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계학술대회]탄소중립 시대의 전력망과 발전자원의 조건(이상복)

無탄소 ‧ 속응성 ‧ 소용량 ‧ 관성

이상복 (이투뉴스 기자, lsb@e2news.com)

2021. 7. 2 (탈핵에너지학회 학술대회 기고)

1. 에너지전환정책 추진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6월 19일 고리 1호기 영구정지 선포식 기념식에서 “고리 1호기 가동 영구정지는 탈핵 국가로 가는 출발”이라며 에너지전환정책의 포문을 열어젖혔다. 취임한지 불과 한 달여가 지난 시점이다. 이 자리에서 문 대통령은 “원전은 에너지 대부분을 수입해야 하는 우리가 개발도상국가 시기에 선택한 에너지정책이었고 이제 바꿀 때가 됐다. 국민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청정에너지 시대, 이것이 우리의 에너지정책이 추구할 목표”라고 역설했다.

행정부는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그해 10월 24일 국무회의를 열어 국무조정실과 산업통 상자원부로부터 각각 ‘공론화위원회 권고내용 및 정부방침(안)과 ‘공론화 후속조치 및 에너지전환(탈원전) 로드맵’을 보고받고 이를 심의·의결했다. 신고리 5,6호기는 공론화위원회 공사재개 권고를 따르되, 신한울 3,4호기와 천지(영덕) 1,2호기, 대진(삼척) 1,2호기 건설계획은 백지화 했다. 월성1호기 조기폐쇄 약속도 이때 나왔다. 원전의 빈자리는 태양광·풍력등 재생에너지 몫이었다. 이런 구상은 두 달 뒤 수립된 8차 전력수급기본계획과 재생에너지 3020이행계획(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발전량 비중을 20%로 제고) 등에 충실하게 담긴다. 신규 원전·석탄 진입을 봉쇄한 상태에서 수명이 다한 기존 발전소 퇴출시점까지 못박은 정부계획이 처음 정책화 됐다. 현 정부 에너지전환정책의 밑그림은 고리 1호기 영구정지 선포식으로부터 6개월 안에 모두 완성된 셈이다.

2019년 6월 확정한 상위 정책계획(3차 국가에너지기본계획)이나 이태를 끌면서 작년 말에서야 수립한 후속 9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은 정책 목표연도만 다를 뿐 취임 첫해 마련한 8차 전력계획이나 에너지전환로드맵의 틀을 벗어나지 않는다. 차이가 있다면, 2040년까지 재생에너지 비중(30~35%)을 새로 정하고(3차 에기본), 국가 온실가스 감축계획(NDC)과의 정합성을 확보하기 위해 석탄화력을 대거 LNG발전소로 전환하는 내용을 담았다는 정도다. 9차 전력계획의 2034년 정격용량(설비용량) 기준 전원믹스는 신재생 77.8GW, LNG 59.1GW, 석탄 29.0GW, 원전 19.4GW, 양수 등 기타 7.4GW 등이다.

문재인 정부가 원전‧석탄화력 일변의 에너지공급체계를 재생에너지와 저탄소 발전원으로전환하는 물꼬를 텄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다만 에너지전환을 단순한 전력믹스 조정 정도로 인식해 야당과 보수언론의 소모적 논쟁을 야기했고, 정작 시장제도 개혁과 가격정상화 같은 본질에 접근하는 노력은 소홀히 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2. 재생에너지 본격 확대

그럼에도 문재인 정부의 에너지전환정책은 재생에너지 확산의 기폭제가 되기에 충분했다. 한국에너지공단 통계에 의하면 2017년 한해 국내 태양광 신규 설치량은 1.1GW였으나 이듬해 1.8GW, 2019년 2.9GW 순으로 늘어나 지난해 4GW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국내 누적 태양광 보급량을 자급자족용을 포함 16GW이다. 에너지전환 로드맵에서 출발해 재생에너지3020 이행계획, 그린뉴딜, RPS(신재생공급의무화) 보급목표 상향조정에 이르기까지 일관된 정책신호가 시장투자를 견인했다. 전력망 접속신청이 몰리면서 전력계통도 조기 포화됐다. 2016년 10월부터 올해 1월까지 한전에 접수된 누적 태양광 계통연계 신청량은 14GW이며, 이중 3400여건 5.9GW는 아직 망을 확보하지 못해 대기상태다.

연도별 접속신청건수는 2018년 1만2160건에서 2020년 1만5343건, 올해 2월 1만6004건 순으로 지속 증가하고 있다. 올해 5월말 기준 국내 신재생에너지(수력 포함) 설비대수는 8만3957대, 설비용량은 22GW이다. 이는 전체 설비용량 129GW의 약 17%에 해당하며, 원자력 설비용량(23GW)과도 맞먹는 규모다. 원별로는 태양광이 약 80%로 가장 많다.

설비용량은 해당 전원이 낼 수 있는 100% 출력값으로, 연간 최대 발전량에 대한 실제 발전량 비율을 뜻하는 이용률과는 다른 개념이다. 태양광‧풍력 이용률은 햇빛과 바람을 이용하는 발전기 특성상 전통 화력발전기 대비 낮고 발전량도 불규칙하다. 전력거래소가 추산한 국내 태양광‧풍력 평균 이용률(2017년 기준)은 각각 16%, 22% 내외다. 정부는 2017년 재생에너지 3020 이행계획을 수립하면서 2030년까지 50GW를 확충해야 발전량 비중목표(20%)에 근접할 것으로 봤다. 작년말 9차 전력계획에서는 2034년 비중목표(26%)를 달성을 위해 태양광 45GW, 풍력은 24GW가 필요하다고 추산했다. 재생에너지를 늘려 에너지전환정책과 국가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하고자 한다면,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의 대규모 재생에너지 설비를 매년 공급하고, 이를 뒷받침할 전력망 투자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3. 전력망 투자는 등한시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이들 중장기 정책계획을 수립‧추진하면서 각 전원의 예상 발전량이나 전력계통 조류(흐름) 변화, 송전망 확충계획 등을 면밀히 검토하지 않아 ‘재생에너지 병목현상’을 초래했다. 전력수급 여건이 완전히 달라지는 전환기 정책계획을 다루면서 설비용량만 따지는 옛 방식을 고수한 탓이다. 일례로 2018년말 한전이 작성한 8차 송변전설비계획은 기존 계획에 반영된 원전·석탄·LNG와 이미 접속신청이 끝난 확정 재생에너지 설비만으로 전력망 보강계획을 세웠다. 앞서 정부는 전력계획과 송전계획의 정합성을 확보하기 위해 7차 전력계획부터 송전망계획을 선행 수립하거나 최소 동시에 짜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이 약속은 현재 검토하고 있는 9차 송‧변전계획까지 지켜지지 않고 있다.

전력망을 고려하지 않은 에너지전환은 실제 전력수급과 계통운영 측면에서도 엇박자를 유발하고 있다. 전력거래소에 의하면 2015년 연간 3회에 불과하던 제주지역의 풍력발전 출력제한(Curtailment)은 지난해 77회 19GWh로 증가했고, 올해는 발전량의 4%를 초과할 전망이다. 출력제한은 수요를 초과해 공급되는 태양광‧풍력 발전량을 계통에서 수용하지 못해 발전기를 세워두는 조치다. 아직 보조금(REC)으로 경제성을 확보하는 재생에너지 설비의 출력제한은 사업성을 훼손하고 신규투자를 위축시키는 요인이 된다. 탄소 없는 섬(CFI, Carbon Free Island)을 표방해 온 제주는 재생에너지 크게 늘려 전체 2GW 발전설비 중 720MW를 태양광‧풍력으로 채웠다. 최근 5년새 태양광은 5배, 풍력발전은 약 1.3배 각각 증가했다. 반면 전력망 여건에 대한 검토와 투자, 시장제도 개선을 등한시하면서 결과적으로 재생에너지를 더 이상 추가 수용하지 못하고 변동성 대응에도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전력계통은 발전량이 수요에 비해 부족하거나 넘치면 주파수와 전압 등이 허용된 범위를 벗어나고, 최악의 경우 대정전이 발생할 수 있다. 제주계통의 재생에너지 부하분담률은 순간 최대 50%에 달하며, 재생에너지 발전량 비중은 지난해 16%를 넘어섰다. 제주에서 지금 수면위로 드러난 문제들은 머잖아 육상계통에서 그대로 재현될 사안이란 점에서 가볍게 다룰 문제가 아니다. 하드웨어 측면에선 최소 발전설비 증가에 비례한 계통투자가 이뤄져야 하고, 소프트웨어 측면에선 전통발전기 특성에 최적화 된 전력시장제도를 재생에너지 친화적으로 전환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최근 전문가들이 제주 해법의 하나로 소비자 참여(수요조절)를 위한 가격신호 제공과 기존 전력시장 재설계를 주문하는 이유다.

4. 미래 발전자원의 조건

그렇다면 탄소중립 시대가 요구하는 발전자원의 조건은 무엇일까. 정부가 내건 2050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하려면 전력부문의 완전한 탈탄소화는 선결과제다. 석탄화력의 조기퇴출은 물론 탄소배출량이 석탄의 3분의 1 수준이라는 LNG발전도 최소화해야 한다. 미래 발전자원은 온실가스를 전혀 배출하지 않는 ‘무(無)탄소’ 기술에 기반하거나 최소 탄소포집장치(CCS) 등을 단 ‘저(低)탄소’여야 한다. 녹색에너지전략연구소(GESI)가 최근 펴낸 ‘2050년 한국 탈탄소 시나리오: 섹터커플링의 역할’ 보고서에 의하면, 2050 탄소중립을 달성하려면 향후 30년간 재생에너지 설비용량을 562GW까지 확대하고, 그 변동성을 보완해 줄 1058GWh의 ESS(에너지저장장치)와 77GW의 수전해 설비(저장량은 1307GWh)가 필요하다. 재생에너지 설비용량은 22GW, 발전량 비중(2020년 기준)이 8% 남짓한 우리 실정에선 아직 까마득하게 먼 길이다. 작년 기준 전세계 평균 재생에너지 발전량 비중은 27%였다.

재생에너지가 주류 전력공급원이 되는 탄소중립 시대엔 재생에너지 출력변화를 추종해 빠르게 출력을 높이거나 줄일 수 있는 유연성‧속응성(速應性) 전원이 필요하다. 이런 특성과 거리가 먼 경직성 전원은 아무리 발전원가가 저렴해도 자연도태가 불가피하다. 발전기 대형화로 kWh당 발전단가를 낮춰 ‘기저부하(Base Load)’의 지위를 누려온 석탄화력과 원전의 시대는 저물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이미 정부는 설비용량이 작아 기동‧정지가 용이하면서 발전량을 빠르게 증감할 수 있는 발전기를 우대하는 시장제도를 검토하고 있다.

현재 원전과 태양광, 풍력 등의 전원은 전력수요 변화와 관계없이 가급적 전출력으로 가동한다. 원전의 경우 기술적으로 발전량 조절이 어렵고, 태양광·풍력은 기상이 발전량을 결정하므로 발전력을 통제할 수 없다는 의미로 경직성 전원으로 분류한다. 반면 석탄화력, LNG, 양수발전, 수력 등은 전력거래소 EMS(전력계통운영시스템)로부터 기동·정지·출력조정 지시를 받아 가능한 범위에서 발전량을 조절한다. 석탄화력은 연료투입량이나 연료교체로 최대출력의 50~100%까지 발전량 감발이 가능하지만 출력조절 속도가 워낙 느린데다 대기오염물질도 다량 발생해 가급적 정격출력으로 운전한다. LNG발전기(가스터빈)와 수력발전은 출력조절이 빠르고 쉽다. 양수발전은 하부 저수지 물을 상부저수지로 끌어올릴 때 전력을 소비하거나 전력피크에는 반대로 물을 떨어뜨려 전력을 생산하는 대표적 에너지저장장치(ESS)이다. 발전기 특성에 따라 굳이 세분화하면 원전·재생에너지는 고경직성, 석탄화력은 경직성, LNG복합, 양수, 배터리 등은 유연성 전원으로 분류 할 수 있다.

수요와 공급을 항상 일치시켜야 하는 전력계통 운영 관점에서 경직성 전원비중 증가는 위기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지금은 출력조절이 불가능하다고 알려져 온 원전에조차 증‧감발을 요구하는 지경이다. 작년 5월 2일 오후 7시부터 이튿날 자정까지 신고리 3,4호기는 전력계통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발전기 출력을 600MW 줄여 가동하는 초유의 감발운전을 했다. 전력수요가 평소보다 크게 낮은 이 기간에 대형 발전기 중 1기라도 불시 고장을 일으키면 계통주파수가 기준치(59.7Hz) 아래로 떨어져 전체 전력망이 위험에 처할 수 있어서다. 원전 감발은 붕산을 투입해 원자로 핵분열 속도를 조절하는 방법으로 이뤄졌다. 이 조치는 작년 추석연휴인 9월 30일부터 10월 5일까지 닷새간 반복됐으며, 전력망 내 경직성 전원 비중 증가에 따라 향후 상시화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전력계통 전문가인 전영환 홍익대 전자전기공학부 교수가 정해성 장인의공간 박사팀과 모의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재생에너지가 늘어날수록 원전과 석탄화력은 자연스럽게 퇴출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경제성 확보가 불가능한 수준의 파행운영이 예상된다. 이 연구에 의하면 이대로 재생에너지가 늘어나면 오는 2030년 봄 경부하 때는 새로 건설하는 양수 3기를 모두 가동해도 전체 원전의 절반 이상을 멈춰 세워야 한다. 같은 기간 석탄화력 역시 낮 시간에 감발하고 주말에는 기동정지와 재가동을 반복해야 하는 처지가 된다. 수요변화에 가장 빠르게 응동한다는 가스발전은 이미 봄가을 주말마다 최소출력으로 가동하거나 기동‧정지를 빈번하게 반복하고 있다. 석탄화력도 주말 감발에서 예외가 아니다.

미래 발전원들에게 요구되는 또 다른 덕목은 가급적 계통운영의 안정성을 높일 관성
(Inertia)을 공급해 달라는 것이다. 태양광이나 풍력은 온실가스나 대기오염 물질을 배출하지 않아 친환경적이지만, 전력전자기반 기술이어서 계통에 관성을 제공하지 못한다. 관성은 발전기 불시정지와 같은 계통 외란(外亂) 시 정상값을 벗어난 주파수가 빠른 시간 안에 회복할 수 있도록 역할을 하며, 현재는 양수, 석탄, 가스, 원전, 바이오매스 등의 회전체 동기발전기가 공급한다.

관성이 낮은 계통, 즉 재생에너지와 같은 비동기발전기 비중은 높은 전력망은 외란 시 정상 계통보다 주파수(60Hz)가 급격한 기울기로 떨어진다. 체력이 약한 사람이 강한 사람보다 외부 충격에 더 쉽게 쓰러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때 주파수가 일정값 이상을 과도하게 벗어나면 발전기들도 설비보호를 위해 계통에서 스스로 이탈하고, 각 지역 변전소들은 전체 전력망 붕괴를 막기 위해 미리 정해진 순서대로 전력공급을 차단한다. 이른바 순환정전이다. 재생에너지가 확대될수록 관성은 약화될 수밖에 없으며 이에 따른 필요예비력은 증가한다. 재생에너지 중심 전원을 구성한다해도 최소수준의 관성전원은 확보해야 한다.

계통내 관성저하는 재생에너지 확대에 따라 국내외서도 필연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종합하면, 재생에너지 중심의 전력공급 체계를 갖추려면 그에 상응한 물리적 전력계통을 확보해야 하며, 공급여건에 따라 수요(소비)가 반응할 수 있도록 시장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또한 탄소중립 시대에는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는 전원이면서 빠르게 출력을 증‧감발 할 수 있는 속응성 전원이 필요하며, 전력망의 안정성을 높여줄 관성(Inertia)을 공급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다. 그런 측면에서 기존 대용량‧경직성 원전과 석탄화력은 자연 도태될 운명이다.



카테고리:08월호-2021년 하계학술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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