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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특집] 원자력과 민주주의(2011년 3월 21일, 김종철 녹색평론발행인)

[세상 읽기] 원자력과 민주주의 / 김종철

2011-03-21

김종철 〈녹색평론〉발행인

센다이는 아들이 살고 있기 때문에 여러 번 가본 곳이다. 비행기가 태평양 쪽으로 나갔다가 다시 육지를 향해 짙푸른 바다 위를 낮게 날아 눈부신 모래밭과 숲을 넘어 활주로에 착륙하는 동안의 주변 경치는 숨이 막힐 만큼 아름답다. 센다이공항은 언제나 시골 역사 같은, 조용하고 한가로운 분위기에 감싸여 있다. 단정한 모습의 부근 농가들과 그 사이 잘 정돈된 논밭은 여기가 가난하지만 근면하고 성실하게 사는 사람들의 삶터임을 알려준다.

그 아름다운 곳이 일시에 폐허가 되고, 수많은 사람들이 삶터와 가족을 잃고 슬퍼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비통한 심정을 가눌 수 없다. 인간의 삶이란 이토록 허망한 것인가.

따져보면, 아무리 잘난 척해도 우리는 모두 자연 앞에서 철저히 무력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우리는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며, 슬픔을 견디고 묵묵히 파괴된 삶터의 복구에 나서는 수밖에 없다. 언젠가 또다시 자연재해로 허물어진다 해도 삶을 재건할 수밖에 없는 게 인간의 운명인지 모른다.

그러나 원자력 사고는 우리가 순응해야 할 재해가 결코 아니다.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이란 게 근본적으로 허구이며 속임수임은 새삼 말할 필요도 없다. 이것은 히로시마 원폭투하 이후 핵개발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누구라도 알 수 있다. 무엇보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원전이란 원폭과 뗄 수 없는 관계 속에서 국가의 군사적 야망과 핵자본의 이익, 기생적인 정치가, 관료, 학자, 언론이 만들어낸 합작품이라는 점이다.

원자력발전이 성립하기 위한 기본적 전제조건은 절대적 안전성이다. 이 안전성이 지켜지지 않을 때, 궁극적인 결과는 인간 생존의 전면적인 붕괴이다. 방사능과 생명은 공존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흔히 피폭 허용치 운운하지만, 지구 전역에 미치는 만성적 방사능 장해를 고려하면 허용치란 말장난일 뿐이다.

원전에 확실한 게 있다면, 언제든 사고가 나게 마련이라는 사실이다. 체르노빌이나 후쿠시마 원전의 방사능 대량방출 사태는 예측 불가능했던 게 결코 아니다. 정부와 원전 관계자는 언제나 은폐하고 거짓말을 하지만, 실제로 원전에서는 크고 작은 사고가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인간이 하는 일에서 완벽성이란 있을 수 없다. 지금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예상하지 못한 지진해일(쓰나미) 때문이라고 하지만, 원래 예상치를 벗어나는 게 자연재해의 본질이다.

다중방호 장치를 아무리 잘한다 해도 사고의 완벽한 방지란 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인간은 실수를 범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불가피한 인간조건이다. 이 근본적인 인간조건을 무시하고, 절대적 안전성을 요하는 위험시설을 옹호·장려한다는 것은 정신질환이 그만큼 깊다는 뜻일 것이다.

원전으로 기후변화에 대응할 수 있다는 주장도 우라늄 채굴, 정련, 운반, 처리 등에 수반하는 석유 소비를 생각하면 근거 없는 낭설이다. 원전의 경제성이라는 것도 최종적인 폐쇄비용까지 고려하면 완전히 허구임이 이미 충분히 논증되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원전에서 발생하는 핵폐기물을 이 지구에서 안전하게 처리할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반핵운동에 평생을 바친 시민과학자, 다카기 진자부로는 원전을 ‘화장실 없는 맨션아파트’라고 불렀던 것이다.

후쿠시마 원전재앙이 주는 교훈은 단 하나뿐이다. 이미 숱한 핵실험과 원전 사고로 심히 오염된 생태계를 현 상태나마 지키려면 당장에 모든 원자력발전소에 대한 폐쇄 조치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 엄청난 재앙을 겪고도, 권력 엘리트들은 원자력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예를 들어, 이 와중에 며칠 전 미국 대통령은 원전 장려 정책을 계속하겠다는 발언을 했다. 원전 사업에 진출하려는 에너지기업 ‘엑슬론’과 워싱턴의 막강한 로비단체 ‘핵에너지연구소’가 예전부터 오바마의 유력한 후원자였다는 사실과 이 발언이 관계가 없다고 할 수 있을까. 민주주의를 살리지 못하면 만사가 끝이다.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469075.html#csidx1b3ae1138dac7568dd9c6f9aba3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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