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광, 지구 살리는 기술] ⑨일본은 어떻게 ‘영농형 태양광’ 선도국이 됐나
유형동 기자
2021.02.16
나가시마 아키라, 농사·태양광 발전 병행 ‘솔라 쉐어링’ 고안
지난 2010년부터 지바현 400평 부지서 실증 사업 전개
‘이바라키·지바·군마’ 등 후쿠시마 중심 영농형 태양광 확산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일본 내 신재생에너지 관심↑
관련법 제약·부정적 인식 등 이유로 국내서 확산 매우 더뎌
국내 기업 ‘파루’가 만든 ‘AI 태양광 양축 트래커’, 日에 역수출

일본은 20여 년 전부터 영농형 태양광을 농촌 회생 전략으로 보고 집중 육성하고 있다. 민·관이 합심해 제도적 기반을 다지고, 홍보에 나서는 등 생태계 조성에 힘썼다. 그 결과 현재 일본 각지에 설치된 영농형 태양광 발전소만 2천 곳이 넘는다. 우리나라도 해외사례를 벤치마킹해 뒤늦게나마 영농형 태양광 도입에 나서고 있지만, 실증 단지도 얼마 되지 않고 관련법도 발목을 잡고 있는 실정이다. 일본은 어떻게 ‘영농형 태양광’ 선도국이 됐을까.
◆ 일본식 영농형 태양광 ‘솔라 쉐어링’
일본에서는 영농형 태양광을 솔라 쉐어링(Solar Sharing)이라 부른다. 일본에서 영농형 태양광을 최초로 연구한 나가시마 아키라(Akira Nagashima)가 지난 2003년에 붙인 이름이다. 현재는 ‘보통 명사’ 개념으로 쓰이고 있다. 솔라 쉐어링은 작물 생산에 필요한 태양광을 확보해 영농을 지속하면서 동시에 남은 햇빛을 이용해 태양광 발전을 하는 것을 말한다. 쉽게 말해 태양에너지(Solar)를 농사와 발전으로 나눠(Sharing) 사용한다는 뜻이다.

솔라 쉐어링이 수면 위로 드러나기 전 일본 정부는 에너지 전환 정책으로 지붕 위 태양광을 중심으로 보급을 시작했다. 지난 2007년 일본 정부는 2030년까지 전국 주택의 약 30%에 해당하는 1400만 가구에 설치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이 정책이 실현되더라도 태양광발전은 전체 전력의 6% 정도의 발전량에 불과하고, 유휴지(遊休地) 등 적절한 토지를 찾기가 어렵다는 점이 한계로 지적됐다.
나가시마 아키라는 지난 2003년 말 게이오 기주쿠대학(慶應義塾大学)이 사용하고 있는 생물학 교과서에서 식물의 광포화점(光飽和点)에 대한 설명을 찾아냈다. 이는 모든 논밭은 강렬한 태양광 자체가 식물에 스트레스를 준다는 것. 이 같은 측면에서 농지와 목장 등에 패널을 설치해 태양에너지를 식물과 패널에 나눌 수 있도록 하면 태양광 발전을 확대할 수 있겠다고 나가시마 아키라는 판단했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자원소국인 일본이 솔라쉐어링을 통해 화석연료 수입량을 줄일 수 있겠다는 포부도 있었다.



나가시마 아키라는 기본 구상을 마치고 지난 2010년 4월 지바현 이치하라시 미나요시에 최적의 조건을 가진 토지를 발견했다. 400평 부지에 전기와 수도가 이미 설치되어 있는 등 실증실험장을 만들기 적합한 조건이었다. 이어 땅을 고르게 하고 강철재를 구입해 가대 기둥을 놓았다. 그리고 태양광 모듈까지 설치했고, 작물을 재배하면서 태양광 발전을 병행하는 본격 실증 연구 전개했다.

그는 땅콩과 양파, 메밀, 토란, 감자 등 작물별 정성실험을 진행했다. 특히 무, 당근 등이 솔라 쉐어링 아래서 잘 자라는 것으로 나타났다. 나아가 목축과 낙농, 주택에 활용하는 방법과 영농형 태양광의 경제성 입증에 대해서도 부단히 애썼다. 의회 의원들, 농림수산성 관계자들을 만나 솔라 쉐어링에 대한 효과와 실증 사례를 직접 소개하는 등 홍보에도 힘썼다. 각종 언론보도를 통해 전국적 유명세를 탔고, 솔라 쉐어링이 일본의 대표 영농형 태양광 모델로 자리매김했다.


◆ 日本은 ‘후쿠시마’ 중심 영농형 태양광 확산…우리나라, 실증단지 극소수에다 농지법 등 선결과제 산적
지난 2012년부터 일본 등지에서 영농형 태양광 발전소가 늘어나고 있다. 지난 2018년 1천 500곳을 돌파했는데 현재 2천여 곳이 넘었다.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실증 단지가 소수에 불과하다. 영농형 태양광 확산을 골자로 하는 농지법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농민단체의 반대가 극심한 상황이다. 수익성 보장을 위해 농지법 개정안은 반드시 통과돼야 한다. 관련 법 개정조차도 하세월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일본은 어떻게 영농형 태양광이 빠르게 확산될 수 있었을까.
전문가들은 ‘후쿠시마(福島) 원전 사고의 트라우마’와 ‘신재생에너지에 대한 긍정적 인식’이라고 입을 모은다. 실제 영농형 태양광은 일본 후쿠시마 등에서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재생 에너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데 따른 것이다. 솔라 쉐어링이 초창기 보급되던 2012년 당시 이바라키현과 지바현의 주민들이 실증 사업에 다수 참여하기도 했다.

일본 농림수산성이 지난 2017년 ‘영농형 태양광 설치를 위한 전국 도도부현(都道府縣·광역자치단체)의 농지전용 누적 허가건수’를 조사한 결과, 2013~2017년(3월말 기준) 모두 합해 1,269건으로 나타났다. 연도별 농지전용 허가건수는 2013년 97건, 2014년 304건, 2015년 374건, 2016년 494건으로 해마다 늘어났다. 지역별 분포가 눈길을 끈다. 도도부현별로 4년 누계치를 보면 후쿠시마와 인접해 있는 지바현이 204건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시즈오카현 104건, 군마현 138건 순이었다. 이를 놓고 전문가들은 10년전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트라우마가 작용한 것이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더불어 일본의 경우 신재생에너지 발전시설을 혐오시설로 인식하는 고정 관념이 덜하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에 반해 국내에서는 ‘발전소 포비아(phobia·공포)’ 현상이 나타나는 실정이다. 대표적으로 인천 동구 수소연료전지발전소, 나주 고형폐기물(SRF) 열병합발전소 등 전국 40곳이 넘는 발전소에서 지역 주민들이 안전성과 미관 문제를 내세워 반발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 이러한 현상이 덜하다보니 신재생에너지 확산에 대한 공감대가 잘 형성됐다는 평가다.
더불어 고령화, 농지 휴경화 등이 지속되면서 농촌에 젊은이들이 부족해 농가 후계 문제까지 겹쳤다. 이 가운데 영농형 태양광 공론화가 가속화됐고, 농림수산성은 영농형 태양광이 작물의 수량과 품질에 피해를 주지 않는 것으로 판단되면 농지전용 기간을 연장해주는 등 농가들의 소득 증대를 직간접 지원하고 있다.
일본은 태양광 발전 설비에 대한 허가와 농지에 대한 허가를 받아, 농작물만 생산된다면 20년 동안 영농형 태양광을 지속할 수 있다. 단, 영농형 태양광을 설치한 농지에서 농작물 수확량이 전년 대비 80% 이하로 하락하면 그 즉시 태양광 가설물을 철수해야 한다. 임철현 녹색에너지연구원 실장도 영농의 지속성을 위해 일본과 같은 선례를 참고해 국내 실정에 맞게 적용하자는 의견을 제시한 바 있다.

◆ 한국-일본, 영농형 태양광 기술 교류 활발
우리나라는 일본에 비해 영농형 태양광 연구가 늦었다. 심지어 실증 단지도 많지 않은 실정이다. 그러나 국내 연구자들과 관련 기업들의 연구가 속도감있게 진행되고 있다. 이에 일본도 우리나라와 왕성하게 영농형 태양광 기술 교류에 나서고 있다. 지난 2019년 일본솔라쉐어링추진연맹은 한국영농형태양광협회와 업무협약 체결했다. 농작물 경작이 가능한 영농형태양광 발전사업의 보급 확대를 비롯 ▲한·일 영농형태양광 발전사업 기술협력 ▲영농형태양광 발전사업 정책 수립 지원 등을 위해 상호 협력하기로 했다.
공동 세미나도 매년 열리고 있다. 영농형 태양광 설치 경험이 부족한 국내 기업들이 일본 관련 협회로부터 설치 사례와 시공방법, 유의사항 등을 듣는 자리다. 녹색에너지연구원은 지난 2019년 일본 영농형추진연맹을 비롯한 일본 태양광산업 관계자들을 초청해 세미나를 개최했다. 영농형 태양광 시범 사례 및 향후 전망 등을 듣는 자리로 구성됐다.

이날 세미나에서 마가미 타케시 대표는 “일본 영농형 태양광의 가장 큰 목표는 농업인 소득 증대 및 폐농지 개선이고 농업의 지속성이 담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으며, “일본에서 태양광 100GW 신규보급에 환경적 가치가 높은 영농형 태양광이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 국내 기업이 만든 ‘AI 태양광 양축 트래커’ 기술 일본에 역수출도
일본 이바라키현은 일본 내 농업생산량 2위를 차지하고 있는 대표적 농촌지역이다. 이 지역 농가들의 영농형 태양광 단지는 기존 솔라 쉐어링과 다른 모양새를 띠고 있다. 지지대가 다수 필요한 기존 태양광 시설과 달리 중앙지지대 1개가 태양광 모듈을 받치고 있다. 특히 태양의 위치에 따라 모듈이 이동하기 때문에 발전 효율도 높다.


이같은 추적식 태양광 설비가 최근 일본 지역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바로 글로벌 IT 기업 파루가 일군 역수출 성과다. 파루가 만든 ‘AI 태양광 양축(Dual-Axis) 트래커’는 고감도 광센서가 태양의 위치를 실시간으로 감지하고 자동 추적 알고리즘으로 구성된 프로그램으로 구동장치를 제어하여 태양광 모듈의 각도를 항상 최적의 일사각으로 유지시켜 준다. 마치 태양을 따라 움직이는 해바라기를 연상시킨다.
추적식으로 불리는 태양광 설비에다 인공지능(AI)을 접목해 눈길을 끈다. 기상조건을 감지하고 자동으로 대응하는 인공지능형 안전모드로 자연재해의 피해를 최소화 한다. 태풍 등 악천후가 발생할 경우 모듈이 수평상태로 자동 전환되는 기능과 많은 적설시 모듈에 각도를 주어 모듈에 눈이 쌓이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고 한다.


한편 파루는 2014년부터 일본에 꾸준하게 수출해오고 있으며, 추적장치 기술 관련 국내외 각종 기술 특허와 20여 개국 750여 mW이상의 태양광 발전 시스템 실적을 보유하고 있는 글로벌 IT 기업이다. 파루는 미국 텍사스 주에 세계 최대 규모(400MW)의 알라모 태양광 발전소를 설치한 레퍼런스를 보유하고 있다. 투자의 귀재 워렌 버핏이 4천529억원에 파루의 태양광 발전소를 인수해 화제를 모은 바 있다.
AI타임스 유형동 기자 yhd@aitimes.com
카테고리:03월호-한국형원전, 202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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