАТЭ”, Атомная энергия, т. 61 вып. 5 ноябрь 1986, pp. 311~312. http://accidont.ru/expert.html (검색일: 2013. 3. 11).

83 “Foreword by the Director General”(Hans Blix), INSAG-7, The Chernobyl Accident: Updating of INSAG-1 : A Reprot by the International Nuclear Safety Advisory Group, Vienna: International Atomic Energy Agency, 1992, http://www-pub.iaea.org/MTCD/publications/PDF/Pub913e_web.pdf (검색일: 2013. 3. 11).

84 “Предисловие”, А. С. Дятлов, Чернобыль. Как это было.

85 John F. Ahearne, “Nuclear Power after Chernobyl”, Science, New Series, Vol. 236, No. 4802, May 8, 1987, pp. 673~674.86 “Предисловие”, А. С. Дятлов, Чернобыль. Как это было.

87 Grigory Medvedev, The Truth About Chernobyl, p. 62.

88 질비아 코팅-울, 핵 없는 세계와 여성의 삶 , 『핵 없는 세계와 동북아시아 여성의 삶』(2012 동북아 여성 평화회의 발표문집), 2012, 29~55쪽.

89 구소련권의 탈핵운동은 체르노빌 사고 이후 페레스트로이카 기간 중이었던 1989년대 후반에 가장 활발했으며 그 이후 크게 약화되었다는 평을 받는다. Dawson, “Anti nuclear activism in the USSR and its successor states: A surrogate for nationalism?”, p. 442. 그러나 현재도 러시아에서는 생태보호(에코자쉬타), 생태페레스트로이카, 자연과 청년 등 여러 탈핵단체가 활동하고 있다. ‘생태보호’는 1989년에 창설되었으며 모스크바 본부와 여러 지부가 있다. “Anti-nuclear Movement in Russia”, http://www.nuclear-heritage.net/in-dex.php/Anti-nuclear_Movement_in_Russia (검색일: 2013. 4. 20).

90 Gorbachev, “Chernobyl 25 years later: Many lessons learned”.

91 Grigory Medvedev, The Truth About Chernobyl, p. 224.

92 알렉시예비치, 『체르노빌의 목소리―미래의 연대기』, 239쪽.

93 서의동, 후쿠시마 원전엔 아직도 치명적 방사성물질 , 『경향신문』 2013. 3. 5.

94 Ulrich Beck, Risikogesellschaft. Essays und Analysen, Frankfurt am Main: Suhrkamp, 1991, p. 7.

95 알렉시예비치, 『체르노빌의 목소리―미래의 연대기』, 242쪽; Grigory Medvedev, The Truth About Chernobyl, p. 190.

96 Mould, Chernobyl. The Real Story, p. 93.

97 알렉시예비치, 『체르노빌의 목소리―미래의 연대기』, 295, 300, 406쪽.

98 Grigory Medvedev, The Truth About Chernobyl, p. 261.

99 “Forward”, Peaceful Uses of Atomic Energy. Development of International cooperation.

100 유재현, 체르노빌 재앙 후에도 원자로는 계속 돈다 , 60~62쪽; Bruggemeier, ¨ Tschernobyl, 26. April 1986. Die ¨okologische Herausforderung, pp. 28~29.

101 Stephanie Cooke, In Mortal Hands: A Cautionary History of the Nuclear Age, New York: Bloomsbury, 2009, pp. 356~357.

102 영역본 제목도 ‘Voices From Chernobyl’이다.

■ 체르노빌 원전 사고 ― 20세기가 보내온 생명 파괴의 경고
Chernobyl Nuclear Disaster in the 20th Century: a waning against the abuse of life
(pp. 199~232)

한정숙 Hahn, Jeong Sook

This paper surveys the Chernobyl nuclear accident on 26th April 1986, and reconsiders the effect and impact of the catastrophe. It examines in turn the conceptof “peaceful uses of atomic energy” which has served as the theoretical backbone for the construction of nuclear power plants during the Cold War period, transformations of Soviet energy policy, nuclear accidents in the Soviet Union before Chernobyl, the aftermath of the Chernobyl accident, its victims and destruction of nature, governmental management of the crisis and the lessons learned.
During the 1960’s~70’s, the Soviet Union, one of the leaders in the development of atomic power, was forced to reexamine its energy policy that was on traditional energy resources such as gas and coal and began an intense program of nuclear power plant construction. Though some nuclear accidents occurred, these did not deter the Soviet government from continuing to promote its message of safe nuclear energy. In Ukraine, where nuclear power plants were particularly abundant, the Chernobyl tragedy happened with the most appalling psychological affects on humans and the environment.
As to the causes of the Chernobyl accident, the explanation stressing the errors and mistakes of the power plant operators contrasted with the view that put the main blame on deficiencies on the construction design of the reactor. When one considered the tremendous destruction of life and environment that was caused by human carelessness, errors and mistakes, one is forced to conclude that nuclear power is not astable energy-producing option. The Soviet government was severely criticized for its incompetence and mismanagement in the Chernobyl catastrophe. Some people believed that such a disaster could only have happened under a rigid political system such as the Soviet Union. However, the crisis management of the Japanese government after the Fukusima nuclear accident of 2011 was no more reliable and trustworthy. That being said, the danger of nuclear power is not related with the type of political system is. The study of Chernobyl must not be the ‘chronicle of the future’, as the subtitle of a book by SvetlanaAleksievich about Chernobyl’s victims is called.

주제어 체르노빌(Chernobyl), 원전 참사(nuclear power disaster),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peaceful uses of atomic energy), 원전 안전 신화(safety myth of nuclear energy), 원자로 결함(deficiencies of reactor)

투고 130122 / 심사완료 130225 / 게재결정 130307

[기사] 30대 터키 청년이 말하는 체르노빌 원전사고(미디어오늘)

30대 터키 청년이 말하는 체르노빌 원전사고

[ 기고 ] 세계민중 모은 제2의 UN 기구가 절실하다

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2020.03.30

나는 2019년 여름 수원대 이원영 교수가 주도하는 생명·탈핵 실크로드순례단에 참여했다. 4주 동안 우즈베키스탄의 타쉬켄트에서 터키의 이스탄불까지 순례에 동참했다.

터키 수도 앙카라에서 나는 30세 터키 청년(Berker Ekmekci)을 만났다. 그는 터키의 북쪽 흑해에 있는 항구도시 트라브존에서 1986년 체르노빌 원전 사고가 발생한 후 3년이 지난 1989년 태어났다. 그는 현재 터키 남쪽에 있는 안탈리아라는 도시에서 그래픽 디자이너로 근무하고 있었다.

그는 우리에게 자기가 체르노빌 원전 사고 피해자라고 말하면서 주변 사람 누구도 자기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고 답답함을 호소했다.

▲ 체르노빌사고(1986년) 이후 유럽의 방사능 오염지도와 흑해(Black Sea)

그는 6세 때 고환암이 발견됐고 17세에 한쪽 고환을 제거했는데 아직도 항암 치료를 받고 있었다. 그의 어머니는 유방암과 자궁암에 이어 뇌종양으로 계속 치료를 받고 있는데, 어머니 암 역시 체르노빌 원전 사고 때문이라고 그는 믿고 있었다. 그는 나중에 우리에게 편지에서 자기 이야기를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알려도 좋다고 했는데, 편지의 마지막 부분은 다음과 같다.

“저는 지금 독신입니다만 언젠가는 누군가와 결혼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때때로 제 아이도 암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니 겁이 납니다. 저의 가족 암 문제 시작은 체르노빌 원전사고가 아닐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제가 말할 수 있는 전부입니다.”

1986년 4월26일 우크라이나 수도 키에프에서 104km 북쪽에 있는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에서 원자로 4기 중 하나가 폭발하는 사고가 나면서, 방사능 물질이 대량으로 공기 중에 누출됐다.

폭발 사고로 주변 건물까지 30곳에서 화재가 발행했는데 화재를 진압하는 데에 무려 10일이나 걸렸다. 그동안 방사능 물질은 끊임없이 대기권에 유입되고 기류를 타고 흑해를 넘어 남하해 터키 북동부 지방에까지 이동했다. 터키에서 4월은 비가 많이 오는 계절이어서 방사능 낙진이 경작지와 초원과 바다와 호수를 오염시켰다.

▲ 좌측부터 이원영 교수, Berker Ekmekci, 필자


사고 직후 방사능 오염이 언론에 의해 보도되자 터키 정부 반응은 무조건 국민을 안심시키는 일이었다. 터키는 세계에서 가장 홍차를 많이 소비하는 나라인데, 국민들은 터키 북부에서 재배하는 차나무 잎과 다른 견과류의 오염을 염려했다. 또한 아기가 먹는 우유와 흑해에서 잡히는 물고기가 오염되지 않을까 걱정했다.

그러나 터키 정부 관리들은 국민 불안감을 해소시키려고 지나친 행동을 했다. 산업무역부 장관은 기자들 앞에서 홍차를 마시면서 “해롭지 않다”고 말한 것이다. 환경부 장관은 심지어 홍차를 얼굴에 문지르는 연출을 보여줬다. 이에 대해 핵무기를 반대하는 의사 모임의 회원인 독일 의사 클라우센은 “나는 정부 관리들이 흑해 연안에서 재배한 홍차를 왜 그렇게 옹호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그것은 범죄“라고 말했다.

많은 터키 국민들은 아직도 방사능 오염이 암을 일으킨다고 믿고 있다. Kazim Koyuncu라는 인기 가수가 2005년 34세에 폐암으로 사망했는데, 사람들은 그가 방사능으로 인한 암 때문에 죽었다고 믿고 있다. 터키의 일간지인 Daily Sabah의 2014년 4월27일자 보도를 보면, 트라브존 시의 한 시민단체 부회장인 Ayaz씨는 아버지와 친척을 암으로 잃고, 동생은 암 투병 중이었다.

그는 암 사망 통계를 찾아봤지만 정부 기관 자료에서는 찾지를 못했다. 그는 공동묘지 묘를 일일이 확인해 사망 원인을 조사했는데, 공동 묘지에 묻힌 사망자의 60%가 암으로 죽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세계적 환경단체인 그린피스에서는 터키에서 체르노빌 방사능 노출로 인한 암 발생과 죽음이 계속 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흑해의 방사능 오염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학술잡지에 의하면 흑해 표층수에서 2013년 측정된 세슘(Cs)과 스트론튬(Sr) 방사능 농도는 체르노빌 원전 사고 이전인 1986년에 비해 각각 3.5배와 1.5배로 높게 나타났다. 유럽의 독립적인 원전 전문가 모임은 2006년에 발표한 TORCH 보고서에서 체르노빌로 인한 암 사망자는 이후 3~6만명에 달할 것으로 예측했다.

상황이 이런데도 터키 정부는 2010년 러시아 국영 원자력에너지사와 계약을 맺고 원전 3기를 아큐유에 건설 중(2023년 가동 목표)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체르노빌 원전 사고로 인한 피해에 관한 진실은 무엇일까?

UNSCEAR(United Nations Scientific Committee on the Effects of Atomic Radiation)이라는 유엔 기구가 있다. 이 기구는 유엔 산하 방사선 영향에 관한 과학위원회인데, 체르노빌 원전 사고 피해에 관해서 2008년 다음과 같이 발표했다. “사고 현장에서 방사능 피폭으로 인한 사망자는 28명이었다. 복구 작업에 참여한 수십만 명 중에서 백혈병 및 백내장 발병률이 증가했으나 피폭으로 인한 건강상의 영향에 대한 증거는 없다. 일반 대중 건강에 영향을 줬다는 설득력 있는 증거는 현재까지 없다.” 아마도 터키 정부는 UN 기구 발표를 인용하면서 원전 건설을 결정했을 것이다. 국민에게 유엔 기구 발표를 믿으라고 설득했을 것이다. 터키 국민들은 유엔 기구 발표를 믿을 수 있을까?

유엔 기구 신뢰 문제는 터키 국민에게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와도 관련이 있다. 요즘 우리나라 젊은 세대는 생선을 잘 먹지 않는다고 한다. 내 두 아들은 생선을 먹지 않는다. 왜 안 먹느냐고 물어보니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이야기한다. 젊은 세대는 기성 세대보다 생선 오염에 더 민감한 것 같다.

최근 일본 아베 정부는 후쿠시마 원전에서 발생하는 오염수를 적정 처리한 후 바다로 방류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고 알려졌다. 후쿠시마 원전 운영사인 도쿄 전력은 오염수를 처리하면 삼중수소를 제외한 방사성 물질을 안전하게 제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사실이 아님이 일본인 전문가에 의해 폭로됐다. 2019년 5월 서울에서 열린 탈핵 관련 세미나에서 일본의 과학저널리스트인 마키타 히로시 박사는 “일본 정부가 오염수에 삼중수소 외에는 다른 방사성 물질이 없다고 하면서 (다른 핵종이 있음을) 숨겨 왔다는 사실이 2018년 8월 드러났다.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되지도 않은데다가 다른 방사성 핵종이 발견된 이상 해양 방출은 안 된다”고 말했다.

더욱 실망스러운 일은 2020년 2월26일 발생했다. 일본을 방문 중인 IAEA(국제원자력 기구) 사무총장인 라파엘 마리아노 그로시는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의 해양 방류 방안에 “기술적 관점에서 볼 때 국제 관행에 부합한다”고 말했다. 사실상 일본 정부 방안을 지지하는 발언으로 해석됐다.

5대양 물은 해류를 통해 서로 섞인다. 방사능으로 오염된 물고기는 국경을 무시하고 해류를 따라 이동할 것이다. 우리는 IAEA 사무총장 발언을 신뢰하고서 아베 정부에서 추진하는 후쿠시마 오염수의 해양 방류를 안전하다고 믿어야 할까? 방사능으로 인한 해양 오염 진실은 누가 밝혀줄 것인가?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450개 원전의 가동을 객관적으로 감시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각 원전에서 나오는 방사능을 실시간으로 측정하고 정보를 공개하는 일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지구촌 원전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국제간 긴밀한 협력이 필요하다. 이처럼 중요한 일을 강대국에 휘둘리는 현재 UN과 그 산하기관에게만 맡겨둘 수는 없다.

코로나19 사태에서 WHO 사무총장이 최대 후원국인 중국에 휘둘리는 모습을 우리는 봤다. IAEA 사무총장이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의 해양 방류를 옹호하는 모습도 봤다. 게다가 10년 전에는 UNEP(유엔환경계획) 수장이 한국에 와서 이명박 정권의 4대강 공사를 편들어주는 것을 봤다. 현재 국제기구는 자본력을 앞세운 국가들에 놀아나고 있는 것이다.

원전과 방사능 문제와 같은 근본적 문제에 걸맞은 지구촌 차원의 새로운 힘이 필요하다. 세계민중의 힘을 모은 제2의 UN 같은 장치가 절실하다. 이것이 우리가 34년 전 체르노빌 원전 사고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이라고 생각한다.

원문보기>>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6151

[기사] 원전과 ‘팬데믹'(경향신문)

[기고]원전과 ‘팬데믹’


이정윤 | 원자력 안전과 미래 대표

2020.04.03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_id=202004032046035

Pixabay로부터 입수된 Miroslava Chrienova님의 이미지 입니다.


3월22일자 로이터통신이 상세히 보도한 우리나라의 코로나19 방역 성공 이유가 인상적이다. 첫째, 위기를 예상하고 미리 준비한 데다 둘째, 실제상황에 닥쳐서는 투명하고 신속하게 의사결정을 했다는 것이고 셋째, 의사결정 이행과정에서 ‘테스트 기술’상의 확률적 결함을 다른 회사제품과의 ‘교차’ 테스트를 통해 치밀하게 보완했다는 것이다. 인류는 지금 전대미문의 시험대 위에 있다. 이러한 성공적 대처는 만일을 가정한 원전의 안전 위협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

전염으로 전파되는 바이러스와 달리 핵은 방사능 오염으로 확산된다. 재생산되지는 않지만, 방사선에 의한 독성이 수십만 년 지속되므로 가두어 격리시키고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원전은 운전원 등 필수요원이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안전에 치명타가 될 수 있다. 단순 격리로만 해결할 수 없는 특수성이 있기 때문이다. 최근 미 핵추진 항공모함인 루스벨트호는 5000명의 승조원 중 수백 명의 확진자가 나오자 바다 한가운데에서의 격리를 벗어나 상륙을 시도하고 있다. 하지만 이 배의 원자로 운영자 등 필수인원은 쉽게 빠져나올 수가 없다. 원자로는 가동 중이든 정지 중이든 상시로 운영자가 제대로 관리하지 않으면 언제든지 비상상황으로 돌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원전 가동 중 설비에 위급한 상황이 발생했는데, 팬데믹(Pandemic·세계적 대유행)되어 필수 운영자까지 감염된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원전의 안전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미국 핵규제위원회(NRC)는 전대미문의 전염병을 차단하기 위해 원전을 격리했음에도 불구하고 감염되는 최악의 상황을 고려한 팬데믹 플랜을 모든 원전에 요구했다.

그러나 한국은 최악의 시나리오를 고려한 원전안전 비상대책이 제시된 것이 없다. 원자력안전위원회 홈페이지에는 위원장이 산하기관과 영상회의를 갖고 코로나19 확산방지를 위한 특별 관리와 예산 조기집행 등 경제상황을 위해 힘써 달라는 사진만 올라와 있을 뿐 정작 팬데믹에 대비한 원전안전을 고민하는 모습은 없다. 사업자인 한수원이 지난 3월11일 내놓은 비상대책은 정비를 잘해서 무정지 가동하자는 의도였지 안전을 위한 근본적인 질문과 대책은 아니다. 최악의 팬데믹이 발생해도 원전설비에서 발생될 수 있는 흔한 작은 사고가 후쿠시마 원전사고와 같은 대형사고로 전개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전염병 확산을 줄이기 위해 모임이나 회의를 제한하는 모습은 바람직하지만 이를 이유로 규제기관이 원전안전 감시까지 소홀히 한다면 원전가동은 모두 중단시키는 것이 옳다. 요즘처럼 경제활동이 위축되고 전력사용량이 남아도는 시점에서는 오히려 산적한 안전현안들까지 총체적으로 점검하는 절호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2011년 3월11일 사고 발생 후 수개월 만에 원전안전당국이 수립한 후쿠시마 후속대책이 대표적이다. 정부는 이 대책을 위해 2015년까지 가동 중인 24개 원전에 1조1000억원을 투입한다고 했지만, 2020년 현재까지 완료되지 못했다. 반면, 일본은 50여개 원전 전부를 중지시키고 안전점검하고 보강하여 지역동의를 받는 과정에 있다. 이카타 원전만 2조원을 투입한 것을 보면 우리나라는 형식적인 수준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것도 사후 약방문이므로 선제적 대응이 중요하다. 지금이라도 원전사고가 발생한다고 보고 전체 가동원전을 투명하게 점검, 확인, 보강하여 시민사회의 동의를 구해야 한다.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원전 위험에 대한 조기 판단과 신속한 의사결정 능력 보완도 시급하지만 독일, 프랑스처럼 교차 감시체제를 제대로 구축할 필요가 있다. 코로나19 방역 대처 과정에서 교차 테스트로 미비점을 보완한 것처럼 교차 감시는 취약한 우리의 원자력안전체계를 효과적으로 개선시킬 것이다.

[기사] 안전신화에 기반한 ‘탈원전 반대’로는 미래 없다(국제신문)

김해창 교수의 ‘재난의 정치경제학’<8>안전신화에 기반한 ‘탈원전 반대’로는 미래 없다

국제신문디지털뉴스부

2020-04-13

<8>안전신화에 기반한 ‘탈원전 반대’로는 미래 없다

원문보기>> 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2500&key=20200413.99099004807

최근 21대 총선일을 불과 닷새 앞두고 친원전 진영이 ‘월성1호기 폐쇄 결정’ 무효소송을 제기하고, 제1야당은 ‘원전부활 정책’을 공약으로 내놓는 등 탈원전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보수언론도 탈원전 반대 기사를 쏟아내고 있는데, 일부 기사는 왜곡보도로 언론중재를 거쳐 ‘정정보도’나 ‘반론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문제는 친원전 진영의 이같은 ‘탈원전 반대’가 후쿠시마원전사고 이전의 ‘원전안전 신화’에 기초를 두고 있어 후쿠시마원전사고 이후 달라진 세계적인 탈원전에너지전환 흐름에 역행하고, 나아가 미래의 복합재난에 대한 국민적 대처를 어렵게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원자력정책연대를 비롯한 원자력 업계 관계자들과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 모임(한변)’은 지난 10일 한수원을 상대로 월성1호기 조기폐쇄 및 천지 1·2호기, 대진 1·2호기 원전 사업종결 결의의 무효 확인을 구하는 소를 제기했다. 이 소송의 핵심은 한수원 이사회가 왜곡된 통계를 근거로 경제성이 없다며 월성1호기의 조기폐쇄 결의를 한 것이 배임행위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지난해 9월 야당 요구에 여당이 협조해 국회 차원에서 월성1호기 조기폐쇄 결정에 대한 감사원 감사 요구안을 의결해 현재 감사원 감사 최종 의결만 남겨둔 상태이다. 한편 한수원 노조와 한변이 2018년 한수원 이사회를 상대로 같은 취지의 고소·고발을 했으나 지난해 경찰·검찰에서 내용이 성립되지 않는다고 모두 각하된 바 있다.

친원전 진영의 ‘멀쩡한 월성1호기 폐로’ 주장은 사실에 근거한 것일까? 과연 한수원이 문재인 정부 들어서 멀쩡한 원전을 이유 없이 폐로했을까? 또 다른 차원이지만 지난 6일 제1야당의 특정 후보가 세월호와 관련해 다시 막말을 쏟아냈다. 당시 여당 의원으로 세월호사고의 원인 규명이나 구조실패에 대한 반성과 성찰은 커녕 피해 가족과 국민의 가슴에 못질하는 심리의 저변엔 무엇이 있을까? 생각컨대 이들은 ‘원전사고나 세월호사고 같은 것은 일어날 수 없고, 설령 일어나더라도 자기 가족에게는 절대 일어나지 않는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고를 갖고 있는 것 아닐까.

지난해 탈원전 반대 및 신한울 3,4호기 건설재개를 위한 범국민 서명운동본부가 청와대 앞 분수대에서 탈원전 반대 서명 청와대 전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국제신문DB


미국의 사회학자 C. 라이트 밀스(C. Wright Mills)는 1959년 ‘사회학적 상상력’이란 책에서 자신이 경험하지 않더라도 간접적인 방법으로 사회구조를 상상(통찰)함으로써, 문제의 원인을 알아내고 해결방안을 찾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는 어떤 사회문제를 자기 자신과 관련된 문제로 인식하고 성찰해 상황을 분석함으로써 스스로 문제해결에 참여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탈원전 반대’나 ‘세월호 막말’은 재난에 있어 사회학적 상상력의 빈곤에서 나온 결과일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지금 코로나19사태로 전 세계가 대재난의 한 가운데 있으나 동시에 다른 대재난이나 향후 이와 비슷한 재난이 언제든지 닥칠 우려가 높다. ‘재난관리론’(이재은 외·2006)에 나오는 위기와 재난의 종류는 정말 다양하다. 정치체계와 관련된 것으로는 전쟁, 무력시위, 쿠데타, 테러 및 파괴활동, 비행기 납치 등이, 경제기술체계로는 위험물질 유출, 해양·수질·대기오염, 오존층 파괴, 방사능 오염, 산성비, 일반 및 핵폐기물 매립, 구조물 붕괴, 폭발 등이 있다. 사회문화체계로는 인종·민족·지역 간 폭력적 갈등, 전염병·괴질의 출현, 폭력적 파업, 폭동 등이, 자연체계로는 홍수, 태풍, 지진, 가뭄, 폭염, 냉해, 한해, 우박, 해일, 화산폭발 등 다양하다. 이러한 것이 또한 복합재난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자연재난, 인위재난, 사회재난의 형태로 나타나는 이들 위기·재난의 특징은 그 돌발적 성격으로 인해 사회 제반 가치와 규범·문화·관계들을 변화시키며 개인, 가정, 기업, 국가 전반에 이르는 총체적 난국을 가져온다. 무엇보다 재난은 반복적으로 발생하며 언제, 어디서 어떻게 발생할지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인데, 지금 코로나19라는 대재난을 맞아 이러한 위기를 전 세계가 피부로 느끼고 있다.

15일은 제21대 국회의원 총선 투표일이고 다음 날인 16일은 세월호사고 6주년, 26일은 옛 소련의 체르노빌원전사고 34주년이 되는 날이다. 오늘날 정부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 보호가 가장 큰 책무이기에 ‘위기관리의 일상화’가 필요하다. 따라서 우리는 지금 겪고 있는 코로나19 극복에 적극 나섬과 동시에 후쿠시마원전사고와 세월호사고, 메르스사태 등 과거 재난을 되돌아보면서 미래 위기에 대한 인식과 위기관리의 적정성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후쿠시마원전사고와 세월호참사 이래 안전을 보는 국민의 시각이 많이 달라졌다. 이러한 달라진 국민의 안전의식이 고리1호기·월성1호기를 폐로하고 새 정부가 점진적 탈원전에너지전환 정책을 수립하는 밑바탕이 됐다. 지금 코로나19사태에 ‘사회적 거리두기’를 강조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 국민들이 ‘원전사고에 대한 사회적 거리두기’를 한 것이 이들 노후원전·불신원전을 폐로조치한 것이다.

원전의 안전성에 관해서는 소위 ‘베크(Beck)의 법칙’이란 것이 있다. 1965년 미국의 베크박사가 과거 21년간 미국 원전 246기의 원전 사고·고장 기록을 분석해 발표한 논문의 결론이다. 원전사고의 경우 예상치 못한 때, 예상치 못한 원인으로 일어나며, 예상치 못한 결과를 낳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탈원전 학자인 오쿠노 고야 전 교토대 공학부 교수가 2011년 9월 도쿄 강연에서 밝혔듯이 원전추진파들은 철저히 베크의 법칙을 무시해왔다. 그들은 그러한 사고가 일어날 리 없으며, 사고가 나면 안전장치가 작동하지 않을 리 없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친원전 진영의 논리 역시 다르지 않은 것 같다.

후쿠시마원전사고 정부조사위원장을 맡았던 하타무라 요타로 도쿄대 명예교수가 펴낸 ‘원전안전신화의 붕괴’라는 책은 우리시대 안전불감증에 대한 경고이며, ‘제2의 후쿠시마 참사’를 방지하기 위한 대안서이기도 하다. 이 책 말미에는 원전사고가 일어나지 않기 위한 마인드 7가지를 강조했다. 있을 수 있는 일은 반드시 일어나고, 있을 수 없는 일도 일어난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틀을 만들어 놓는 것만으로는 기능하지 않는다. 그 목적을 공유해야 한다. 위험에 바로 맞서 논의 가능한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 등이다.

2007년 도쿄전력 연구팀이 국제회의에서 후쿠시마원전에 9m 이상의 쓰나미가 올 확률이 약 1%, 13m 이상의 대쓰나미가 올 확률이 0.1%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도쿄전력은 이에 대비하지 않았고, 최악의 사태에도 절대로 방사성물질이 외부로 누출되지 않는 ‘5중벽’이 있다고 공언했으나 결국 대참사를 당했다. 과연 우리나라에서 대형원전사고는 ‘절대 있을 수 없는 기우’일까? 또 월성1호기 폐쇄 결정에 ‘정치적 공격’을 해대는 원전추진파들이 말하는 경제성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월성1호기는 폐로 직전에 다른 국내 원전 평균 발전원가보다 2배 가까이 높았고, 잦은 고장으로 안전점검이 필요해 사실상 장기가동을 하지 못했다. 후쿠시마사고 이후 엄격한 국제기준으로 추가비용이 계속 들고, 중수로 원전이기에 사용후핵연료 발생량이 다른 원전보다 4~5배나 더 나왔다. 이처럼 30년 설계수명연한을 훨씬 넘긴 월성1호기의 안전성을 무시하고 멋대로 7000억 원을 들여 수명을 연장했으며, 각종 원전비리는 제대로 감시하지 못했다. 이러한 것들이 사회문제가 됐을 때 친원전 학자들은 단 한번도 사전경고나 자기반성 결의를 사회에 보인 적이 없다. 그런데도 월성1호기가 멀쩡한 원전이라면서 폐로 결정이 잘못된 것이라니, 후쿠시마원전사고 이후 친원전 아베 정부조차도 ‘멀쩡한 일본 원전 40여기’를 폐로 또는 9년 이상 가동중지를 하고 있는 일본의 현 상황에 대해서는 무어라 말할 것인가?

2015년 열린 고리1호기 폐쇄 범시민대회 모습. 국제신문DB


월성1호기 폐로 결정은 결단코 정부의 일방적인 정책 결정이 아니었다. 많은 지역주민·환경시민단체의 노력과 대다수 국민 공감의 결과이다. 필자도 고리1호기 폐쇄를 위해 2014년 11월부터 2015년 6월 폐로 되기까지 매주 토요일 30차례에 걸쳐 ‘고리1호기 폐쇄를 위한 시민행진’을 했다. 마침내 박근혜 정부때 고리1호기 폐쇄 결정이 났고, 그 뒤 환경시민단체의 월성1호기 수명연장 허가 무효 국민소송이 제기돼 승소판결을 받았으며, 이를 원자력안전위원회가 뒤늦게 승인한 것이다. 이 모든 노력들이 그들 원전추진파에게는 원전 가동의 걸림돌로밖에 보이지 않는 것일까.

‘원자력은 절대 안전하고 값싼 에너지이다’ 라는 말의 허구는 체르노빌과 후쿠시마가 증명하고 있다. 친원전 진영이 말하는 경제성이란 정말 국민의 안전과 국익에 합당한 말일까?

우리나라도 2016년 경주지진(규모 5.8), 2017년 포항지진(규모 5.4)으로 유례없던 강진이 일어났고, 향후 대규모 지진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친원전 학자들은 노후원전이 재연장됨으로써 생기는 경제적 편익만 생각했지 이로 인해 발생할 지도 모를 대규모 재난의 사회적 비용은 염두에 두지 않는 것 같다.

후쿠시마원전사고 당시 일본은 방사능예측장비인 ‘SPEEDI(스피디)’가 있었지만 정보를 제때 국민에게 제공하지 않았다. 세월호 참사 때 해경이 있었지만 현장 구조에 적극 나서지 않았고, 진도VTS(해상교통관제센터)가 있었지만 기능을 하지 않았다. 이번 코로나19사태에서 질병관리본부가 톡톡히 그 역할을 해내고 있다. 정은경 본부장은 2015년 메르스사태 때는 질병예방센터장으로서 대응을 잘못했다고 징계를 받았지만 문재인 정부 들어 차관급 본부장으로 승진 기용됐고 지금은 국민의 신망을 받고 있다.

도쿄전력은 후쿠시마사고 이전에 프랑스 브라이에원전에서 홍수로 인한 전원상실사고를 알았지만 과거 매뉴얼만 따르다 ‘예상치 못한 사태’에 접했다. 미국은 9·11테러 이후 2002년 미 해군특수부대 요원이 모의테러훈련으로 원전 침입을 시도한 결과 미국의 11개 원전 가운데 7개 원전이 노심파괴된 사례가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아직도 등급7의 최악의 원전사고를 예상해 대비하고 있지는 않다. 이런 점에서 탈원전 학자들은 오히려 원자력안전위원회를 원자력규제위원회로 위상을 강화하고, 행정부 내부 감시만이 아니라 국회 차원의 감시기구를 만들어 크로스체크를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출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월성1호기 폐로결정이나 코로나19상황에서의 ‘거리두기’야 말로 세월호사고 때처럼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기 위해 국가가 취하는 비상조치이다. 재난의 일상화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각종 사고의 교훈은 ‘사고는 언제, 어디서나, 어떤 이유든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그리고 이러한 모든 문제가 서로 연결돼 있으며 우리 모두는 이러한 문제해결에 도움이 되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탈원전 반대’는 틀렸다. 지금 우리에겐 재난에 대한 사회학적 상상력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경성대 건설환경도시공학부 교수 hckim@ks.ac.kr

[기사] 삼중수소에 대하여(건강미디어)

삼중수소에 대하여

2020.04.11

박찬호(반핵의사회 운영위원, 녹색병원 사무처장)

  1. 들어가는 말
  2. 삼중수소의 발생과 특징
  3. 핵발전소에서 삼중수소의 일상적 방출
  4. 삼중수소의 건강영향 쟁점사항
  5. ICRP와 삼중수소
  6. 외국의 피해사례(번역문)
  7. 결론

  1. 들어가는 말

2011년 3월11일 지진과 쓰나미로 1호기와 3호기는 수소폭발이 일어난 후쿠시마핵발전소는 지금도 핵물질이 계속해서 분열 중에 있다. 핵연료를 냉각시키기 위해서는 특별한 방법이 있을 수가 없기 때문에 일본정부와 도쿄전력은 지금도 매일 물을 쏟아 붓고 있는 실정이다. 이외에도 빗물이나 원자로 건물 내부로 스며드는 지하수가 섞이면서 대량의 방사선 오염수가 발생하는 중이다. 2018년 기준으로 일본 언론의 보도에 의하면 원자로를 식히기 위한 물 주입 하루 70톤과, 이외에 하루 100톤의 지하수가 유입되어 총 170톤의 오염수가 매일 발생하고 있다.

현재 오염수의 처리과정은 1) 스트론튬. 세슘의 농도 완화, 2) ALPS(다핵종방사성제거설비)에 의한 62종의 방사성 핵종 농도 완화, 3) 탱크보관이라는 3단계를 거친다. 일정하게 방사성 핵종의 농도를 완화하더라도, 특별히 삼중수소는 제거할 수 없기 때문에 탱크에 보관하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일본 정부는 그림2에서 보다시피 오염수 보관량이 현재의 오염수 처리 가능용량인 134세제곱미터에 도달하는 2020년 여름에는 탱크보관이 한계에 도달한다고 전망하면서 어쩔수 없이 바다에 방류하는 대책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있다.

▲ 그림 1. 오염수 처리 과정


이에 대해 지역주민들이나 어민들, 시민단체가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만일 오염수를 해양으로 방류하면 주변의 해양생태계는 괜찮은 지, 또 주민들이나 어민들의 건강에는 어떤 영향을 주는 지는 물론이거니와, 다른 국가에는 영향이 없는 지를 놓고 전 세계적인 쟁점이 되고 있다. 후쿠시마 핵발전소 오염수의 해양방류는 태평양을 통한 방사선의 전 세계 확산이 필연이기 때문이다. 이때의 방사성 물질은 단연코 삼중수소가 핵심이다. 물론 일본정부도 인정하다시피 세슘 등의 방사성 핵종도 비록 희석되었다고는 하나 여전히 남아 있다. 하지만 현재의 과학기술 수준으로는 전혀 제거할 수 없는 핵종인 삼중수소가 문제의 핵심이라는 점에서는 대체로 인식이 같다. 삼중수소는 수소(의 방사성동위체)이기 때문에, 화학적 성질은 보통의 수소와 같다. 삼중수소의 화학적 성질을 이용한 분리는 기본적으로 가능하지 않다. 이런 논란에도 불구하고 일본정부는 올림픽과 맞물려 해양방류를 강행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 그림 2. 오염수 처리 현황


사실 오염수 처리방안이 꼭 해양방류 한가지만은 아니다. 일본정부가 인정한 여러 방법이 없지는 않다. 막대한 비용을 들인다면 삼중수소를 농축하는 것과 동일한 과정, 가스확산법이나 가스원심분리법 등으로 몇십 단계를 반복하여 제거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비용의 투입은 핵발전소 가동에 엄청난 비용이 들어간다는 점을 아주 구체적으로 확인시켜주는 것이다. 당연히 핵발전소에 대한 여론은 더 나빠질 수밖에 없다. 주민들로서는 여러 상황을 판단한 끝에 부지추가 확보를 통한 계속적인 탱크보관을 강력하게 요구했다. 일본 경산성은 오염수 처리에 대해 다음 [표1]1의 방식을 제시한 바 있다. 일본정부가 최종 선택한 것은 바로 돈이 가장 적게 들어가는 방식이다.

  1. 삼중수소의 발생과 특징

삼중수소는 베타방사선이라는 일종의 보편성과 삼중수소 고유의 특성이라는 두 가지를 통합해서 이해해야 한다. 원자핵에서 방사되는 방사선에는 3종류가 있다. 알파선, 베타선, 감마선이다. 알파선은 공기 중에서는 45mm, 체내(개체내부)에서는 40μm밖에 날지 못하며, 이때 약 10만개의 분자를 절단시킨다. 베타선은 (에너지를 1MeV로 해서)공기 중에서는 1m정도 까지 날고, 체내에서는 비정거리가 약 10mm이며 이때 약 25,000개의 분자를 절단시킨다. 감마선은 물질과의 상호작용이 약해 드문드문 방사선 에너지를 방출하면서 멀리까지 날아간다. 즉 인간의 몸을 관통할 수 있지만, 듬성듬성 에너지를 소모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방사선이 생체조직을 통과할 때, 감마선은 투과력이 세지만, 알파선은 극히 밀도가 높은 전리작용을 해서 수십만 전자볼트(eV)의 에너지를 수십μm 이동하는 중에 전부 방출하기 때문에 투과력은 극히 약하다. 베타선은 감마선과 알파선의 중간수준으로 인체 내에서는 통상 수cm이동하고는 에너지를 상실한다. 삼중수소는 베타선의 특징으로 인해 특히 인체 조직에 결합하여 방사성 붕괴가 될 경우 상당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전리작용으로 인한 인체장애가 커지는 것이다. (이에 대한 내용은 뒤에서 다룬다.) 여타의 방사능은 특정 장기에 침착하는 경향이 크다. 예컨대 요오드는 갑상선, 스트론튬은 뼈 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삼중수소는 혈액을 통해 전신을 이동한다. 혈액을 통한 전신이동은 삼중수소 고유의 특징이다.

앞에서 언급했지만 삼중수소는 수소의 방사성 동위원소이다. 동위원소라는 것은 같은 원소인데 질량수가 다른 것을 의미하며 원소의 “핵종”과 같은 말이다. 핵종에는 “안정핵종”(안정형태)과 “방사성핵종”(방사성 붕괴하는 불안정형태)이 있다. 자연에 존재하는 수소의 대부분은 두 개의 안정핵종, 즉 수소와 중수소(듀테륨deuterium)이지만, 제3의 핵종으로서 “삼중수소(트리튬tritium)”도 있는 것이다. 이것은 대단히 낮은 농도에서 자연에도 존재한다.2 통상 수소원자가 양전자를 갖는 양자1개와 음전자를 갖는 1개의 전자로서 형성되는 것에 비하여 삼중수소는 전하를 갖지 않는 중성자 2개를 양자에 추가해서 질량수 3의 원자핵을 갖는 수소원자이다.[그림3]

▲ 그림 3. 삼중수소 개념도


중성자와 양자는 거의 무게가 같고, 전자는 양자나 중성자에 비해 약 1,800분의 1에 불과하기 때문에 삼중수소는 통상 수소보다 3배 무거운 수소원자이다. 삼중수소의 화학적인 성질은 양자와 중성자에서 형성된 원자핵 주변에 묶여 있는 음전하를 갖는 전자로 결정되기 때문에, 수소원자와 변함이 없고, 어디서나 통상적인 수소로 치환되고 다양한 원자와 결합한다. 바로 이점이 삼중수소의 첫 번째 특징이다. 삼중수소는 분자단위에서는 언제나 수소로서 인식되고 수소와 같은 역할을 하지만 수소는 아닌 셈이다. 삼중수소의 두 번째 특징으로서 산소와 결합해서 통상적인 물이 아닌 삼중수소 T를 함유한 삼중수소물(HTO)이 된다는 점이다. 이것은 첫 번째 특징으로 인한 필연적 결과이다. 음식이나 음료수를 통해 물을 섭취하게 되면 물은 인체 내에서 대부분 혈액을 통해 온 몸으로 이동한다. 인체는 일반적인 물과 삼중수소물을 구별하지 못한다. 오염수처리 문제에서 언급했듯이 삼중수소를 물에서 분리할 수 있는 기술도 아직은 없다. 어쨌든 인체는 배설작용을 하기 때문에 일시적으로 삼중수소물을 섭취해도 큰 문제는 없다. 성인의 경우 삼중수소 물의 생물학적 반감기는 약 10일이다.

세 번째 특징은 삼중수소가 수소와 동일한 화학성질을 갖고 있고, 또 삼중수소물이 전신을 이동한다는 사실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삼중수소는 “수소”이기 때문에 인체내부에서는 주요 화합물인 단백질, 당, 지방 등의 유기물에도 결합하여 화학구조식 중에 수소로서 포함되는 유기결합삼중수소(OBT ; Organically Bound Tritium)가 된다. OBT는 핵시설에서 발생하는 삼중수소물의 수증기로 오염된 토지에서 재배한 야채나 곡물만이 아니라, 생물농축으로 인한 어패류 등을 섭취하여 발생한다. 말하자면 음식이나 호흡 등, 인체가 필요로 하는 신진대사 과정에서 삼중수소를 섭취하여 발생한다.3

특별히 노동자들은 일반적으로 핵재처리시설이나 핵발전소 등에서 삼중수소물, 삼중수소원자, 금속삼중수소 및 먼지, 발광성 화합물, 삼중수소화 된 생화학적 기질 및 여타의 다양한 인위적 화학 형태와 같은 더 높은 수준의 삼중수소에 피폭한다.4 이처럼 다양한 과정을 통해 인체 내부로 섭취된 삼중수소는 수소처럼 인체조직이나 세포에 결합한다. 주지하다시피 우리 인체 내부에 수소를 함유한 화합물은 무수하게 많다. 탄수화물도 지방도 단백질도 DNA도 호르몬도 생명과 관계있는 모든 물질이 화학구조에서는 수소를 포함한다.

OBT는 HTO와는 전혀 다른 거동양태를 나타낸다. 우선 배출이 늦어진다. 그만큼 인체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진다. HTO보다 20~50배나 길어진다는 보고가 있다. 예컨대 2007년 그린피스의 이안 페어리(Ian Fairlie)는 다양한 연구결과로부터 탄소와 결합한 OBT의 생물학적 반감기는 대단히 길어서 200~550일까지 늘어남을 주장했다.5 특히 인체의 연조직(soft tissue)에 분포하는 OBT가 집중적으로 반감기가 늘어나는 양상을 나타낸다.6 반감기가 늘어나는 것이 곧 유해하다는 것이 아니라, 방사성 붕괴로 인한 유해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다. 마치 시한폭탄과 같은 상태가 되어 버린다.

다만 아직까지 OBT의 정확한 인체 내 동역학에 대해서는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이다. 특히 초과상대리스크 등의 값을 구하기 위해선 선량을 측정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인체내부의 분자단위에서 발생하는 현상에 대해 직접 측정하기가 어렵다. EU방사선방호위원회는 2008년도 보고서에서 “(OBT의)신진대사 과정과 유지에 대해 알려진 것은 거의 없다. 삼중수소를 포함하는 생물학적 유기 화합물의 섭취로 인해 발생하는 OBT는 정상적인 OBT 경로로 진입할 것으로 예상되지 않으며, 이러한 유형의 피폭에서 방사선량의 정확한 추정치를 얻기 위해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7 고 서술했으며, 이러한 내용은 아직도 유효한 상태이다.

유럽연합 방사선방호위원회가 2008년도에 펴낸 삼중수소 보고서에는 삼중수소를 베타방사선의 일반적인 특징이 가장 전형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핵물질로 본다. 그런데 이러한 베타방사선이 위에서 언급한 인체조직과 결합한 유형의 피폭에서는 정확한 방사선량의 추정치를 얻기가 매우 어렵다는 점을 강조하면서도 기존의 생물학적 상대 효과비(RBE)는 너무 낮다고 지적한다.8 RBE라는 것은 방사선의 고유 특성에 따라 인체에 주는 영향이 각기 다른 점을 반영하기 위해 마련한 것이다. 특별히 ICRP는 베타선과 감마선을 가장 기본적인 방사선으로 동일하게 취급하여 “1”이라는 수치를 부여한다. 감마선의 투과력과 베타선의 밀도를 같이 다루는 방사선보건학자는 세상 어디에도 없고, 그렇게 서술한 교과서도 없다. 유럽방사선방호위원회는 “2”라는 수치를 제시했지만, 특별한 이유, 즉 “핵산업 보호”라는 이유 때문에 무시되었다. ( ICRP에 대해선 뒤에서 언급한다.)

요컨대 베타선이라는 밀도 높은 전리작용과 함께 고유의 거동양태(분자수준의 인체조직 결합 등)를 모두 고려한다면, 삼중수소는 특별히 사람의 인체내부에서 발생하는 피폭, 즉 내부피폭과 깊은 관련성이 있다고 할 수 있겠다. 물론 인체 내 OBT의 상세한 거동양태나 선량측정 등의 어려움으로 분명한 메커니즘 분석은 어렵고 불확실성으로 남아 있으나, 인체에 대한 영향만큼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1. 핵발전소와 재처리시설에서 삼중수소의 일상적 방출

통상 삼중수소는 핵발전소와 핵재처리시설에서 많이 발생한다. 핵재처리 시설의 삼중수소 발생량은 핵발전소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다. 먼저 핵발전소를 살펴보고 이어 핵재처리시설을 다룬다.

핵발전소는 원자로의 형식에 따라 비등수형과 가압수형으로 나눈다. 주지하다시피 우리나라의 핵발전소는 전부 가압수형이다. 삼중수소는 특히 가압수형에서 많이 발생한다. 가압수형은 다시 경수로와 중수로로 분리할 수 있는데, 삼중수소는 중수로에서 더 많이 발생한다. 삼중수소의 발생량으로만 놓고 보면 중수로 > 경수로 > 비등수형이라는 도식이 성립한다.

삼중수소는 원자로에서 우라늄이나 플루토늄이 핵분열을 통해 3개로 분리되는 3중핵분열 반응으로 발생한다. 특별히 가압수형 원자로에서는 보론boron이나 리튬Lithium등의 가벼운 원소와의 중성자 반응 때문에 삼중수소의 방출량이 많다. 이와함께 주로 이산화 우라늄UO₂의 3중핵분열 반응으로 삼중수소가 발생하고, 이 때는 삼중수소가 연료봉에 축적된다. 평상시에는 연료봉을 싸고 있는 지르코늄합금으로 제작한 피복관으로 인해 방출이 거의 없지만, 사고나 재처리 등의 경우 연료봉이 파괴되면 외부로 방출된다.9

중수로는 감속재와 냉각재로 중수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중성자에 쪼여 생성된 삼중수소의 양이 경수로와 비교하여 많은 양을 차지한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월성 핵발전소가 이에 해당한다. 월성의 원자로는 캐나다에서 제작한 칸두형CANDU(Canada Deuterium Uranium)으로 알려졌다. 월성은 삼중수소가 우리나라 여타의 핵발전소보다 “액체 방사성폐기물은 약 2 배 내지 3배, 기체방사성폐기물의 경우는 약 10 배 정도가 배출되고 있다.”10

칸두형 원자로의 삼중수소 발생에 대해 조사한 2007년도 그핀피스 보고서에는 “삼중수소는 원자로를 가동할 때, HTO의 수증기 형태로 환경에 방출된다. 많은 사람들이 추측하는 것과는 달리 굴뚝같은 시설을 통해 배출되는 경우는 드물고, 대개는 기계, 펌프, 밀봉, 파이프, 원자로 건물 벽 등의 틈을 통해 HTO의 수증기가 배출된다. 즉 HTO의 수증기는 사실상 모든 표면, 원자로건물 구석구석으로부터 문자 그대로 흘러나온다.”고 서술했다.11

우리나라의 경우 월성핵발전소의 삼중수소 집중발생은 이미 2014년도부터 거론될 정도로 이미 인근 지역주민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월성핵발전소 바로 곁에 살고 있는 경주 양남면 나아리 주민들이 월성원전홍보관 앞에서 천막농성을 펼치며 이주를 요구한 적이 있다.12 이들은 “30년 동안 배출된 삼중수소의 피해는 우리 주민이 당하고 있는데 지금까지 한 번도 피해 여부에 대한 조사나 실사를 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2016년에는 동 지역의 5세 아동의 몸속에서 삼중수소가 다량 검출되어 우려를 낳았다.

삼중수소는 울산시민들에게서도 검출된 바 있다. 경주의 환경단체와 주민들은 2015년 월성 핵발전소의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있는 주민들을 월성핵발전소로부터 거리에 따라 구별하여 뇨시료를 대상으로 삼중수소 검출량을 조사한 바가 있다. 결과는 거리가 가까울수록 100% 삼중수소가 검출되었다. 월성핵발전소의 행정적 경계구역은 경주이나, 울산 북구지역(북구청 17km)이 경주시내(26km)보다 근거리에 위치하고 있어, 주변 환경에 대한 오염 조사 필요성으로 인해 검사한 것이다.13 2018년도에는 고리 핵발전소 주변 조사에서도 삼중수소가 예상보다 많이 나온 적이 있다.14 이러한 한국에서의 삼중수소 방출 문제는 일본에게도 빌미를 제공하고 있다. 사실 삼중수소 해양방류에 대해선 한일 간에 차이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 한국에서 일본의 후쿠시마 핵발전소 오염수의 해양방류 문제에 대한 우려를 지속적으로 표명하자, 일본에서는 한국의 월성 핵발전소가 후쿠시마보다 총량의 8배나 많은 삼중수소를 바다에 방류했다고 주장한 바 있다.15

▲ 그림 4. 국내 핵발전소 삼중수소 배출량 연도별 추이 16

사실 지역주민들보다 더 심각한 것은 노동자들이다. 특히 원자로를 보수 정비하는 하청노동자들의 뇨중 삼중수소는 일상적으로 검출되고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 핵발전소 노동자, 특히 원자로 유지보수 작업에 투입하는 하청노동자들의 삼중수소 실태에 대해선 이렇다 할 자료가 없는 실정이다. 국내의 한 논문은 “중수로 원전 종사자의 삼중수소로 인한 내부피폭이 우려되며, 실제 국내 중수로 원전 종사자의 경우 방사선 피폭의 약 30%가 삼중수소에 의해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서술했다.17 삼중수소에 대해 지역주민들의 문제제기가 많았지만, 내부에서 근무하는 노동자들의 피폭량에 대해선 사실상 일반적인 관심이 없다고 볼 수 있다.

한편 일본의 반핵단체는 삼중수소와 관련해서 후쿠시마 핵발전소의 오염수 문제도 제기하지만, 더 큰 문제라고 생각하는 시설이 바로 핵 재처리시설이다. 우리나라는 아직 핵 재처리 시설이 없지만, 일본은 곧 가동할 예정이다. 일본정부는 홋카이도 바로 밑에 있는 아오모리현 롯카쇼무라에 재처리 공장을 세웠다. 롯카쇼무라에는 니혼겐넨(日本原燃)주식회사가 운영하는 우라늄 농축공장, 저준위방사성폐기물 매설센타, 고준위방사성폐기물 저장관리센터, 재처리공장 등이 밀집되어 있다. 핵연료의 재처리라는 것은 핵발전소에서 가동을 마친 핵연료를 수거하여 이를 정련한 후에 우라늄과 플루토늄을 생산한다. 한마디로 재처리 시설은 핵폭탄을 만들기 위해서는 필수적이다. 롯카쇼무라의 재처리 공장은 1993년 4월에 착공하여 2014년에 일본의 원자력규제위원회에 사용허가신청을 제출한 상태이다. 최근 일본정부는 사용허가 신청을 승인하려 한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다음 그림에서 보는 바와 같이 재처리공장에서는 절단, 용해공정에서 연료봉을 파괴하여, 연료봉 속에 포함되어 있는 삼중수소가 외부로 대량으로 방출된다. 연료 속 거의 모든 삼중수소가 방출되는 것이다. 상당히 두려운 사실이지만, 일반적으로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18

2015년 4월1일의 로이터통신 기사에서는 “후쿠시마 1호기에는 현재 900조 베크렐 규모의 삼중수소가 있지만, 사고전인 2009년에는 연간 2조 베크렐을 바다로 내보냈다. 아오모리현 롯카쇼무라에 건설한 핵연료재처리시설은 본격 조업할 경우 후쿠시마 1호기에 저장하고 있는 양의 20배 규모가 되는 1.8 × 1,016(1경 8,000조)베크렐의 삼중수소가 1년간에 배출된다.”고 보도했다. 한마디로 칸두형 핵발전소(중수로)의 삼중수소 배출량은 그야말로 세발의 피가 되는 어마어마한 양의 삼중수소 배출이 불가피해지는 것이다.

▲ 그림 5. 재처리 공장의 공정도 19
  1. 삼중수소의 건강영향

이상에서 서술한 삼중수소의 특징으로부터 삼중수소의 건강영향을 유추할 수 있다. 삼중수소는 자연에서 발생하기도 하지만, 모든 핵발전소에서 일상적으로 방출하고 있다. 이중 가압수형 핵발전소가 비등수형보다 더 많이 배출하고, 특히나 캐나다의 칸두형 중수로는 여타의 모든 핵발전소 보다 훨씬 많은 삼중수소 배출의 특징이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 아울러 한국에는 핵재처리시설이 없으나, 예를들면 일본에서 곧 가동할 예정인 롯카쇼무라의 핵연료 재처리시설에서는 칸두형 중수로 핵발전소보다도 몇 십배 많은 삼중수소를 배출한다. 칸두형 핵발전소나 핵재처리시설에서 근무하는 노동자들은 제일 많은 삼중수소에 노출되고, 이와 함께 인근의 지역주민들도 일상적으로 삼중수소에 노출된다.

이렇게 노출된 삼중수소는 사람들이 음료수, 음식물, 공기 중 호흡 등, 인간의 신진대사작용 과정에서 인체로 섭취된다. 섭취한 삼중수소는 혈액을 통해 인체의 모든 곳으로 이동하며, 이때는 삼중수소물(HTO)의 형태를 갖추고 있다. 대체로 약 10일의 생물학적 반감기가 지나면 대다수의 삼중수소물은 배설되는 데, 그러나 섭취한 삼중수소의 극히 일부가 유기결합삼중수소(OBT)로 변하면서 인체의 분자수준에서 각종 조직이나 세포에 침착(결합)한다. 가장 위험하고 가장 민감한 건강영향은 바로 유기결합삼중수소와 관련해서 발생한다.

OBT의 건강영향과 관련해서 독자여러분들이 기억해야 것은 첫째, 삼중수소가 OBT의 형태를 띠고 있는 한, 문제가 되는 것은 내부피폭이라는 점이다. 현대의 내부피폭에 대해 지금까지 많은 학자들이나 단체에서 일반적인 설명을 많이 했다. 아직까지 과학적으로 분명히 완결된 해명이 이루어지지 않았으나, 내부피폭의 존재 자체를 의심하는 경우는 없다. 독자여러분들은 내부피폭을 필자가 제시하는 유형별로 기억할 필요가 있다.

우선 첫째로 “2-충돌 유형”이 있다. 이것은 특히 유럽방사선리스크 위원회(ECRR)가 제기한 내용이다. “2-충돌”은 세포분열이 완성되기 전에 방사선에 두 번 충돌(피폭)한다는 개념이다. 내부피폭의 특징상 상당히 낮은 저선량에서도 “2-충돌”이 발생한다. “2-충돌”은 돌연변이의 가능성이 극히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2-충돌”을 발생할 수 있는 방사성물질의 유형 3가지는 다음과 같다.

⦁ 스트론튬 Sr-90 / 이트륨 Y-90, 텔루리움 Te-132 / 요오드 I-132 와 같은 부동성(不動性)의 연속적 방사체Immobilised sequential emitters
⦁ 부동이고, 비용해성인‘고방사능 입자hot particles’또는 원소군, 예를 들어, 플루​​토늄 또는 우라늄 산화물; 또한 SPE(이차적 광전자 효과)를 가지는 DNA와 결합된 원자번호 Z가 높은 원소
⦁ 매우 낮은 에너지를 지닌 베타 방사체, 삼중수소Tritium 는 선량 단위 당 많은 방사선 궤적을 가진다.20


다시 한 번 간단하게 정리한다면 돌연변이의 발생 가능성이 높은 내부피폭으로서 “2-충돌 유형”이 있는 바, 이것은 1) 요오드형, 2) 핫파티클(hot particles)형, 3) 삼중수소형이 있는 것이다. 1)과 2)에 대해서는 다른 지면에서 다시 논의하는 것으로 미룬다. 여기서는 세 번째 유형인 삼중수소에 집중하면서, 일단 돌연변이의 발생 가능성이 높은 “2-충돌 유형”이 삼중수소의 내부피폭에서 나타날 수 있는 첫 번째 중요한 유해영향이라는 점을 강조하기로 한다.

이제 삼중수소로 인한 두 번째 건강유해 유형으로서 일본의 야가사키가츠마(矢ヶ崎克馬)가 강조한 “분자절단”이 있다. 여기서의 초점은 “삼중수소는 선량단위당 많은 방사선 궤적을 가진다.”는 내용에 있다. 즉 베타선의 특징으로 인한 영향이라 할 수 있다. 베타선은(에너지 1MeV이다)약 10mm를 날아가 그 사이에 약 2만5천개의 분자절단을 행한다. 1개 1개의 분자절단의 간격은 알파선의 대개 1,000배이다. 베타선의 위험을 다만 1발만으로 생각한다면 재결합시에 잘못된 결합을 초래할 확률은 대단히 적다고 판단할 수 있다. 이것만 고려한다면 별 문제가 없을 수 있다. 그러나 인공방사능은 미립자를 형성한 방사성원자가 집단을 이룬다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베타 붕괴는 반감기가 짧아서 미립자로부터 다량의 베타선이 단위 시간 내에 방출된다. 그로인해 분자절단의 유효간격은 밀접해지고, 알파선과 마찬가지로 변형된 DNA를 발생시킬 가능성이 커진다. 비거리가 10mm정도로 짧다는 것은 베타선이 도달하는 작은 영역(질량도 작다)안에 모든 에너지를 집중하여(분자절단을 집중한다.) 대단히 높은 방사선의 유효선량을 기록하는 것이다. 대단히 밀도가 높은 분자절단을 행하고, 잘못된 재결합을 통한 “변형된 유전자”의 생성확률은 높아지게 된다. 내부피폭에서는 알파붕괴나 베타붕괴로 인하여 예상을 뛰어넘는 피해가 나오는 연유이다.21 이런 내용을 비유로서 설명을 한 자료가 있다. ICRP 설립초기 제2소위원회(내부피폭위원회)의 위원장 칼모건(Kyle Z. Morgan)은 그의 저서 [The Angry Genie]에서 삼중수소의 위험성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삼중수소는 대단히 낮은 베타 에너지 방출핵종으로 인간의 조직에 침착(沈着)하면 파괴적인 영향을 발휘할 수 있다. 저에너지 베타입자가 인간의 조직에 주는 영향을 이해하기 위해서 유용하지만 소름끼치는 사례를 다음과 같이 서술해 놓겠다. 테러분자가 차에서 어떤 집을 향해 자동소총을 발사하면서 집의 옆을 통과하려는 장면을 상상해보라. 만일 테러분자의 차가 1시간에 80마일(약128킬로)로 달리는 경우, 10발 이상 맞추기가 힘들 것이다. 그런데 만일 차가 1시간에 불과 5마일(약 8킬로)로 이동한다면 몇천 발의 탄환을 맞출 수도 있을 것이다. 이것과 동일한 현상으로 천천히 움직이는 베타선 방출핵종인 삼중수소는 몇천발의 탄환을 방출하는 것이다. 이 경우 조직의 원자로부터 전자를 분리시키면서 조직을 이동해가는 것이다.22


삼중수소의 내부피폭 세 번째 유형에는 유전자결합이 있다. 이것은 “페트카우 효과”를 소개했던 랄프 그뢰이브가 처음 제기하였다. 랄프 그뢰이브는 그의 저서에서 “삼중수소의 리스크는 오랜 기간 과소평가해 왔다.”고 전제하고, “삼중수소는 통상 수소를 포함하는 세포에 함유되지만, 세포액 내에도 함유될 수 있다. 만일 염색체를 구성하는 분자의 하나인 티미딘thymidine으로 섭취된다면 삼중수소는 물속에서 흡수된 경우보다 50배에서 5만 배나 강력한 힘으로 유전물질을 오염시킨다. IAEA의 보고에 따르면 생물학적 손상에 대한 것은 티미딘 내의 삼중수소는 물속에 있을 때보다 약 100배나 리스크가 크다. 삼중수소를 기초로 한 저선량 방사선의 유전적 영향은 발암성의 영향과 감염에 대한 감수성이 모두 높아진다는 점은 쥐를 이용한 실험에서도 입증되었다.”23고 주장했다. 교토대학 명예교수 사이토마사히로(斎藤眞弘)는 “DNA의 재료인 티미딘thymidin과 결합한 삼중수소는 세포증식이 왕성하여 DNA가 활발하게 합성되고 있는 골수, 위장관, 비장 등에 모이기 쉽다.”고 서술했다.24 일본의 방사선과 의사 나토리하루히코(名取春彦)는 “삼중수소티미딘을 쥐에게 주사하면 쥐의 테라토마 세포에서 삼중수소 티미딘이 DNA내부에 포함된다.”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이의 사진을 자신의 저서에 공개했다. 아울러 그는 “삼중수소티미딘처럼 삼중수소가 DNA에 포함될 경우 세포는 강력한 손상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25 이때의 주요 손상은 주로 염색체 절단에 따른 염색체 이상이다. 염색체 이상은 여러 질병을 발생시킨다. 특히 다운증후군은 21번째의 염색체가 통상적인 경우보다 1개 많은 3개가 있는 염색체이상으로 발생하는 질환이다. 급성골수성백혈병에서도 다양한 염색체이상을 확인할 수 있고, 급성림프성백혈병에서도 약 4명중에 1명의 비율로 필라델피아염색체라는 염색체이상을 확인할 수 있다.(필라델피아염색체라는 것은 9번째 염색체와 22번째 염색체가 바뀌어서 연결된 것) 이같은 현상은 구체적으로 현실에서 확인된 바도 있다. 예컨대 캐나다 원자력위원회(CNSC)의 1991년 보고서(INFO-0401과 INFO-0300-2)에서는 핵발전소가 설립된 지역인 피커링이나 인근 에이작스(Ajax)에서 1973~1988년 조사기간에 태어난 아동의 다운증후군 발병률 증가 사례를 서술하였다.(뒤에서 서술)

DNA결합 외에도 삼중수소는 붕괴가 끝나면 헬륨원자가 되는데, 이때는 DNA의 나선이 끊어지는 등의 영향과 화학구조의 변형이 발생한다. ECRR도 특별히 이런 점을 지적하였다. “삼중수소 원자의 헬륨 원자(이것은 불활성이고 화학적 결합을 지원하지 않음)에로의 급격한 붕괴는 거대분자의 활동과 정상적인 과정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26 즉 삼중수소가 인체조직 내부에서 방사성 붕괴할 경우 모든 에너지가 소진 되고 난 후에는 헬륨으로 변형되면서 수소가 있어야 할 자리에 헬륨이 들어서는 상황이 발생한다. ECRR에서는 이런 현상을 원소전환(Transmutation)이라고 명명하였다. 삼중수소 내부피폭의 네 번째 유형은 바로 ‘원소전환’인 것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BEIR-III 보고서 편집책임자였던 존 고프만의 설명을 인용하는 것으로 대신한다.

삼중수소 원자 속에는 25년, 50년 혹은 100년간이나 존재해온 것이 있다. 그것이 베타선입자를 방출해서 헬륨으로 변하지 않는 한, 삼중수소원자는 해당 기간 중에 어떤 방사선도 내지 않는다. . . . 중략 . . . 그러나 1일후가 될지, 100년 후가 될지 알 수 없지만, 어느 날 삼중수소 원자는 순간적으로 베타선입자를 방출하면서 헬륨원자로 변한다. 삼중수소 원자가 방사선을 방출하는 것은 이 한 순간뿐이다. 이 순간까지 삼중수소 원자는 늘 화학적으로 수소로서 거동하며, 이후 영구히 헬륨으로 거동한다.27


이상에서 필자는 삼중수소의 건강영향에 대해 4가지 유형으로 설명하였다. 독자들이 기억하기 쉽도록 분류한 것이지만, 사실 이런 모든 것이 유기결합삼중수소의 방사선 방출이라는 단일 과정 속에서 나타날 수 있는 유형이라 할 수 있다. 다시 한 번 정리하면 삼중수소의 내부피폭으로 인한 유해성은 1) ECRR의 “2-충돌”, 2) 베타선의 특징으로 인한 “분자절단”, 3) DNA의 티미딘과 결합하는 “삼중수소티미딘”, 4) 헬륨으로의 “원소전환” 등이다. 이처럼 분자생물학이나 동물실험 등에서 분명하게 해명된 삼중수소의 내부피폭에 대해 ICRP(국제방사선방호위원회)는 처음부터 일관되게 무시해왔다. 삼중수소와 관련된 문제로서 이제 ICRP의 패러다임에 대한 비판을 통해 삼중수소 논의를 정리하도록 하자.

  1. ICRP와 삼중수소

삼중수소에 대한 ICRP의 주장은 과학으로 위장한 일방적 선언이라는 점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사실상 ICRP의 문제가 집약적으로 드러나는 영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삼중수소 문제는 현대의 방사선피폭의 최대 쟁점중의 하나이다.28 ICRP의 방호조치에 대한 그간의 특징은 여러 관점에서 여러 표현을 적용할 수 있겠지만 본고에서는 ECRR(유럽방사선리스크위원회)에서 “체르노빌 사고에 관한 소위원회” 의장을 역임했었던 러시아의 과학자 알렉세이 야블로코프(Alexey Yablokov)가 2012년 4월 일본 도쿄에서 발표했던 내용을 적용한다. 야블로코프는 ICRP 패러다임에 대해 8가지의 특징을 제시한다. 8가지의 구체적인 내용은 아래와 같다.29

  1. 개인의 유효선량은 방사선핵종으로 발생하는 내부피폭과 외부피폭의 합계이다.
  2. 외부피폭 수준은 전리한 환경에서 시간의 경과에 따라 계산한다. 내부피폭은 물 , 공기, 음식물을 통해 인체로 섭취하는 방사선핵종의 양을 통해 계산한다.
  3. 각각의 방사선 핵종이 끼치는 영향은 시간과 공간에서 일정하다.
  4. 엑스선, 모든 감마방사체와 베타 방사체의 생물학적 효과는 “1”이며, 저속중성자는 “3”, 알파방사체와 초고속중성자는 “20”이다.
  5. 인체 장기는 상대적인 방사선 감수성을 적용한다. 생식기의 0.2에서 피부 0.001까지
  6. 20세, 70kg의 건강한 백인남성의 평균적인 신체로 제작한 팬텀(모형)을 이용하여 방사선 영향을 측정하는 데, 이때 방사선은 전신에서 균등한 질을 갖는 것으로 가정한다.
  7. 방사선량이 높을수록 생물학적 영향이 높아진다.
  8. 대부분의 저선량 피폭에 대한 연구는, 암이나 몇 가지 유전자 질병만을 고려하는 것이지만, 실상 이런 질병들은 수백 만 명 중에 단지 몇 명에게만 발생하는 것에 불과해서 연구진행에 어려움이 많다.

야블로코프는 1)~2)번의 입장은 계산상 비현실적이며, 3)~8)번은 과학적으로 부정확하다고 평가한다. 즉 ICRP의 방사선에 대한 패러다임은 비현실적 전제와 부정확한 과학적 근거에 토대를 둔다는 것이다. 필자는 ICRP에 대한 야블로코프의 평가를 긍정적으로 인정하면서도, 그간 여러 사람의 평가를 고려해서 ICRP의 방호정책은 “3가지 외면 패러다임”으로 다시 규정한다. 3가지 외면이란 1) 내부피폭의 외면, 2) 특성별, 그룹별 피폭의 민감성 외면, 3) 저선량 피폭의 외면을 의미한다. 삼중수소 문제는 ICRP의 외면 패러다임이 전형적으로, 너무도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우선 ICRP내부에서 삼중수소 문제가 처음부터 쟁점사항이었으며, 일관되게 외면해왔다는 사실은 앞에서 인용한 칼 모건에게서 확인할 수 있다. 칼 모건은 앞의 인용문 바로 뒤에서 ICRP의 삼중수소에 대한 정책을 비판했다. 이를 소개하면 아래와 같다.

삼중수소가 얼마나 위험한가를 분명히 해야 하기 때문에 (중략) 삼중수소의 선질계수 값을 올리기 위해 전력을 다해 노력했다. 선질계수를 올린다는 것은 최대허용농도(MPC)값을 비례해서 낮춰야 하는 것과 같다. 최대허용농도(MPC)가 낮아진다면 산업계와 군부에서는 이에 대응하기 위해 비용을 더 확대할 수밖에 없어 심각한 어려움이 발생한다. 달리 표현한다면 선질계수를 높이면 삼중수소에 대한 최대허용농도를 낮춰야 하고 방사선을 다루는 시설에서 노동자들의 작업조건은 보다 안전하게 될 것이다. 스나이더와 나는 삼중수소의 선질계수를 1.7에서 4 혹은 5로 올리려고 논의했다. 우리는 강력한 반대에 직면했다. 영국출신의 ICRP위원이었던 글렉 말레이(Gregg Marley)는 적어도 원자력산업계가 ICRP와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고 솔직하게 인정했다. ICRP 본위원회의 회의 시에 말레이는 스나이더와 내가 바라고 있는 보다 높은 선질계수를 사용한다면 작업조건은 그만큼 안전하게 되겠지만, 그럴 경우 정부는 삼중수소를 사용한 무기제조가 어렵게 된다는 점을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중략) 1970년 내가 ICRP를 떠나자마자 삼중수소의 선질계수는 기존의 1.7에서 1로 인하되었다. 이 값이 아직도 남아있다. 이 값은 3이하로 할 수는 없으며 적절한 값은 5라고 본다.30


ECRR도 [2010년 권고문]에서 역시 위와 같은 내용을 제기한 바 있다. ECRR의 2010년 권고문 99쪽에 “위원회는 1980년대 ICRP내부에서 삼중수소에 대해 가중치 계수 2를, 그리고 오제전자 방출체에 대해서는 5를 적용하자는 제안들이 있었으나, 핵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위 제안들이 채택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고 서술했다.31 즉 ICRP내부에서는 칼 모건이 제기했던 “선질계수 5”는 커녕 “2”로 올리는 문제에 대해서도 갑론을박 했으며, 이마저도 핵산업 보호라는 명분으로 철회했다는 점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ICRP는 정말 과학적 양심을 포기한 조직이다.

이런 이유로 ICRP의 권고문에 삼중수소는 표면적으로는 언급하고 있으나 실제적으로는 외면하는 방법을 구사한다. 예를들어 2007년 권고문에 삼중수소와 관련된 내용이 전형적이라 할 수 있다. ICRP는 2007년도 권고문에서 삼중수소를 본문에서 다루지 않고, 부록에서 다룬다. 부록에서 다룬다는 의미는 “권고는 하기 싫지만, 그러나 ICRP는 충분히 검토했다”는 인상을 주기 위함이다. 구체적으로 부록B “방사선방호에 사용되는 양”에서 삼중수소에 대해 두 개의 절에서 다루고 있다. ICRP는 삼중수소 뿐만이 아니라, 방사선피폭의 현대적 쟁점사항을 대부분 이곳에서 다루는 데, 다루는 방식은 치졸하기 짝이 없다. 즉 삼중수소나 방사성미립자(Hot Particles)등의 문제를 선량측정의 문제로서 제기하고 있으며, 선량측정이 어렵다는 이유로 건강의 유해성마저도 어물쩍 넘어가는 것이다. 이를 확인하기 위하여 ICRP 2007년 권고문 부록B의 57절에서 제기한 삼중수소티미딘에 대한 내용을 보도록 하자.

(B57) 삼중수소가 표지된 DNA전구체(예: 티미딘thymidine, 디옥시시티딘deoxycytidine)나 세포핵의 DNA에 함유된 오제전자 방사체로 인한 선량분포는 매우 불균질 할 수 있다. 방사체의 특별한 위치와 삼중수소 베타 방사선과 오제전자의 매우 짧은 비정 때문에 세포나 장기 또는 조직에 대한 평균선량보다 훨씬 높은 선량을 세포핵이 피폭할 수 있다. 따라서 삼중수소화 DNA전구체는 세포핵에 특징적으로 위치하지 않는 삼중수소수(HTO 또는 3HHO)와 같은 삼중수소 화합물보다 방사성 독성이 높을 수 있다(Streffer 등 1978). 그러한 경우 위험은 세포핵 선량에 기초해 결정해야 한다. 다른 접근법 하나는 비균질 분포한 방사성핵종(예: 삼중수소화 티미딘)의 생물학적 효과비에 대해 실험한 포유류데이터를 보다 균일하게 분포하는 동일 핵종(예: 삼중수소수)이나 외부 조사와 비교하여 고려하는 것이다(Streffer 등, 1978). 그러한 국지적 세포핵 조사에서 발생하는 선량과 위험을 다루는 구체적 개요를 ICRP가 제안하지는 않는다.(제B.3.5절 B86―B99항 참조).32


위의 인용문에서 독자여러분들이 신경써야 하는 부분에 대해 필자가 강조를 해놓았다. ICRP는 삼중수소티미딘의 특징을 “선량분포의 불균질”에 두고 있다. 이는 방사선의 전문가라면 모두 인정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불균질”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구체적으로 확인해 보자.

ICRP의 피폭선량 정의는 다음과 같이 기술된다. “흡수선량은 어떤 한 점에서 규정하는 표현방식이지만, 그러나 당 보고서에서는 특별히 단정하지 않는 한, 하나의 조직 • 장기내의 평균선량을 의미한다.”(1990년 ICRP 권고 제2장) 여기에서 평균선량은 방사선이 특정 조직이나 장기에서 골고루 퍼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기본적으로 특정 조직의 세포수준에서 선량의 집중피폭을 인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구체적인 동물실험에서 확인해보면, 특정 조직에서는 선량이 균등하게 배분되지 않고 “불균질”하게 침착하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한다. 인용문에서 보다시피 ICRP도 삼중수소티미딘이 일단 “불균질”하다는 점을 인정한다. 불균질을 인정한다는 것은 곧바로 삼중수소티미딘이 “방사성 독성이 높을 수 있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이런 결론을 인정한다면 ICRP가 권고에서 제안한 방사선가중치나 조직가중치가 더 높아져야 함은 당연한 조치인 것이다. 그러나 ICRP는 서술만 이렇게 해놓고 결론적으로는 “제안하지 않겠다.”고 일방적으로 선언해버린다. 왜 이렇게 일방적으로 선언해 버리고 마는가. 앞에서 이미 언급했지만 핵산업을 보호하기 위해서이다.

ICRP는 다시 부록B 94절에서 삼중수소 문제를 논의한다. 여기서는 앞에서 확인한 바 있는 삼중수소의 헬륨변환(소위 원소전환)을 언급하고 방사선가중치를 다룬다. 주지하다시피 삼중수소와 같은 베타선은 감마선과 함께 방사선가중치가 “1”이다. 칼모건이 “3이하로 할 수는 없으며 적절한 값은 5”라고 했던 내용이다.

(B94) 그러나 삼중수소의 저에너지 베타 방출에 대해 을 사용함에는 아직 논란이 있다(CERRIE 2004). Straume과 Carsten(1993)은 동물과 시험관 세포 시스템에서 삼중수소수(HTO)와 유기결합삼중수소organically bound tritium(OBT) 피폭의 발암, 유전적 및 발생학적 영향, 그리고 생식 영향에 관한 실험적 데이터를 면밀하게 검토했다. 관찰한 영향의 스펙트럼은 X선이나 감마선의 전신 외부피폭 영향과 구별할 수 없다. 삼중수소에서 관찰한 영향이 전리방사선에 의한 손상에서 기인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지만, 삼중수소에서 헬륨으로 변환 또한 DNA 손상을 유발할 잠재력이 있다. 삼중수소에서 관찰한 영향에는 그러한 변환 손상의 기여도 포함된다. HTO 피폭에서 관찰한 모든 영향을 고려할 때 RBE값의 범위는 1과 3.5 사이이다. 감마선과 비교한 경우는 대부분 RBE값은 1과 3 사이였으며, X선과 비교한 경우는 대부분 값은 1과 2 사이였는데 그중 1과 1.5 사이의 값이 가장 많았다. 삼중수소 베타 조사에 대한 RBE 측정치는 미시방사선량계측에 기초한 평가치와 대체적 일관성을 유지한다(Bigildeev 등1992, Morstin 등 1993, Moiseenko 등 1997).33

위의 내용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일단 ICRP가 자신들도 삼중수소의 선질계수를 올리기 위해 논의를 했다는 점 자체에 대해선 인정하고 있다. 앞의 인용문에서 칼 모건은 삼중수소의 선질계수는 3이하는 절대 아니라고 했다. 결국 4나 5라는 이야기인데, ICRP내부에서는 “1과 3사이” 혹은 “1과 2 사이” 등등을 언급만 할 뿐 어떤 결정을 내렸는지, 혹은 향후 계획이 무엇인지에 대해선 일체 내용이 없다. 이런 방식이 ICRP의 전형적인 물타기 수법이라 할 수 있다. ICRP의 의도는 이것이다. “우리도 삼중수소의 선질계수에 대해 논의는 했지만 분명한 결론이 없었다. 결론을 내리지 않은 상태에서 선질계수 변동은 있을 수 없다.” 말하자면 삼중수소에 대한 논란은 인정하나 아직 삼중수소의 선질계수는 1을 사용하니 그리 알아달라는 주장에 불과한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2008년에 이미 유럽연합 방사선방호위원회에서 베타선의 방사선가중치를 “2”로 하자고 공식적으로 제안한 바도 있으나, 이 또한 핵산업의 보호라는 명분으로 외면해 버린 것이다.

  1. 외국의 피해사례(번역문)34

[캐나다]

캐나다의 피커링원전이나 불스원전이라 불리는 CANDU형 (Canada Deuterium Uranium)원자로가 집중 설치된 지역 주변에서, 아이들에게 이상한 증상이 나타난 것을 시민단체들이 밝혀냈다. 캐나다 원자력규제위원회AECB가 발행한 보고서에서도 “데이타 면에서는 유전장애, 신생아사망, 소아백혈병의 증가를 확인했다.”고 서술했다.

또한 저선량방사선의 건강영향 전문가 로잘리 버텔은 캐나다 원자력안전위원회CNSC 앞으로 보낸 편지에서 원전주변의 건강피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보고했다.

① 1978~1985년 기간 중에 피커링 원전에서 삼중수소 방출량과, 동 기간 이후 주변지역에서 선천적 결손증으로 인한 치사율과 신생아사망수 사이에는 상관관계가 나타난다.
② 피커링에서는 1973~1988년의 조사기간에 태어난 아동의 다운증후군 발생률의 증가가 1.8배, 조금 떨어진 에이작스(Ajax)에서 1.46배이며, 이것은 높은 삼중수소 방출량과 신생아의 중추신경계 이상과의 연관성을 시사한다.
③ 국제암연구기관IARC가 시행한 각국의 원자력 노동자 조사에서는 캐나다의 노동자 피폭관련 암의 발병률은 동일선량을 피폭한 다른 국가들의 노동자 보다 높아, 캐나다 원전의 삼중수소 방출량이 다른 국가보다 높다는 점과 관계될 가능성이 있다.
④ AECB보고에서도 소아백혈병 사망수는 부르스(Bruce)원전이 가동한 이후 1.4배 증가했다는 점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미국]

미국에서 원전의 폐로 전과 폐로후의 주위 지역에서 유아사망률의 변화를 조사한 보고서가 있다. 면역학이나 환경문제 등을 전문으로 하는 의사, 대학교수 등이 조직한 “방사선공중보건 프로젝트Radiation Public Health Project(RPHP)”가 1987년부터 97년까지 원자로를 폐쇄한 전미 9개 지역의 원자력발전소를 대상으로 반경 80km이내에 거주하는 1세 이하의 영아사망률을 조사했던 바, “원자로 폐로 전에 비하여 폐로 후 2년 동안 유아사망률이 급격하게 감소했다.”는 결과를 보고한 것이다. 9개 지역의 영아사망의 평균감소율은 17.3%였지만, 미시간주 빅락포인트(big rock point)원전주변에서는 42.9%나 감소했다. 아울러 영아사망률 감소이유는 “암 • 백혈병 • 이상출산 등이 감소했기 때문”으로 설명했다. 그러나 이 데이터가 NGO가 작성한 것이라는 이유로 미국정부나 원자력업계는 결과를 일체 무시했다.

또한 미국에서는 이미 중요한 한가지 조사결과가 있다. 제이 마틴 굴드와 어네스트 스턴글라스 등이 시행한 유아사망리스크 조사이다. 조사에서는 “1950년 이후의 공식자료를 사용해서, 100마일(160km)이내에 핵시설이 있는 카운티와 없는 카운티에서 연령조정을 시행하여 유방암사망률을 비교하였으며, 핵시설이 있는 카운티에서 유방암 사망률이 유의하게 높았다.”는 조사결과를 제시했다. 이런 조사결과는 세계에 충격을 주었다. 아래 그림에서 “유방암사망률이 높은 곳의 분포”는 “미국의 핵시설 분포”와 거의 일치한다.

▲ 그림 6. 유방암 사망률 분포도

2011년 12월28일 NHK에서 “추적 진상파일 : 저선량피폭 흔들리는 국제기준”이라는 프로그램을 방송했다. 방송 중에 미국의 일리노이주 시카고 근처의 원전주변에서 아이들이 암이나 백혈병이 증가한다는 내용이 있었다. 소아과 의사 조셉 사우어(Joseph R. Sauer)의 보고에 따르면 시카고 근처 블레이드우드(Braidwood)원전과 드레스덴(Dresden)원전 주변에서는 1997년부터 2006년의 10년간에 백혈병이나 뇌종양이 이전 10년간과 비교하여 1.3배 증가했으며, 소아암은 2배 증가했다고 한다. 33) 이후 이들 원전이 2006년까지 10년 이상에 걸쳐 수 백만갤론(1갤론=3.785리터)의 삼중수소를 누출해왔다는 문서를 당국에서 공개한 것이다.34) 뇌 중량의 약 60%는 지방이다. 앞에서 언급한 쥐 실험대로 삼중수소는 지방조직에 포함되기 쉽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소아뇌종양의 증가는 뇌의 지방조직에 삼중수소가 결합되어 발생했을 가능성이 높다.

[독일]

2007년 12월에 독일의 환경부와 연방방사선방호청이 “원전 16기 주변의 41개 시군구의 5세이하 소아암 발병률의 조사연구(KiKK 연구)결과”를 공표했다. 31) 이 결과는 “통상적으로 운전중인 원자력발전소 주변 5km 권역 내에서 소아백혈병이 고율로 발병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독일 환경부는 “총체적으로 원전 주변 5km 이내에서 5세 이하의 소아백혈병발병률이 높다는 점은 인정되지만, 원전에서의 방사선 관측결과에 의하면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 원전으로 인한 것이라면 거의 1,000배의 방사선량이 필요하다. 인과관계를 검증하기 위해 기초적인 연구를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프랑스]

프랑스에서는 “프랑스 방사선 방호원자력 안전연구소(IRSN)의 과학자 연구팀”이 2002년부터 2007년까지 기간에 소아혈액질병의 국가기록을 토대로, 프랑스 국내의 19개소 원자력발전소의 5km권역 내에 거주하는 아동들의 백혈병발생률을 조사했다. 결과는 “원전에서 5km권역 내에 거주하는 15세 이하의 아동들은 백혈병 발병률이 1.9배 높고, 5세미만에서는 2.2배 높았다.”로 밝혀졌다. 그러나 “원인은 불명”이었다. 1997년의 [브리티시 메디칼 저널(BMJ)]에 브장송(Besançon)대학의 비엘교수 등이 프랑스의 코제마사가 경영하는 “라 아그(la Hague)재처리공장 주변에서 소아백혈병이 다발하고, 10km권역 내에서는 소아백혈병 발병률이 프랑스의 평균 2.8배를 나타냈다.”는 역학조사 결과를 공표했다. 그러나 다양한 원인설이 나오고, 결국 “원인이 재처리공장에서의 방사능 때문이라는 증거는 없다.”고 마무리되었다.

[영국]

2002년 3월26일, “영국 세라필드 재처리공장의 남성노동자 피폭과 아동들에게 백혈병과 악성림프종 발병률이 높다는 사실사이에 강한 연관성이 있다.”는 논문이 [인터내셔널 저널 오브 캔서“지에 게재되었다. 당 연구의 결론은 ”세라필드 재처리공장이 있는 컴브리아(Cumbria)지방의 백혈병과 악성림프종 발병률에 비해서 재처리노동자 중 시즈케일지역 밖에 거주하는 노동자의 아동들의 발병리스크는 2배였고, 나아가 공장에서 가까운 시즈케일 지역에서 1950~1991년 사이에 태어난 7세이하의 아동들의 리스크는 15배나 높았다.“고 밝혔다.

이런 모든 현상 즉 핵시설 주변에서의 암 • 백혈병 • 선천성 이상의 증가를 ”삼중수소만으로 인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다른 방사성물질(예를들면 요오드, 세슘, 스트론튬, 플루토늄, 우라늄 등)로 인한 것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삼중수소의 위험성을 과소평가하고, 처음부터 삼중수소라는 원인을 배제하는 것도 ”원인불명“으로 지속해 온 하나의 이유가 될 것이다. 우리는 삼중수소와 다른 방사성물질이나 화학물질과의 복합적인 효과를 포함해서 연구를 진행시켜야 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다.

  1. 결론

필자는 사실 이 글을 후쿠시마 핵발전소에서 방출하는 오염수 중에 포함된 삼중수소의 심각성을 알리기 위해 썼다. 이는 특별히 도쿄 올림픽을 계기로 일본 내 방사능 오염에 대한 문제가 공론화되고, 또 한국 국민들도 우려를 표명한 여론이 증가한 점도 배경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사회에서 일본 후쿠시마 핵발전소의 오염수나 방사능 오염에 대한 여론이 안좋아지는 과정에서도 웬일인지 한국의 담당 행정기관이라 할 수 있는 원자력안전위원회(이하 원안위)에서는 꿀먹은 벙어리였다. 올림픽 때문에 시민단체만이 아니라, 심지어 한국정부나 대한체육회같은 기관에서도 공식적인 우려를 표명하는 과정에서 유독 한국의 원안위 만은 어떤 입장표명도 하지 않았다. 필자는 원안위의 이런 침묵에는 삼중수소 문제만을 놓고 봤을 때, 사실 일본보다는 한국이 훨씬 더 심각하다는 상황을 긁어 부스럼 만들지 않을까 걱정한 배경에 있다고 추정한다. 물론 아오모리현 롯카쇼무라에서 운영 예정인 핵재처리시설이 가동되면 일본의 삼중수소 문제는 단연 지금보다 훨씬 더 심각해질 것이다. 하지만 한국은 현재 핵발전소가 모두 경수로형이고, 또 핵발전소 중에서 삼중수소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캐나다 칸두형의 중수로도 보유하고 있어 방출만을 놓고 본다면 일본보다 단연 심각한 상태이다.

지역 주민들도 주민이지만 월성에서 근무하는 노동자들에게 삼중수소 피폭은 일상적인 일이며, 이들은 늘 소변 검사 등을 통해 삼중수소 피폭을 확인한다. 상당히 높은 수치가 나타나는 노동자도 많아서 여기저기 알아보거나 걱정을 많이 한다. 하지만 평상시에 이들은 대체로 “기준치 이하”라는 회사나 당국자들의 답변만을 들을 뿐이다. 제도적으론 기준치 이하일지 모르나 내부피폭으로 인한 실제 건강영향은 기준치가 없다는 점을 우리는 늘 인식해야 한다. 월성핵발전소의 운영을 중단하면 한국의 삼중수소 배출량은 줄어들 것이다. 그러나 가압수형이라는 특성상 모든 핵발전소를 운영중단하지 않는 한 지속적인 배출은 불가피하다. 삼중수소 문제는 지금까지도 심각했지만 관심이 없었다. 후쿠시마 핵발전소의 오염수 방출문제를 계기로 삼중수소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면, 앞으로는 더욱 더 우리의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 아는 만큼 더 보이기 때문이다.

주석

1.トリチウム汚染水…と放射性同位元素トリチウムについて, 川上義孝, 2016.12.10.에서 재인용

  1. [人間と放射線 : 医療用X線から原発まで], 존 고프맨(John W. Gofman)저, 이마나카테쯔지(今中哲二) 등 번역, 明石書店, 2012년 초판3쇄, 48쪽
  2. “トリチウムの健康被害について”,西尾 正道, 2018. 12.출처 ; http://www.com-info.org/medical.php?ima_20181211_nishio
  3. [UNSCEAR 2016 Report ; ANNEX C BIOLOGICAL EFFECTS OF SELECTED INTERNAL EMITTERS—.TRITIUM], United Nations Scientific Committee on the Effects of Atomic Radiation, 2016년, 320절
  4. [Tritium Hazard Report: Pollution and Radiation Risk from Canadian Nuclear Facilities(삼중수소 유해보고서 ; 캐나다 핵시설에서 오염과 피폭리스크)], 이안페어리(Ian Fairlie), 2007년 6월
  5. “Emerging Issues on Tritium and Low Energy Beta Emitters”, EU Scientific Seminar 2007, Working Party on Research Implications on Health and Safety Standards of the Article 31 Group of experts, 2008년, 10쪽
  6. “Emerging Issues on Tritium and Low Energy Beta Emitters”, 11쪽
  7. “Emerging Issues on Tritium and Low Energy Beta Emitters”, EUROPEAN COMMISSION RADIATION PROTECTION NO 152, EU Scientific Seminar 2007, 23쪽
  8. [放射線被曝の爭点 福島原發事故の健康被害は無いのか], 渡邊悅司/著 遠藤順子/著 山田耕作/著, 綠風出版, 2016년, 91쪽
  9. “국내 원전 삼중수소 방사능 배출 및 환경 거동에 대한 분석 및 고찰”, 한상준,†, 이경진, 염정민, 신대윤, [Journal of Radiation Protection and Research], 2015
  10. 위 이안페어리(Ian Fairlie)의 보고서 11쪽. “When a reactor is in operation, tritium is continuously formed and continuously released to the atmosphere in the form of radioactive water vapour. Contrary to what many people assume, few tritium air emissions are via a stack or chimney; most are via the continuous leakage of tritiated water vapour from machines, pumps, seals, pipes, reactor walls, etc. That is, tritiated water vapour literally oozes out of practically every surface, nook and cranny of the reactor building.”
  11. 출처: https://nonukesnews.kr/451 [탈핵신문] 2014년 12월
  12. 탈핵신문 2016년 5월호 (제41호)
  13. 탈핵신문 2019년 8월(69호)
  14. 참조 ; http://agora-web.jp/archives/2041419.html
  15. [삼중수소의 인체영향에 관한 분석보고서], 한국원자력학회, 대한방사선방어학회, 2016년 7월, 62쪽에서 인용
  16. “원전종사자 삼중수소수 내부피폭 선량평가의 불확도 평가”, 권태은, 한양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2015년, 2쪽
  17. 앞의 “トリチウムの危険性 ―― 汚染水…海洋放出、原発再稼働、再処理工場稼働への動きの中で改めて問われるその健康被害”에서 인용
  18. 원래의 그림은 일본겐넨‘日本原燃’의 홈페이지에 있으며 필자가 한국어로 번역한 것이다.
  19. [ECRR 2010년 보고서], 171쪽
  20. 출처 ; http://egloos.zum.com/nonuke/v/628447, 2011년 11월 23일 야가사키 가츠마(矢ヶ崎克馬) 강연회 자료
  21. [The Angry Genie: One Man’s Walk Through the Nuclear Age], Kyle Z. Morgan, Ken M. Peterson, University of Oklahoma Press, 1999 위의 일본어 번역책 [原子力開発の光と影―核開発者からの証言], 松井 浩 譯, 昭和堂, 2003년, 154쪽
  22. [人間と環境への低レベル放射能の脅威―福島原発放射能汚染を考えるために], ラルフ・グロイブ(Ralph Graeub) 저, アーネスト・スターングラス(Ernest J. Sternglass)서문, 肥田 舜太郎, 竹野内真理(翻訳), あけび書房, 2011년
  23. [放射線被曝の爭点 福島原發事故の健康被害は無いのか], 102쪽
  24. [放射線はなぜわかりにくいのか 放射線の健康への影響,わかっていること,わからないこと], 名取春彦,著, あっぷる出版社, 2013년 218쪽
  25. [ECRR 2010년 보고서], 197쪽
  26. 위 [人間と放射線 : 医療用X線から原発まで], 51쪽
  27. [放射線被曝の爭点 福島原發事故の健康被害は無いのか(방사선피폭의 쟁점, 후쿠시마원전사고의 건강피해는 없는 가)], 渡邊悅司/著 遠藤順子/著 山田耕作/著, 綠風出版, 2016년. 이 책에서는 방사선피폭의 현대쟁점을 4가지로 제시한다. 1) 핫파티클(방사성미립자)문제, 2) 페트카우 효과, 3) 후쿠시마원전사고의 과소평가 문제, 4) 삼중수소 문제이다.
  28. “低線量被ばくの問題, 公的な放射線安全概念の不正確さ”, Alexey Yablokov, Tokyo, Japan, December 14, 2012
  29. [The Angry Genie: One Man’s Walk Through the Nuclear Age], Kyle Z. Morgan, Ken M. Peterson, University of Oklahoma Press, 1999 위의 일본어 번역책 [原子力開発の光と影―核開発者からの証言], 松井 浩 譯, 昭和堂, 2003년, 154~155쪽
  30. [The Angry Genie: One Man’s Walk Through the Nuclear Age], Kyle Z. Morgan, Ken M. Peterson, University of Oklahoma Press, 1999. 일본어 번역책 [原子力開発の光と影―核開発者からの証言], 松井 浩 譯, 昭和堂, 2003년, 154~155쪽
  31. [2007년 국제방사선방호위원회 권고문], 역주 이재기, 대한방사선방어학회, 2009년, 313쪽
  32. 위 권고문 325쪽
  33. 외국의 피해사례는 [放射線被曝の爭点, 福島原發事故の健康被害は無いのか]의 104~110쪽에 서술한 내용이 깔끔하게 정리된 내용이라 판단해서 이를 번역하여 싣는다.

건강미디어 mediahealth2015@gmail.com

원문보기>> http://www.mediahealth.co.kr/news/articleView.html?idxno=675

[기사] 작년 세계 신규 발전설비량의 72%가 재생에너지(이투뉴스)

작년 세계 신규 발전설비량의 72%가 재생에너지

조민영 기자

2020.04.13

국제재생에너지기구, 재생에너지 신규용량 176GW 추산
올해는 코로나19로 ‘재생에너지 공급망 확대’ 방해 징후

Pixabay로부터 입수된 Oimheidi님의 이미지 입니다.

[이투뉴스] 지난해 새로 설치된 발전설비 용량의 4분의 3은(72%) 재생에너지로 나타났다. 역대 최고기록이다. 작년 재생에너지 신규량은 176GW로 전년보다 소폭 줄었지만, 화석에너지 설비가 줄면서 비중이 올라간 것이다.

재생에너지 전력생산량도 증가해 태양광, 풍력, 기타 녹색기술들이 세계 전력의 3분의 1 이상을 생산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아울러 유럽과 미국에서 화석연료 발전량은 가파른 하락세를 보이고 있으며, 지난해 신규건설 건수보다 폐쇄 건수가 더 많았다. 반면 아시아와 중동, 아프리카 지역에서 석탄과 가스 발전소 건설은 꾸준히 늘고 있다.

국제재생에너지기구(IRENA)는 지난해 신규 재생에너지 용량 증가세가 전년보다 다소 주춤해졌다고 최근 밝혔다. 2018년 179GW에서 2019년 176GW로 추가 용량이 다소 줄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규 화석연료 추가 발전량도 함께 하락, 재생에너지 발전시설이 신설 에너지 용량의 72%를 차지했다. 재생에너지는 화석연료시설보다 2.6배 성장한 것이다.

재생에너지는 2019년 7.6% 증가했으며, 증가량의 54%가 아시아 지역이다. 또 증가량의 90%를 태양광(98GW)과 풍력(60GW)이 차지했다. 심지어 세계 원유 매장의 절반을 보유하고 있는 중동지역에서 지난해 건설된 신규 발전시설 용량의 26%가 재생에너지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신규 태양광 발전은 전체 추가 용량의 55%를 차지했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중국과 인도, 일본, 베트남이 재생에너지 발전시설 설치를 주도하고 있다. 미국과 호주, 스페인, 독일, 우크라이나 등도 재생에너지 추가를 적극 진행하고 있다.

풍력 발전은 전체 추가 용량의 34%를 차지했다. 이 가운데 절반이 중국에서 설치됐으며 미국이 그 뒤를 따랐다. 전세계 풍력 설치 용량이 태양광 보다 조금 앞서 있으며, 95%는 육상용 풍력이다.

수력과 바이오에너지, 지열, 해양에너지 등은 모두 전년대비 완만한 상승 곡선을 보였다. 터키와 인도네시아, 케냐에서 지하 바위에서 열을 채취하는 지열에너지 발전량이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IRENA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지난 10년간 약 3조 달러가 재생에너지에 투자됐다. 그러나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서 2030년까지 연간 투자액이 현재의 두 배 정도 늘어야 한다고 IRENA는 추산했다.

프란체스코 라 카메라 IRENA 사무총장은 “지속가능한 성장과 기후 변화에 발맞춘 세계 에너지 방향성을 잡기 위해선 더 많은 투자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금과 같은 어려운 시기를 겪으며 우리 경제에 탄력성을 갖추는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고 있다”고 덧붙였다.

카메라 사무총장은 코로나19에 대응하기 위해 각국 정부들이 계획한 대규모 지출이 화석연료보다는 녹색 사업에 지원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오늘과 같은 위기에 대응해 정부들이 단기적인 해결책에 중점을 두기 쉽지만, 장기적인 사업을 간과해서는 안된다”고 지적하고, “코로나19는 주춤하는 사이 상당한 경제적 여파를 초래한다는 것을 경험하게 했다”고 지적했다.

세계 원유 시장은 코로나19로 인한 지역사회 봉쇄로 인한 수요 하락과 사우디아라비아, 러시아, 미국 등 산유국들 간의 가격 전쟁으로 혼란에 빠져있다.

카메라 사무총장은 “재생에너지는 전력시장과 소비자들의 변화로부터 보호해주는 가장 비용효과적인 신 전력원”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태양광과 풍력은 세계 3분의 2 지역에서 가장 저렴한 전력원으로 부상했다.

그러나 올해 재생에너지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고 가 보도했다. 코로나19 확산과 원유가 하락이 재생에너지 투자를 위축시킬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면서다. 이미 코로나19가 재생에너지 공급망에 방해가 되고 있는 징후들이 발견되고 있다.

<우드 맥킨지>는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한 봉쇄 조치로 인도에서 3GW의 풍력과 태양광 설치가 연기될 것으로 전망했다. 인도에서 태양광산업이 중국산 수입에 크게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구촌 풍력 위원회도 풍력의 향후 5년 성장 전망치가 코로나 19로 인한 공급 지연으로 인해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윈드유럽은 코로나19로 큰 타격을 입은 스페인과 이탈리아에서 18개 제조시설이 문을 닫았으나, 다행히 유럽 대부분의 풍력 터빈 공장들은 가동 중이라고 밝혔다.

조민영 기자 myjo@e2news.com

원문보기>> http://www.e2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214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