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핵사랑방] 삼척/영덕 탈핵운동이야기(내용전문)

성원기 (강원대 교수)

삼척의 탈핵의 역사를 말씀드리려고 하니까 마음이 좀 울컥합니다. 그렇게 애써서 싸워서 삼척만 싸운 것이 아니죠. 전국민이 다함께 싸워서 탈핵을 이루어놨는데, 탈핵이 하루아침에 부정되는 현재 상황을 맞이하면서 이상황에서 우리가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하는데요. 따지고 보면 삼척이 핵발전소 반대 투쟁을 했던 것이 이명박 정부에서 시작을 했고, 박근혜 정부를 거쳐서 10년을 싸움을 했고 문재인 정부에서 성과가 있어서 탈핵선언까지 왔는데요. 우리가 짧은 호흡으로 볼 것이 아니라 길게 보면 탈핵은 됩니다. 그래서 잠깐 또 뒷걸음 치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실망할 일도 아니고 그렇다고 봅니다.

삼척은 어떻게 해서 핵발전소의 악연의 현장이 되느냐 하는 것을 보게 되면 1982년입니다. 그러니까 잘 아시는 것처럼 전두환 5공화국 그때는 주민들의 동의는 지금도 안 받고 있지만 시장의 유치 신청 이런 절차도 없었습니다. 그냥 일방적으로 1982년도에 삼척에 핵발전소를 짓겠다. 그것을 예정구역 고시라고 합니다. 예정 구역 고시를 1982년도 했고요. 그러니까 그때 뭐가 뭔지 몰랐죠. 그런데 10년 정도 지나가지고 1992년이 되니까 보통 이제 하고 나서 한 10년 정도 지나고 나면 공사를 시작을 하려고 하거든요. 근데 이제 공사를 시작을 하려고 하니까 삼척에서 처음에 반대 운동에 나선 분들은 무슨 탈핵활동가나 환경운동가가 아닙니다. 바로 이제 지역에 살고 있는 주민들 특히 이제 근덕면 농민회, 근덕면이 이제 바로 이제 울진핵 발전소하고 아주 가까이 있으니까 삼척이 경계를 같이 하고 있어서 울진에 핵발전소가 있는 지역에 지역이 얼마나 피폐해지는가 하는 거를 늘 보고 이제 안 거예요. 그런데 가서 보면 이웃 주민들끼리니까 다 얘기를 듣잖아요. 한 집 건너 한 집이 암 환자고 나오는 농작물도 이제 제대로 팔 수도 없고 이러한 상황이고 지역에 아무리 집을 지어도 다 집이 비고 이렇게 피폐해지고 어쨌든 황폐해지는 거를 옆에서 봤기 때문에 아 이게 발전하는 게 아니라 완전히 우리 지역이 완전히 공동화되고 망가지는구나 하는 걸 안 거예요.

그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역 주민들이 그렇게 현실을 파악을 했다는 거죠.

그렇게 반핵 운동이 시작이 된 거예요. 10년 지난 92년도에 그렇게 실제로 건설하려고 하는 움직임이 나오니까 바로 농민회장단들이 주축이 돼가지고 야 이거는 막아야 된다 그러니까 고향을 지키는 마음이죠. 그러니까 애향의 열정이다. 이렇게 나중에 기념비에서 표시를 했는데 어쨌든 살신의 각오, 애향의 열정으로 아주 똘똘 뭉칩니다. 그렇게 해서 반대 투쟁을 이끌었는데 그때 놀라운 건 1992년이 바로 우리나라 환경운동연합 아시죠 환경운동연합이 막 발족해 시작할 때예요. 그때 활동가 한 분을 모셔다가 알아야 반대 운동을 할 거 아니냐 그래서 한 달 동안 기숙을 해가면서 공부를 합니다. 이제 공부를 해보니까 할수록 이걸 못 막으면 고향을 잃어버리겠구나. 사람이 살 수 없는 땅이 돼버리는구나. 이걸 완전히 알고서 투쟁에 돌입을 합니다. 그래서 무려 92년도부터 98년까지 6년간 항쟁을 보내요. 그 당시 투쟁 방법이라는 건 지금하고 다르지 않아요. 시위, 집회, 그때 도로 봉쇄를 자주 했어요. 타이어 태우면서 7번 국도를 봉쇄하고 할 수 있는 게 뭐 있겠어요. 삭발도 하고 혈서도 집회도 하고 그렇게 하면서 어쨌든 상여도 끌고 그러면서 6년간 항쟁했는데 결국 마지막에 98년도 가니까 지역 주민들도 더 이상 끝내지 않으면 더 이상 우리가 이대로 갈 수는 없다고 해서 버스 수십대를 대절해가지고 어디로 가느냐 하면 모든 결정은 서울에서 이루어지니까 광화문 청사 앞으로 간 거예요.

청사 앞에 가가지고 바로 거기서 이제 우리가 못 살겠다. 그런데 삼척도 이제 이렇게 바닷가잖아요. 한다고 하면 합니다. 그러니까 이제 가스통을 갖다가 LPG가스통을 차트렁크에다 잔뜩 싣고 간 거예요. 광화문에서 정부 청사 앞에서 이걸 터뜨리겠다는 하니까 정부 당국자도 큰일 날 일이 벌어질 것 같으니까 나와 가지고 설득을 합니다.

정부 일이라고 하는 게 이렇게 한다고 당장 답을 줄 수는 없으니까 잠깐만 좀 내려가서 우리를 믿고 정부를 믿고 기다려 달라 그때가 김대중 정부입니다. 전두환 때 시작을 해가지고 나중에 노태우 그다음에 김영삼을 거쳐서 나중에 98년에 김대중 정부에서 대통령이 결단을 내린 거죠. 그렇게 해서 98년도에 삼척이 1차 핵발전소가 백지화되는 역사적인 결과를 만들어내고 그야말로 주민 투쟁으로 이룬 겁니다. 그렇게 하고 백지화 기념탑을 세웠는데, 그것이 지금 세계 유일하다고 하는 핵발전소 100주년 기념탑입니다. 기념비도 세우고 그렇게 1차 항쟁이 끝났는데 2005년도가 되니까 이제 부안 핵폐기장에서 전국으로다가 다시 이제 핵폐기장 후보지를 구해서 짓겠다고 했을 때 삼척도 마찬가지로 신청을 하려고 지역에서 또 찬성하는 사람들이 했는데, 그것을 어디 가서 했냐 하면 시의회에서 그거를 통과시켜야 시장이 주민투표에 붙일 수 있는데 시의회에서 1천여 명이 둘러싸서 압박을 해가지고 마침내 부결시켰어요. 그렇게 해서 두 번째 싸움이 끝났는데 2010년이 됩니다. 이명박 때인데 이명박이 다시 핵발전소 진흥정책으로 많이 짓는 것이 이제 해야 될 일이다 그래서 그야말로 거꾸로 가는 정책을 펼치게 되죠. 그렇게 해서 두 번이나 핵을 막아낸 삼척에 당시에 김대수 시장이 자신의 어쨌든 범죄를 덮기 위해 신청을 합니다.

신청을 하게 되는데 그렇게 해서 유치 신청을 했다고 하는 것 자체가 사실은 있을 수가 없는 게 왜냐하면 정부가 백지화를 시킨 것에 다시 정부가 유치 신청서를 받았다는 자체가 우리가 정부의 정책의 일관적인 일관성으로 봤을 때는 될 수가 없는 거죠.

그래서 2010년도에 시작이 됐고 그 핵사업의 반대 투쟁위원회가 박홍표 신부님께서 만들어져서 시작돼서 그 싸움이 몇 년이 걸렸냐면 10년이 걸렸습니다. 2010년부터 시작을 해서 2017년에 정부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이 탈핵을 선언했지만 최종적으로 백지화된 것은 2019년이니까 저는 그 공간에서 2012년에 핵발전소 반대 투쟁에 제가 이제 뛰어들게 되죠. 왜냐하면 2011년도 잘 아시는 것처럼 후쿠시마 핵사고가 나면서, 핵발전소라고 하는 것의 실체를 한 번에 깨닫고 나니까 이제 알고 나면 가만히 있을 수가 없는 거죠. 그렇게 해서 핵산업에 뛰어들었는데 삼척핵발전소 반대 투쟁에서 초기에 했던 건 뭐냐 하면 시장이 주민 투표를 거치지 않고 신청했기 때문에 이거는 무효다 그러니까 주민들한테 찬반의사를 물어라 주민 투표를 실시하라 이걸 끊임없이 요구했는데 당시 시장이 당연히 거부하죠.

그래서 그러면 우리 시장 끌어내리고 새로 뽑힌 시장을 통해서 우리가 주민 투표를 해야 되겠다. 그래서 시장 주민 소환 운동에 들어갔는데 그 운동이 투표까지 갔어요. 굉장한 성과입니다. 투표가 투표율이 저조해가지고 깡패들 동원하고 어쩌고 해서 투표를 못 나오는 험악한 분위기를 만들어져 갖고 이제 투표율이 25.9%. 33%가 안 돼가지고 열지를 못했는데 어쨌든 그러한 국면에서 주민 소환투표는 실패했지만 나중에 그것이 선거 혁명의 밑거름이 된거죠.

그리고 이제 2012년도가 끝나니까 할 수 있는 게 없는 거예요. 2013년도에 그때 이제 바로 탈핵희망국토도보순례가 시작이 됩니다. 삼척에서 이제 핵반투에서 고리 핵발전소로 가가지고 고리 발전소도 이제 걷기 시작을 하면서 전국의 수많은 동지들이 이제 같이 탈핵희망국토도보순례에 함께하면서 탈핵의 저변이 확대되는 상황으로 가는 거죠. 우리나라 한 바퀴 돌고 온 깃발을 가지고 2014년 6.4지방선거가 있는데 삼척에 들어와서 그 깃발을 들고 3개월을 돌았어요.

그래서 처음에 7대 3으로 열악했던 반핵 후보가 3개월 후에 6.4지방선거에서 62.4%의 압도적인 승리를 뒤집어가지고 그렇게 해서 선거 혁명을 이룹니다.

반핵 시장을 당선시키고 그 반핵 시장이 공약을 지켜서 3개월 만에 바로 주민투표를 실시해서 68% 투표율의 85%의 반대를 세상에 알립니다. 실질적으로 삼척은 핵발전소에서부터 벗어났습니다. 박근혜 정부가 삼척을 포기했습니다. 그런데 그걸로 끝난 게 아니라 국가 정책이 변해야 바뀌어야 탄핵이 되는 거니까 백지화되는거니까 그때 깨달은 게 한 도시가 반핵 시장을 뽑으면 반핵 도시가 된다. 그러면 나라가 바뀌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대통령을 탄핵 대통령을 뽑아야겠구나 결국 유권자 운동으로 확대되고 유권자 운동을 실질적으로 전국에 전파합니다. 그 뒤로 탈핵희망국토도보순례가 4년을 더 돕니다. 2014, 2015, 2016, 2017년 2월까지 그렇게 해서 촛불 혁명과 맞물려서 탈핵 대통령을 선출하고 실질적으로 삼척이 이제 백지화가 되는 탈핵이 선고되어 탈핵으로 가는 그러한 역사가 이제 이루어집니다.

우리가 여기서 보게 되면 한 번에 끝나지 않는다는 거죠. 그러나 끝날 때까지 끊임없이 우리가 투쟁을 해서 목표가 달성될 때까지 투쟁하면 우리가 탈핵을 이룰 수 있다. 탈핵도 여전히 대한민국 독립운동과 마찬가지로 핵으로부터의 독립운동인데 지치지 말고 끝까지 가자. 언제까지? 이길 때까지 끝날 때까지. 지금도 여전히 탈핵 운동 기간 중입니다. 우리는 끝까지 가서 핵으로부터 안전한 세상을 우리 후손들에게 물려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그 길에 끝까지 삼척이 함께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이병환(영덕반핵투위 공동위원장)

군수나 단체장이 반대할 때하고 일반인이 반대에 앞장설 때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일단 어디든 하면은 단체장이 앞장서도록 해야 돼요. 처음에 1차 89년도 이때하고 2차라든가 이럴 때는 전부 다 거의 군수가 앞장서다시피 했어요. 특히 2차 군민궐기대회 김우연 영덕군수가 거의 앞장을 섰습니다. 이 당시까지만 해도 저같은 사람은 전면에 나설 필요가 없었어요.

그리고 3차부터는 이제 군수가 그 당시에 돈 1300만 원 받은 거 가지고 구속이 돼 버립니다. 당시 이제 군수 출마했던 김병목이라는 사람이가 서울 재경 향우회에 가가지고 뭐라 그랬나 그러면은 내가 군수를 하고 싶은데 군수가 당선되자면 군수로 당선되자면 반드시 핵폐기장을 영덕에 유치한다는 그걸 걸지 않고는 내가 방법이 없다.

그래서 고향이 풍전 등화에 놓인다 한들 어떻게 보면 한 사람의 인생을 막는 것 같아 재경 향우회에서 서울에서 딱 멈춰버리니까 각 도시에 향우회에서 전혀 지방에 도움을 안 줘요. 그런 어려운 점이 있었습니다. 2005년도에는 제가 단식을 이제 한 8일 해가지고 이렇게 해서 거의 막아내는 겁니다. 단체를 만드려고 하니까 어차피 선동도 좀 해야 되는 거 아닙니까. 그래가지고 비밀 단체로 500인 결사로 만들어 놓고 사람은 사실 500인까지는 안 됐고요. 일단 전면에 나설 수 없는 거래요 사람들이. 군수가 당선돼 버리고 나니까 그게 핵폐기장 유치하기 위한 당선이다보니까 이 정부에서 또 얼마 밀어줍니까. 그리고 당시에 노무현 대통령이 있으니까 아마도 대부분은 노무현 대통령을 상당히 존경하는 걸로 알고 있어요. 그런데 노무현 대통령이 참 아쉽게도 핵폐기장 만드는데 최고로 앞장선 분입니다. 지금 현재의 핵발전소가 번창 일로에 갈 수 있도록 한 장본인이 바로 핵 폐기장을 만들어준 노무현 대통령이 돼버렸어요. 저는 그걸 지도자들이 핵마피아의 아류가 되는 거라고 표현을 합니다.

누가 정권을 잡든 간에 이 핵 마피아의 아류로 변하는 것을 핵에 대한 집착으로 그걸 치적을 이루려고 하는 것을 막아야 돼요 그런데 우리는 그걸 못했어요. 그래서 노무현 대통령이 핵 폐기장 만들어줘 가지고 지금 정권 잡는 윤석열 정권이 핵발전소를 더욱더 확대하겠다고 기치를 걸고 있을 수 있는 그런 기반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영덕 신규핵발전소 주민 설명회 절차 안 지켜 파행’ 이러는데. 계획적으로 무슨 짓을 했나 그러면은 찬성 측에서 소화기를 가지고 우리가 단상을 점거하고 있으니까 뿌려가지고 전부 다 해산시키려고 했습니다. 다 지역 후배잖아요. 그래서 저한테 그러더라고요. 후배 한 사람이 와가지고 그 형님이 이거 좀 자리 좀 피해주면 안 됩니까 이러는 걸 제가 그랬어요. 내가 여기에 대표인데 내가 자리를 어떻게 피하느냐 안 된다 1분도 안 돼가지고 저거 소화기를 쏘는데요. 전부 다 옷 가지고 코 틀어막고 그런 웃지 못할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리고 주민투표를 위해서 많은 분들이 탈핵버스를 타고 참석했습니다. 사진 중앙 앞에는 원불교 교무이십니다. 이분이 굉장히 열심히 하셨어요.

다음은 삼척에서 주민투표를 하는 바람에 영덕이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외지에서 많은 지원을 해줬었고요. 주민투표가 어느정도 무르익어 가니까 한수원이 투표를 막기 위해서 의료봉사를 실시하였습니다. 그리고 찬반 추진위원회가 결성됩니다. 출범 기자회견을 하는 사진이고요. 2015년 6월 8일 그러니까 사실 활동하는 인원이 얼마 안 됐습니다. 재정적으로 많이 도움을 주신 분이 저희들이 부르기는 최도사라 하는데 최태규 씨고요. 이분입니다. 그리고 이제 박혜령 씨가 이제 이 사회를 맡고 있고요. 이 날 외지에서 온 분들도 계시고 저래가지고 제가 이게 참 살다 보니까는 큰절하는 날이라요. 그래가지고 오신 분들한테 그랬어요. 영덕이 최전선이 되었으니까 적극 도와달라는 거 그걸 이야기 했었던 거고요. 그다음에 이거 찬반 주민투표를 정당한 것이라고 서명받는 겁니다. 그리고 이건 6월 17일이고 영덕 수요 촛불 집회, 영덕 로터리에서 했는데 그 삼평리 주민들이 왔습니다. 저희들도 다른 데 외지의 지원도 같습니다. 뭡니까 송전 철탑 반대한테 가고 이러니까 사람이 그렇잖아요. 그리고 3층 대회의실에서 영덕소통위원회가 결성이 돼서 산자부가 와서 영덕핵발전소에 대한 설명을 하려고 하면 그 과정에서 이제 우리가 회원들이 들어가려 하니까 회원들을 못 들어오게 하다 보니까 이런 불상사가 생겼어요. 박혜령 씨가 열을 많이 받아가지고 또 쇼크를 받아가지고 쓰러졌습니다.

그다음에 급기야는 한국수력원자력주식회사가 영덕에 사무실을 내게 됩니다. 10월 20일 산업부와 한수원이 주민 입장을 불허하면서 기자간담회를 개최했는데, 우리가 항의하고 난리했어요.

이 사람은 군위원 하던 사람인데, 돈이 아쉬웠던지 찬성측에 전면에 나서서 나왔습니다. 그사람들 유인물과 우리 홍보물도 바꿔보고 그랬습니다. 이것은 우리 궐기대회하는 날인데 많은 사람이 참석해서 그래도 지역 주민들도 이때는 상당히 많이 왔습니다. 그래서 우리 걷고싶은 거리에 들어가 있습니다. 정중앙에 핵발전소를 이제 지겠다는 계획이었고, 영덕군이 25km 안에 다 싹 다 들어갑니다. 핵발전소가 들어서면요. 그래서 이 사람들은 핵발전소 두 개를 뒤로 해서 에너지 실크로드를 만든다 이래 선전을 했습니다. 그리고 영덕에 이희진 군수가 또 원전 찬반 투표 반대 해버리니까 옛날에 핵폐기장 반대할 때의 세력들이 동참을 많이 못해요. 여기서 이제 당근을 제시를 많이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현직 지금도 군의원 하고 있는데 이런 사람들은 당시에 2004년 2005년 당시에 공동 대표였다해서 그래서, 그 당시에 과장급이 많다보니까 23억 지원 받아요. 23억 지원받으니까 핵발전소 반대할 필요가 뭐 있습니까. 제가 한번 가니까요 이 사람은 왜 반대하노 합니다. 나는 회장님 소리 듣는다 이래요.

그러니까 이 핵발전소가 들어오면 지역에 엄청난 퇴보가 일어나는 겁니다. 그리고 나라에도 장관들 있지 않습니까. 행정자치부 장관하고 산업통상부 장관 이런 사람들이가 집집마다 이걸 보내요. 원전을 반대하는 단체에 추진되는 법적 근거 없는 잘못된 투표에 동조하지 않게 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이게 있을 수 없는 일 아닙니까.

그래서 우리가 주민 투표 방해 및 허위사실 유포 행위 검찰 고소 이제 했다는 기자 회견이고요. 찬성 측에서는 이런 탑차 해가지고 온갖 짓을 다 했어요. 탑차 만들어 가지고요. 그리고 우리도 이제 정의당에서 긴급 방송 탑차를 지원해 줬습니다. 그러니까 많은 도움이 있어야 됩니다. 혼자 이룰 수는 없잖아요. 문제는 국회의원이 문제입니다. 강석호씨인데 이 사람 친구가 석산을 90억에 70만평을 샀어요. 그러면 핵발전소를 하게 되면 발파를 못하기 때문에 70만 평을 다 사두게 되면 1400억이라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14배가 되는 장사지요. 그래서 핵 발전 반대하는 친구들도 그랬어요. 내가 그 형편 되면 나도 찬성이다. 대부분 그런 시각으로 얘기를 할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이 애드블룸까지 찬성단체에서 띄우고요. 이제 우리가 투표하는 장면을 도찰하는 저겁니다. 투표 누가 하러 오나 싶어가지고 그걸 이제 감시하는 사람들입니다. 한수원에서 다 보낸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제 투표하는 텐트 있는데 한수원에서 텐트를 또 이렇게 쳤어요.

그리고 이분 문규현 신부님 어디 지원하셔가지고 이제 주민투표할 때 하신 거고요. 그다음에 이건 이제 주민투표 못하게 하려고 목욕 보내주는 것입니다. 한수원에서요. 주민들 싣고 대거 목욕탕으로 가는 거예요.

그다음에 이것은 경찰의 병곡2투표소 앞에서 차량 블랙박스로 투표하러 오는 사람들 촬영하는 것을 보니까 경찰 불러가지고 했던 거고요. 그러면 이제 투표는 다 끝나고 이제 투표함이 이제 서서히 도착합니다. 영덕 단위농협 강당에서 투표함을 도착하길 기다리고 있고요. 투표 결과는 총 99.4%가 참여를 했고 91.7%가 핵발전소 반대를 했고요. 찬성이 7.7%고 무효가 0.0% 그렇게 나왔습니다.

11월 11일 11시 주민투표 성공 기자회견 영덕 3층 대회의실. 주민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러니까 영덕군청 3층 대회의실에서 또 하라고 또 해주네요.

그래가지고 이제 탈핵 신문에 났던 겁니다. 주민투표 결과 거부 규탄 및 심판 결의 기자회견을 하고 있고요. 이제 주민투표 끝나고도 우리가 계속해야 되는 거 아닙니까. 그래가지고 이제 수요 집회를 계속 이어나갔어요. 주민투표 후 12월 5일 이제 영덕에서 하는 거고요. 이때까지가 거의 마지막 단계가 됐어요. 그 수요집회는 흐지부지 되더라고요.

이때부터는 이제 2019년부터는 제가 혼자 다니면서 1인 시위를 해야 됐어요. 군청앞에서요. 혼자라도 일당백 하니까 그래가지고 친구가 또 하나 나왔더라고요. 친구야 같이 좀 서자 이래가지고 군대 동기입니다.

드디어 고시철회가 되는데 작년 4월 12일입니다. 모든 것은 제가 산업부라든가 서류를 국민신문고로 넣어가지고 답변을 받았습니다. 일단은 우리가 핵발전소를 제가 반대를 해보니까 핵마피아의 아류가 더 무서워요. 그러니까 이제 제가 핵 마피아의 아류라고 보는 사람들은 특히 이제 노무현 대통령이 최고 선두 주자입니다. 왜그러냐면 이분이 핵 폐기장을 제가 봉화마을에 가니까 체결 1순위를 핵폐기장 만든 걸로 해놨더라니까요.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도 핵 마피아의 아류로 변할 수밖에 없는 것이 노무현 대통령을 뛰어넘지 못한 인물입니다. 앞으로는 우리가 도움을 받아가지고 정권이 재창출되면 핵 마피아의 아류화를 막아야 되고요. 그다음에 핵 친화적인 교과서를 수정해야 됩니다. 이 교과서 그대로 두고는 국민이 전부 다 친환경 에너지라고 하는데 말이 안 됩니다. 그다음에 핵발전소 사고 시 무한 책임으로 해야 되고요. 박정희 시절에 처음에는 핵발전소 사고 무한 책임을 했습니다. 그게 나중에 변했고요. 핵폐기물을 바다로 희석해서 못 버리게 해야 됩니다. 우리도 기준치에 1억 배. 사실 일본 사고 나기 전에는 우리만큼 핵폐기물 많이 버리는 데가 없어요. 엉망으로 지어서 핵폐기물이 나오면 물을 섞어서 바다로 다 보내버렸습니다. 그다음에 규제와 진흥을 좀 분리해야 돼요. 규제는 높은 데서 해야 되고 진흥은 낮은 데서 해야 되는데 이게 지금 안 되고 있고요. 그 다음에 핵연료에 세금을 부과해야 됩니다. 일본은 지금 현재 부과를 하고 있거든요. 핵연료 가액의 10~13%를 부과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스페인 같은 데도 핵연료라든가 이런 데다가 세금 많이 하니까 세금 나가면 수명 연장해야 못합니다.

일단 지역 현안을 해결하는 머리가 있어야 하고, 재정이 확보돼야 합니다. 재정은 일단 현 상임대표이신 최태규 씨, 저 혼자 자꾸 나와 얘기하면 이분들 섭섭해 할까봐 싶어가 지금 최 도사님 최태규 씨 이분하고 그다음에 박혜령 씨를 위시하여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박혜령 씨는 돈으로 회유된 사람들에 의해 외지인이라는 이유로 쫒겨나게 되었습니다. 한수원에서 자꾸 부추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심지어 고발소동도 났습니다.

영덕에 핵에 대한 반대 세력이 엄청났습니다. 나가 있는 인사들까지 와 가지고 데모 같이 해주고 이랬는데 노무현 대통령이 딱 되고 나니까 재야 인사들이 전부 다 정부 편에 서는거에요. 이 반대하는 사람이 없었어요. 군수를 구속시키고 그랬어요. 제가 김우영 군수와는 사이가 나빴습니다. 그런데 그 김우영 군수의 조부가 친일파 했어요. 그 당시까지는 독립이 된다고 생각을 못한 거라요. 그래 열심히 처리를 했데요.

그리고 김우영 군수가 뭐라 그랬나 사석에서. 내가 핵폐기장을 찬성할 수도 있다. 현재는 내가 그걸 찬성만 해주면 국회의원도 할 수 있고 다 할 수 있는데 후세인들이 뭐라 하겠나 이거래요. 이 문제점이 발생했을 때 우리 할배는 독립이 될 줄 모르고 친일을 계속 했다. 그런데 나도 할배의 전처를 밟아가면 안 되지 않냐고 그런 얘기를 했을 거 그러니까 그런 거는 참고를 해볼 만해요.

(이원영)

네 감사합니다.

성원기 교수님. 심척에서는 원전 마피아에 의한 이해관계 그런 일이 었었나요?

(성원기)

삼척에서는 현재 시장이 현재 권력이잖아요. 시장이 모든 걸 다 쥐고 있잖아요. 그러니까 주민사이의 이런 정도가 아니라 시정부와 싸운 겁니다. 개인간의 관계보다는 시장권력과 싸운 것입니다. 시장을 끌어내리려고 주민소환 투표를 하기 위해서 찬성 서명부를 받아야 하거든요. 시장 소환에 찬성한다고 하는 서명을 받는데 그걸 몰래 했어야 하니까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그런 단계에서 수외민들이 겪은 고충은 말할 수 없지요.

사실 삼척 반핵운동에서 주민소환운동이 핵심입니다. 2012년에 있었습니다. 15%이상 유효한 찬성 서명을 받아서 해야 하는데, 수외민들이 찬성서명을 받아오면 철회를 시켰습니다. 나중에는 철회시키는 명수가 찬성을 받아오는 숫자를 능가했습니다. 그래서 시장이 간부회의에서 시직원 1명당 몇장씩을 가져오라고 할당을 합니다. 상황실에 있어보면 주민들이 울면서 철회해달라고 자기 아들이 이것 때문에 사업을, 납품을 못하게 되었다고 이야기를 하곤 했습니다. 한달정도 남은 시점에서 전격적으로 더 서명을 받다보면 다 빼간다고 해서 어느날 선관위에서 접수를 바로 시켜버렸습니다. 그렇게 해서 15%를 채웠습니다. 요건을 충족시켜서 선관위에서 주민소환투표까지 들어간 것입니다.

삼척처럼 무소불위 공화국의 권력을 누렸던 그곳에서 해냈다는 것은 모든걸 걸고 했기 때문에 일제 치하에서 독립운동 한 것처럼 했습니다. 결국 그것이 반핵운동에서 최고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주민소환투표를 하는데 깡패들이 와서 주민투표장에 와서 막았습니다. 공무원들이 와서 카메라로 누가 투표하는지 찍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때 투표를 못했던 사람들이 2년뒤에 지방선거에서 반핵후보에서 투표함으로서 주민소환투표때 투표를 못한 한을 풀었습니다.

우리가 찬성서명부를 받으면 신고하면 3만원씩 준다는 현상금 현수막도 걸렸습니다. 삼척에서 교수들이 삼척핵발전소를 반대한다는 교수 시국선언을 했는데 교수가 107명을 서명해서 기자회견을 하는걸 시장권력이 엎었습니다. 반대하는 사람들이 대학 안에서 기자회견장을 엎었습니다. 무소불위의 상황이 2012년 삼척의 상황이었습니다. 집회, 투표, 시위, 순례 모두 다 필요했습니다. 끝까지 밀어붙이는 동력이 있어야 되는 것이었습니다.

(이원영)

멋진 시나리오를 만들어서 세계적 히트작이 되도록 영화로 만들어야 겠습니다. 이야기는 상당히 재미있는 드라마틱한 요소가 많았던 것 같아요.

이제 이 두 분 투쟁을 해 오신 걸 보면 이병환 선생님은 단식 투쟁을 하셨고 성원기 교수님은 국토 순례를 해가지고 몸을 갖다가 이렇게 부지런히 참 헌신적으로 이렇게 행동을 해오신 그것이 사실 운동의 중요한 기폭제가 되지 않았나 이렇게 생각이 되는데 주민소환 운동 삼척 이야기 계속 좀 더 해보겠습니다.

주민 소환 운동을 하는 과정에 있어서 그 핵심적인 멤버들, 혼자서는 안 하셨을 테고 핵심적인 멤버들 구성원들의 결속력이라고 할까 에피소드라고 할까 이것을 이야기해 줄 수 있는 혹시 대목이 있습니까?

(성원기)

주민소환 운동을 잘 보게 되면요. 박홍표 신부님이 삼척시 도계읍인데 도계본당의 주임 신부님으로 계셨어요. 그러니까 박홍표 신부님이 삼척 출신입니다. 고향이니까 더군다나 애착이 있는 거고 그런데 거기에 보다 그 계실 때 먼저는 근덕면에서 농민회가 주축이 돼서 이제 첫 번째 핵싸움을 이끌었다고 하면은 이제 세 번째 싸움에서는 시장 권력과 바로 이제 대항을 해야 되니까 시장 권력에 대항해서 그것을 끝까지 대표로서 막아내 갈 수 있는 대표를 못 구했던 거예요. 시민들 중에서 일반 시민들 중에서는 못 구했던 거예요.

그러니까 반핵 운동했던 분들이 신부님을 찾아와가지고 신부님이 좀 대표를 맡아주십시오 해가지고 이제 이분이 사제로서 정말 십자가를 지고서는 대표가 되셨는데 상임 대표가 딱 중심이 돼가지고 한 번도 흐트러진 적이 없어요.

박홍표 신부님이 상임대표로서 저는 공동대표를 지냈습니다마는 그 상임대표인 박홍표 신부님 중심으로 사무국장도 있고 기획 실장도 있고 중요한 거는 삼척은 두 개 세력이 있었어요.

삼척 시내에 신부님을 중심으로 하는 삼척 발전소 반대 투쟁위원회 조직과 1차 핵싸움을 이끌었던 근덕면 핵발전소 백지화투쟁위원회 두 개의 단체가 같이 합심을 해가지고 세 번째 싸움을 이끌어 나가는데 지역 주민들이 다 중심이 돼 있었던 거예요.

지역 주민들이 여기가 고향인 사람들 이렇게 하면 그래서 제 중심에 이제 신부님이 계셨고 어떻게 보면 천주교가 굉장히 적극적으로 결합을 했다고 할 수 있죠. 그러니까 핵심적으로 움직이는 분들 중에서 많은 분들이 이제 신자가 많았고 그런데 꼭 신자만 했던 건 아니고요. 그렇게 해서 삼척 핵발전소 세 번째 싸움은 신부님이 상임 대표로서 끝까지 이끌어왔다 그렇게 전체적인 거를 얘기를 할 수가 있죠.

그리고 한 가지 아주 중요한 그러니까 핵싸움을 이끌었던 아주 중요한 세력 중에 하나가 삼척 여고예요. 삼척여고가 2010년에 시작을 했는데 2011년 말에 이제 후쿠시마 핵사고가 나가지고 엄마의 마음으로다가 삼척의 핵을 막아내겠다고 해서 전격적으로 삼척여고 총동문회가 합류를 합니다. 그리고 삼척여고에서 2천만 원을 기탁을 해요. 2천만 원의 투쟁 자금으로 그러면서 전 대표 전 동문회 회장이 핵심적인 실무를 맡아가지고 대표를 맡아가지고 삼척 핵발전소 싸움에서 결국은 엄마들이 움직인거에요. 그러니까 그렇지 엄마들이 움직이면 남자 아빠들은 안 움직일 수가 없어요.

(이원영)

지난번에 제가 삼척에 순례하러 갔을 적에 삼척에서 시작해가지고 속초까지 올라갔는데 동해안 쭉 따라 들고 올라갈 때마다 맨날 도시락 싸들고 와가지고 응원하고 했는데 그 아줌마들이 그 삼척 여고 동문들이었군요.

(성원기)

그냥 이제 선후배 이렇게 해가지고서는 거기에서는 아주 후원하고 이렇게 지원하는 걸 아주 많이 해봐가지고 굉장히 열심히도 하고 잘해요.

(질문: 참석자1)

30년을 탈핵운동을 해온 원동력은 무엇입니까?

(성원기) 평생을 싸워가지고 삼척을 어쨌든 백지화를 시켜가지고 청정 삼척을 지켰는데 여기에 또다시 새 정부가 핵발전소를 짓겠다는 것은 자신의 이제까지의 삶이 송두리째 부정당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래 또 한 번 싸우자고 하면 우리는 언제든지 싸우죠.우리의 존재 이유가 그러니까 우리 삶을 부정당하는 걸 우리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거죠.

(질문: 이원영) 그러면 제가 또 질문 한 가지 하겠습니다.

지금 보면 다 국회의원이 그 지역에 국회의원이 중요한 역할을 해야 되는 것 같은데 삼척은 지금 2020년에 이철규 의원을 국회의원으로 선출하지 않았습니까.석탄발전소에 찬성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주민들의 뜻하고 어떻게 차이가 나는지 한번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성원기) 결국 민주주의의 문제가 될 터인데요. 이 지역에서는 지역 주민들 주민들의 의사를 대변해달라고 뽑아놓은 우리들의 일꾼이죠. 그런데 역할을 한 것이 없습니다.

석탄 같은 경우에는 찬성하는 정도가 아니라 어쨌든 이거를 중단시키는 데 필요한 근거법인 이제 에너지 전환 지원법이 있잖아요.

그거를 찬성만 하면 그게 통과될 판인데 그거를 반대하고 있으니 이게 기가 막히니까 그래서 정말 국회의원을 뽑아놓은 국회의원이 지역 주민의 원하는 거를 거꾸로 갔을 때 국회의원들 소환하는 제도가 있으면 국회의원 이철규 국회의원 소환 운동을 벌이고 싶어요. 자신의 정치적 이익에만 충실한 이런 국회의원이 때문에 더 고통이 가중되고 있다 이런 상황입니다.

다음 선거에서는 이분에 대해서 반드시 책임을 묻도록 하겠습니다.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드러내는 게 핵발전소 에너지 문제인 것 같아요.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탈핵 운동도 일제강점기에 우리가 독립운동을 했던 것과 같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 독립운동에 참여한 건 아니죠. 그러나 독립에 대해서 누가 또 생각을 안 하는 사람이 누가 있었겠어요. 누군가는 헌신적으로 또 희생하면서 가는 사람이 있을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그러한 가고 있는 사람들이 어쨌든 끝까지 가줘야 됩니다.

그래야 독립이 됩니다. 그것을 앞장서서 가는 사람들은 힘이 들더라도 끝까지 가자 그래야 우리가 핵 없는 세상을 우리가 독립을 했듯이 핵 없는 세상을 후손들한테 물려준다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혼자가 아니거든요. 응원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사실 대부분 다 응원해주셨죠. 그래서 원하는 분들이 응원하는 분들이 많기 때문에 연대하는 힘으로다가 힘을 내서 끝까지 같이 갔으면 좋겠습니다.

기록 정진영(경남기후위기비상행동)



카테고리:탈핵사랑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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