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원전 정책에 대한 언론 보도와 제언
- 경향신문 이중근 논설위원
1. 문제의 제기
독일은 2000년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을 시작하고, 2011년에는‘2022년까지 원전 제로’를 선언하는 등 탈핵 정책을 선제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한국도 문재인 정부 출범과 함께 원전에서 벗어나기 위한 새로운 에너지 정책을 시작했다. 이 정책의 제시한 프로세스에 따라 한국이 ‘원전 제로’를 선언하려면 현재 건설 중인 신한울 1·2호기가 수명을 다하는 2079년에 가서야 가능하다. 매우 온건하고 점진적인 탈원전 정책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문재인 정부의 새 에너지 정책은 보수 언론에 의해 매우 급진적이고 부당한 정책으로 그려져 시민들에게 전해지고 있다. 탈원전 및 원전에 대한 건강한 여론이 형성되기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2. 탈원전 논의와 언론 보도 상황과 팩트 체크 결과
한국의 여론 지형은 가뜩이나 보수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이런 가운데 보수 언론들은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대해 비판 일변도의 공격을 가하고 있다. 탈원전 정책을 현 정부의 가장 약한 고리로 인식해 집중 공격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최근 독일 슈피겔지의 탈원전 정책에 대한 보도를 결정적으로 왜곡해 전한 것이다. 민언련 보고서는 이를 두고 “보수 언론들은 흡사 독일 탈핵 정책을 공격하면 한국의 탈원전 정책을 좌초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 수준”이라고 논평했다.
*국내언론의 ‘슈피겔 기사’ 왜곡 번역 실태 (민언련 언론 모니터)
최근 보수 언론들은 독일 주간지‘슈피겔’의 독일 에너지 정책 관련 보도 <재생가능한 미래를 향한 길에서의 독일의 실패(German Failure on the Road to a Renewable Future)>(5/3)를 인용 보도했다. 그런데 기사 중 취향대로 부분만 골라서 재구성, 이 주간지가 “독일의 탈핵 정책을 실패로 규정했다”는 취지로 보도한 것이다. 이 보도를 중심으로 팩트체크를 실시했다.
<조선일보>
5/8 1면 “200조원 쓴 탈원전, 값비싼 실패” 독일의 후회 (기사)
풍력발전 주민 반발 많고 전력 부족 상황 이어져
한국이 따라가던 탈원전 독일, 스스로‘실패’ 판정 (사설)
슈피겔이 전한 독일의 탈원전 반면교사(기자 칼럼)
<중앙일보>
한전사상 최대 적자 … 이래도 탈원전 고집할 텐가(사설)
<서울경제>
독 탈원전 실패 위기에 처했다(기사)
200조원 쏟아 붓고도 실패한 독일의 탈원전 교훈 (사설)
<한국경제>
“탈원전은 값비싼 실패” … 독일서도 비판 목소리(1면 기사)
“독일 탈원전, 통독만큼 비싼 비용” … 전기요금만 올라 국민 불만 폭주
구체적인 표현을 보면 조선일보는 “한국 정부가 탈(脫)원전의 모범으로 삼아온 독일에서 탈원전과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이 실패했다는 진단이 나왔다”, 한국경제는 “독일이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탈(脫)원전 정책을 추진했지만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천문학적 예산을 투입했지만 원전을 대체할 에너지원을 확보하지 못했고 전기요금만 대폭 올랐기 때문이다” 등으로 진단했다. 독일 에너지전환이 실패했다는 평가로 시작되며, 보도 내용도 재생에너지 확대 촉구, 에너지 전환을 위한 과제 제시 등 슈피겔의 근본적 취지는 외면하고‘비용 부담’, ‘전력 부족’ 등 실패를 뒷받침할 기사 일부 내용들만 강조했다.
슈피겔이 독일의 탈원전 정책을 비판적으로 다룬 것은 맞지만 기사의 초점은 오히려‘에너지 전환이 너무 느리고 정책 의지가 없다’는 것이다. 기사 내용에 보면 “통일 이후로 가장 큰 정치적 프로젝트였던 핵발전을 재생에너지로 전환한다는 소위‘에네르기벤데’가 실패에 직면하고 있다. 후쿠시마 이후 8년간 베를린의 총리를 포함한 독일 지도자 중 아무도 이 프로젝트에 집중하지 않았다. 입법자들은 법과 규제와 가이드라인들을 도입했지만, 누구도 에너지 정책을 조정하지 않았고, 정책에 속도를 붙인 사람은 더 없었다. 모두들 풍력발전소나 송전선로 설치가 필요할 때 마다 유권자들이 반발할 것만을 두려워하는 실정이다.”라고 나와 있다. 어디에도 그 정책의 내용이 실패했다는 언급이 없다. 그보다는 정책의 방향은 옳은데 정치권 등이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고 있다는 뉘앙스다. 한마디로 더 속도를 내라고 촉구하는 기사를 잘못된 정책을 집행하지 말라고 거꾸로 보도한 것이다.
3. 원전을 둘러싼 그 외 왜곡 보도
보수 언론의 맹목적 비판은 원전과 관련한 거의 모든 분야에서 이뤄지고 있다. ▲원전과 신재생 에너지 산업의 세계적 추세 왜곡 ▲원전 관련 대학 학과의 부침을 무조건적으로 죄악시 ▲빌 게이츠의 ‘새로운 원전’ 기술 투자나 핵 융합 기술 등 원전 기술의 새로운 흐름 무시 ▲한국전력의 적자 및 전기료 문제 왜곡 보도 등 전방위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특히 슈피겔지 왜곡 보도처럼 외국 사례에 대한 침소봉대와 왜곡이 매우 심각하게 진행되고 있다. 지난해 영국의 원전 공사 수주에서 한국 기업이 참여한 컨소시엄이 탈락한 것을 두고 가디언지 보도를 침소봉대했다. 또 지난해 연말 대만 선거 과정에서 탈원전 정책을 묻는 것에 대해서도 왜곡해 보도했다. 국내 사안에 대해서는 당사자들이 즉각 반박해 설득력을 확보하는 것이 어렵다고 보고, 외국의 사례를 강조함으로써 주장의 객관성을 담보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하지만 이들 보도를 보면 과거 자신들이 주장했던 논지나 보도를 스스로 부정하는 내용들이 꽤 있다. 한전 적자도 이미 조선일보가 스스로 당연하다고 보도한 바 있다. 시대의 조류에 따른 대학 학과의 부침은 당연시하면서도 원전 관련 학과에는 유독 부정적인 것은 모순이 아닐 수 없다.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라는 등 에너지 원이 부족한 나라라는 점을 강조하면서도 거꾸로 에너지 과소비 관성은 비판하거나 개선하자고 제안하지 않는다. 그들 식의 표현으로 전기를 펑펑 쓰는 것을 당연시하는 자가당착적 논리에 파묻혀 있다. 탈원전을 주장하는 쪽에서 원전의 위험성을 과도하게 부각한다고 하면서 위험하지 않다는 주장의 근거는 제대로 대지 않고 있다.
4. 바람직한 탈원전 논의를 위한 제언
최근 한 원전 기업 임원은 탈원전 정책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문에 “우리가 탈원전 정책에 대해 할 일이 없다. 보수 언론들이 앞장서서 다 대변해주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더해 보수 정치권은 이들 보수 언론의 보도를 무차별 재생산하면서 탈원전 반대에 힘을 보태고 있다. 원전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신정경언 유착이 이뤄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 원전을 둘러싼 산업과 언론, 보수 정치권의 이익 공유는 뿌리가 깊다. 언론을 중심으로 본다면 원전족들은 여론전에도 집요하다. 과거 언론사에는 한수원의 기고문이 쇄도했다. 언론사에 기고를 하면 승진 등에서 가점을 주었기 때문이다.
이런 뿌리 깊은 원전족들의 카르텔을 깨기 위해서는 장기전을 각오해야 한다. 이를 위해 우선 팩트체크 허브의 필요성을 제기한다. 전문가 네트워크를 통해 지속적으로 왜곡 보도를 지적하고 정보를 공유하는 것이 필요하다. 언론의 입장에서 보면 원전으로 인한 피해자의 목소리는 간헐적인데 산업 관련 당사자의 아우성은 크게 들릴 수 밖에 없다. 탈원전 정책에 대한 원활한 공론장이 만들어지려면 정보의 균형이 필요하다. 지속가능한 환경을 위한 에너지 관련 보도가 좀 더 풍성해져야 한다. 반대로 보수 언론들의 주장을 합리적인 쪽으로 끌고 오는 것도 필요하다. 정파성과 원전 찬반의 이분법에 갇힌 국내 언론을 지양하게 강제해야 한다.
최근 한 원전 관련 기업 총수는 “탈원전이 필요하다면, 장기적으로 설득을 하면서 가기 바란다. 원전 산업의 피해 우려와 매몰비용에 대한 공감과 보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런 합리적인 발언들이 보수언론에 나와야 한다. 반대로 탈원전을 주장하는 쪽도 마찬가지다. 탈원전 주장도 새로운 기술의 발달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원전 산업 현장의 현실적인 문제를 도외시한 정책은 지속가능하지 않다. 양쪽의 이해가 이런 수준이 되어야 건강한 탈원전 논의가 가능해질 것이다.
***첨부 / 덴마크의 탈원전 정책 – 덴마크에서는 여전히 탈원전 정책을 재검토하자는 여론은 없다
[이중근 칼럼]‘행복한 나라’ 덴마크의 탈원전 이야기
행복지수 세계 1위’ ‘휘게 라이프의 나라’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 구시청 청사 로비에는 이 나라를 대표하는 인물 4명의 동상이 서 있다. 그중 한 명은 동화작가 한스 안데르센이다. 또 다른 한 명은 ‘원자물리학의 교황’ ‘양자역학의 아버지’인 닐스 보어(Niels Bohr, 1885~1962)이다. 그가 설립한 코펜하겐 대학의 닐스 보어 연구소는 1920년대부터 2차대전 후까지 세계 물리학의 중심이었다. 코펜하겐 학파는 보어 자신이 1922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데 이어 그의 아들 아게 보어(1975년)를 포함, 노벨상 수상자를 4명 배출했다. 1939년 세계 최초로 핵분열에 성공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원자력 연구의 중심이었던 덴마크에는 지금 원전이 없다. 1985년 덴마크 의회가 원전을 짓지 못하게 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기 때문이다. 1973년 제1차 석유위기가 일어나자 석유에너지 의존도 95%(석탄 포함 99%)에 이르렀던 덴마크는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그 대안으로 원자력을 개발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두고 이때부터 12년 동안 논의한 끝에 원전 포기를 국가정책으로 확정했다.
지금 한국에서 벌어지는 상황에 비추면 덴마크의 탈원전 결정은 동화 같다. “한국은 세계 최고의 원전 기술력을 갖고 있다”는 국내 원전주의자들이 덴마크처럼 세계 최고 수준의 원자력 연구 역량까지 갖고 있다면 탈원전의 탈자도 꺼내지 못했을 게 분명하다. 한국의 원전주의자들은 탈원전 정책을 재고해야 할 이유가 차고 넘친다고 하지만 실상은 반대이다. 원전을 새로 짓는 나라는 중국과 몇 나라 외에는 없다. 지난해 착공한 원전도 전 세계적으로 단 2기뿐이다. 탈원전 비판 논리도 한꺼풀만 벗기고 들어가면 다 무너진다. 최근 탈원전 정책 때문에 미세먼지가 심각해졌다는 주장은 완벽한 가짜뉴스다. 탈원전 정책에 따른 원전 가동 중단은 시작하지도 않았다. 현 정부 들어 원전 발전량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는 부실공사가 드러난 데 따라 원전에 대한 안전을 점검하느라 벌어진 결과일 뿐 탈원전 정책 때문이 아니다. 정부의 탈원전 정책 때문에 해외 원전 공사 수주를 하지 못했다는 주장은 전형적인 왜곡이다. 지난해 영국 원전 수주에 실패한 것은 조건이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국의 탈원전 정책 때문에 수주하지 못했다는 주장은 영국 가디언지 기사에서 맨 뒤에 잠깐 언급됐다. 이것을 한국 언론이 대서특필해 핵심 요인인 것처럼 둔갑시켰다. 탈원전 정책 탓에 핵 공학 관련 학과에 학생이 줄었다는 주장도 코미디다. 대학에서 영원히 잘나가는 학문·학과는 없다. 원전은 영원할 것이라는 이데올로기에 원전주의자들이 목매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미 깨어진 원전 불패 신화의 조각을 붙들고 주술을 걸고 있는 것이다.
덴마크의 탈원전 12년 토론은 치열했다.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에 집착한 보어의 이상과 학문적 전통을 포기하는 게 쉬울 리 없었다. ‘원전은 짓지 않지만, 원자력 연구는 계속한다’는 결정이 나온 것은 그 산물이다. 원전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모르니 연구는 이어가자는 것이다. 사시사철 균질하게 부는 질 좋은 바람이 풍력이라는 대안 에너지에 힘을 실은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토론에 가장 기여한 것은 덴마크의 정치다. 덴마크는 지금도 좌우 정당 간 의석수가 1석밖에 차이나지 않는다. 정책을 놓고 치열하게 토론한 뒤 결론이 나오면 인정하는 것이 전통이다. 이런 정치문화가 건강한 원전·탈원전 논의를 가능하게 했다. 그리고 탈원전 법안을 통과시킨 이듬해 체르노빌 사고로 전 유럽이 공포에 떨고 있을 때 덴마크 사람들은 “원전을 짓지 않기로 한 우리 결정이 옳았다”며 안도했다. 그리고 지난 40년 동안 기존 3개의 원자로를 차례로 닫았다. 원전 셧다운을 실현하면서 전기에너지의 70%를 풍력으로 대체한 최고의 친환경 에너지 국가로의 변신을 완성했다.
현 정부의 정책대로 간다고 해도 완전한 탈원전에 이르는 데는 60년이 걸린다. 원전 정책을 놓고 토론할 60년이라는 시간을 받아놓은 것이다. 미래를 전망할 근거가 부족하면 사실에 입각해 사고하는 게 과학하는 자세다. 원전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억지 주장이 합리적 토론을 방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자유한국당도 탈원전 비판에 올인할 게 아니라 향후 원전 공약을 고민해야 한다. 탈원전을 주장하는 쪽도 더 유연해질 필요가 있다. 탄소를 덜 배출하는 에너지원으로서의 원전의 효용도 무시할 것만은 아니다. 빌 게이츠가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에도 신원전 프로젝트를 계속 추진하는 이유를 주목해야 한다. 50년 전 덴마크에서 일어난 일이 우리에겐 불가능한 것인가.
카테고리:08월호-독일 탈원전 연구의 아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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